공자님 자신도 ‘사람 사랑‘이라 하시더군요
사랑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정의되는 단어가 아닙니다. 우리가 가장 아름다운 것에 붙여주고 싶은 이름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모든 종교의 복음은 자비, 사랑이지요. 기독교의 사랑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그 어떤 종교도 사랑 이상의 단어를 아직 고안해 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랑에는 여러 가지 세속적인 것도 있고, 소소한 것도 있겠지만
인간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것에다 붙인 이름일 것 같다는 생각이 괴테가 저에게 내리게 한 결론입니다.
뿌리와 날개
"뿌리와 날개" 부모가 자녀에게 주어야 할 것, 혹은자녀가 부모에게 받아야 할 것을 이야기할 때 제가 늘인용하는 괴테의 말입니다.
좀더 정확하게는 부모가안 줘도 자식이 꼭 받아내야 하는 것들인데요. ‘뿌리‘
라는 단어 앞에서 늘 깊이 생각해 보곤 합니다.
뿌리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뿌리는 발붙이는 것, 저는 그렇게 해석하는데요. 사람을 땅에 발붙게 하는 것은 노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어떤 연령의 사람이든, 어떤 위치에 있든 자기 일은 자기가 하고 자기 밥은 자기가 챙겨먹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것이 가족이든 조금 더 큰 공동체든 내가 그것을 위해서 뭔가 하는 일이 있어야 내가 단단히 그곳에 소속되겠지요.
어떤 경우에도 혼자 힘으로 서고, 내일은 내가 하고 우리 일도 좀 하고 그러면서 땅에 발이 붙습니다. 굳건하게 발을 붙이자면 자기 힘으로 서야 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어야 하겠지요.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고,
또 달려갈 수도 있는 그 근육은 거의 일상적인 노동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그렇게 점점 쌓아나가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늘 비유하곤 합니다. 어느 날 중대 결심을 한다고 해서 바로 50킬로그램짜리 역기를 들 수는 없지요. 절대로 들지 못합니다.
무거운 역기를 들고 싶으면 아령부터 계속 들어야, 그 경험이 쌓여야 어느 날엔가 들 수있는 것이지 갑자기 결심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살아
가는 모든 것들이 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우선 자기가 먹고 살고 스스로 챙길 수 있으면 몇 가닥의 뿌리를내리는 거고,
거기에 조금 더 남을 위해서까지, 혹은 소속된 어떤 공동체를 위해서도 뭔가 한 가지 일을 해갈 때 그 사람의 뿌리가 또하나 늘어나는 것이죠.
저는 아이들에게도 일을 시켜야 한다고 늘 이야기합니다. 어릴 때부터 내가 해야 여기가 돌아가고, 내가 안 하면 안 돌아가는 경험을 하다보면 스스로 얼마나 중요한 존재처럼 느껴질까요? 나 없어도 모든 게 다 잘돌아가면, 내가 없어도 됩니다. 근데 나 없으면 우리집 안 돼! 우리 안 돼!" 이럴 때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생기고 주변의 존경과 사랑도 커지는 법입니다.
이렇게 튼튼하게 뿌리 내릴 수 있게끔 부모가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합니다.
너무 잘해주기만 해도 안 되겠지만,
그러나 또 그 모든 기반에 당연히 사랑과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누누이 스스로를 계모라고 그럽니다만 실은, 감히 말하는데, 극진한 사랑이었던 것 같습니다. 극진히 사랑만 주고, 따로 해준 것은 없는데 무얼 바랄 게 없지요. 그러니까 굉장히 편해지는 것이지요.
가진 사랑은 그저 속으로만, 너무 퍼붓고 퍼부어서 유
약하게 만들지 말고, 한걸음 떨어져 지켜보면서 응원하는 것이 가까운 사람들의 건강한 관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날개‘는 훨훨 날아갈 수 있는, 스스로 꿈꿀 수 있는힘을 줘야 한다는 말입니다. 내 아이가 뭔가를 꿈꾸고,
나아가고 싶게끔 하려면 부모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
피아노를 치라고 닦달을 하면 피아노를 배우는 게 아니고 닦달을 배웁니다. 그리고 이런 닦달은 대대로 이어져요.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즐겁게 했던, 그 즐거움의 기억으로 뭔가를 이루고 또 나아갑니다. 그래서 함께 즐거웠던 추억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또 그만큼 시간을 줘야 합니다.
꿈까지 주입하려 들면 안 됩니다.
그것만은 절대로 안 됩니다. 좁은 틀에 넣어서 가르치지 않아야 합니다. 물론 방임을 하라거나 버릇없게 키우라는 말은 아닙니다. 가르칠 건 따끔하게 가르쳐야지요.
모든 부모가 시간이 많지만은 않습니다. 그렇지만짧더라도 그 적은 시간이 정말 소중하도록, 함께하는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는 그 힘을 가지고 무엇을 하면 내가 또 즐거울까를 생각하면서 비로소 꿈을
꾸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틈이 있어야 합니다. 쉴 틈이 없으면, 스케줄이 꽉 짜여 있으면 꿈까지 생길 틈이없어요. 좀 멍하니 있을 시간도 있고 이래야 뭐가 고이지요. 그러니까 부모가 아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아이들 마음속에 뜻과 꿈이 자리잡을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기다려주고 지켜봐주어야 합니다.
특히 저는 소위 말하는 ‘학원 뺑뺑이‘를 정말 염려합니다. 남들 다 하는데 안 할 수 없다고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선행 학습을 시키면 학교에서 그때그때 효과가 나고 성적이 올라가는 것은 사실인데, 이로 인해 무슨 문제가 생기는지 부모들도 사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아이가 지금 막 공부하려고 하는데, 거기에 대고 부모가 공부하라고 말하면 하려던 공부도 하기 싫어지는 법입니다. 그리고 미리 공부를 시켜놓으면 일단은 하긴 하는데, 다음에 이거 하고 싶은 마음이생기지 않습니다. 이미 학원에서 공부를 다했는데, 학교에서 무슨 공부가 재미있겠습니까. 남들 다 하는데 안 하면 큰일날 것 같고,
뒤떨어질 것 같은 느낌도 그렇지만, 사실 부모 노릇하기 가장 어려웠던 것은 남들
처럼 못해서가 아니고, 남들처럼 안 하고 참는 일, 그게 제일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제 아이들 예로 다시 돌아가보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딸아이가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무렵 저에게 학교를 자퇴하겠다고 말했어요. 놀라서 이유를 물었습니다.
함께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대부분 과외를 하기 때문에 제 딸만 집에 굉장히 일찍 집에 왔는데요, 보통 5~6교시 끝나면 옵니다. 그런데 자기는집에서 하루종일 책 보고 놀다가 가끔 놀러오는 애들이 있으면 같이 놀면서 학교를 다녔는데, 고등학교 2학년 2학기가 돼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지금 성적, 내신으로는 도저히 대학을 못 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언제든 아이들의 말을 존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기억으로는 그때 유일하게 꽤 강하게 반대를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는 알지만 그래도 제도권 안에서 길을 가는게 그래도 쉬운 길 아니겠느냐, 중졸이 되어 새로 시작하려면 그게 조금 더 힘들지 않겠느냐, 한 번만 더 생•각해보자.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며칠 지나서
그냥 다니겠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럼에도 저는 저나름대로 걱정이 참 컸지요. 그 성적으로 대학교 못간다니 말이에요. 그러다 겨울 방학이 됐는데, 세상에 얘가 다 싸짊어지고 노량진 고시촌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고등학교 2학년인 여자아이가 말이에요. 아마도 굉장히 지독하게 공부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그 공부할 힘이 이미 딸아이에게 충분히 있었다고 봄니다. 왜냐하면 정말 많은 책을 읽었거든요. 그렇게 고시원에서 겨울방학을 다 보내고 돌아와서 봄이 됐는데, 저한테 "제가 물리만 한두 달 과외를 하면 안 될까요?"라고 하더라고요. 그건 자기가 도저히 혼자 못 하겠었나봅니다. 그렇게 물리 과외를 한두 달 해서 대학을 잘 갔습니다. 물론 머리가 좋아서 그랬다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그 많은 책을 읽고, 그만큼 많은 생각을 하고, 정말 자기가 꼭 필요해서 시작했을 때 그 바탕 위에서 요구되는 정도의 노력을 하는 것이 그렇게못할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딸이나 저나 얼마나 불안했겠어요. 그런데 그것 또한 스스로 이겨내야지 어쩌겠습니까.
부모는 아이들이 엎어지고 자빠지고 다치고 실수하136
그냥 다니겠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럼에도 저는 저나름대로 걱정이 참 컸지요. 그 성적으로 대학교 못간다니 말이에요. 그러다 겨울 방학이 됐는데, 세상에얘가 다 싸짊어지고 노량진 고시촌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고등학교 2학년인 여자아이가 말이에요. 아마도굉장히 지독하게 공부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그 공부할 힘이 이미 딸아이에게 충분히 있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정말 많은 책을 읽었거든요. 그렇게 고시원에서 겨울방학을 다 보내고 돌아와서 봄이 됐는데, 저한테 "제가 물리만 한두 달 과외를 하면 안 될까요?"라고 하더라고요. 그건 자기가 도저히 혼자 못 하겠었나봅니다. 그렇게 물리 과외를 한두 달 해서 대학을 잘 갔습니다. 물론 머리가 좋아서 그랬다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그 많은 책을 읽고, 그만큼 많은 생각을 하고, 정말 자기가 꼭 필요해서 시작했을 때 그 바탕 위에서 요구되는 정도의 노력을 하는 것이 그렇게못할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딸이나 저나 얼마나 불안했겠어요. 그런데 그것 또한 스스로 이겨내야지 어쩌겠습니까.
부모는 아이들이 엎어지고 자빠지고 다치고 실수하
고 방황하는 것을 잘 겪어내도록 믿고 지켜봐줘야 합니다. 이미 이야기했습니다만, 제 경우에는 부모님께 정말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바르게 가려고 애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도 참 많은 것을 공부하시고 경험이 많으신 분이지만, 평생 그냥 지켜봐주셨지 이래라저래라 하는 법이 없으셨지요. 그것은 엄청난 신뢰가 바탕에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니까 제가 뭔가를 애쓰고 있을 때 잘해 나가리라고 말없이 믿어주시고, 뭔가를 애써서 잘했을 때 그걸 기뻐해주시는 분들이 없어져버렸더라고요. 물론 친구도 있고, 가족도 있지만 어떤 절대적인 신뢰와 기쁨은 부모가 아닌 경우 그런 순도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되돌아 생각해보면 사랑의 가장 좋은 방법은 믿어주는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는 일입니다. 잔소리하고 학원도 보내고 과외도 시키면 당장은 조금 효과가 있겠습니다만,
길게 봤을 때 넘어져 수렁에 처박혀도 다시 일어날 수있는 힘은, 앞에 절벽이어도 뚫고 나갈 수 있었던 힘은그 절대적인 사랑과 신뢰, 그 믿음의 힘이 아니었던가
생각해봅니다.
헤맨 만큼 넓어지는 영토
얼마 전 일산에 있는 어린이집에 강연을 다녀왔습니다. 각각 ‘나무와 새‘ ‘나무 둥지‘ ‘느티나무‘라는 이름의 어린이집 세 곳이 함께 마련한 자리였는데, 고단했지만 참 즐겁게 다녀왔습니다. 부모가 제 아이 하나 돌보기도 쉽지 않은데 여러 아이들을 돌보는 선생님들이제 책을 읽고, 그 아이들 부모님께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저를 불렀다는 것이 참 감사했습니다.
가서 보니 더욱 즐거웠습니다. 마침 어린이들이 손에손을 잡고, 자기들이 가꾸는 텃밭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어요. 얼마나 예뻤는지 모릅니다.
그곳에서도 부모가 자녀에게 주어야 할 것 두 가지뿌리와 날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아이들에게서 날개가 돋아나기를, 꿈과 뜻이 자라기를 기다려주는 것부모가 대신 달아주면 짐이 될 뿐이지요. 그 어려운일을 젊은 부모들이 꼭 해주기를 바랍니다. 더욱 바라는 것은 아이들이 땅에 발 디디고 뿌리 내리도록
주는 것입니다. 아이가 발을 뗐다는 생각이 들 때 구역 하나를 정해주는 일. 이 구역, 요만큼은 내가 딱 책임진다. 혼자서. 그렇게 시작된 세상 한 귀퉁이가 점점자라나 세계로 뻗어나가기를 바랍니다.
좋은 질문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한 가지가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에게 뭘 가르치려 해봐도, 예컨대 유아원 갈 때 자기 물건을 챙기게 해봐도, 며칠 못 가서화도 나고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뭘 빠뜨리고 가면, 그렇게 가서 낭패인 것을 경험하지않겠는가. 겉옷을 안 입고 가면 춥다는 걸 배울 것이고, 옷을 뒤집어 입고 간들 대수겠는가. 세상에 수업료없는 수업이 어디 있는가. 부모는 다 아이가 평탄하고곧은 길(그것도 자주, 부모 안목의 허구입니다)로 가길 바라지만 아이는 다른 길을 가보고, 엎어지고 자빠지며경험을 쌓습니다. 그렇게 헤맨 곳이 그 아이의 영토가된다고 저는 늘 말합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가 뭐 하나라도 해냈을 때 눈여겨보고 칭찬하고 격려해주는 것 정도입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기회 있으면늘 하곤 하지요. 아이 스스로에게서 뭔가가 자랄 때를기다리지 못하고, 이것저것 주입하며 아이의 인생에
마구 개입하는 부모들의 자신감이 놀랍기도 하지만 우려도 많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육에 관해서는 이야기하기야 쉽지만, 막상 닥치면 현실의 일상이 쉽지 않은줄은 너무도 잘 알지만, 이제는 정말 그런 이야기를 좀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이즈음 기회가 있고 형편이 되면 떠듭니다.
여주 끝에서 일산까지는 만만찮은 거리였습니다. 고단했지만 이런 선생님들이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또 경청하는 학부모들이 있어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좋은 사회 구성원이 잘 키워지는 곳, 거기 아니면 달리 어디에 우리의 미래가 있겠습니까.
주는 것입니다. 아이가 발을 뗐다는 생각이 들 때 구역 하나를 정해주는 일. 이 구역, 요만큼은 내가 딱 책임진다. 혼자서. 그렇게 시작된 세상 한 귀퉁이가 점점자라나 세계로 뻗어나가기를 바랍니다.
좋은 질문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한 가지가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에게 뭘 가르치려 해봐도, 예컨대 유아원 갈 때 자기 물건을 챙기게 해봐도, 며칠 못 가서화도 나고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뭘 빠뜨리고 가면, 그렇게 가서 낭패인 것을 경험하지않겠는가. 겉옷을 안 입고 가면 춥다는 걸 배울 것이고, 옷을 뒤집어 입고 간들 대수겠는가. 세상에 수업료없는 수업이 어디 있는가. 부모는 다 아이가 평탄하고곧은 길(그것도 자주, 부모 안목의 허구입니다)로 가길 바라지만 아이는 다른 길을 가보고, 엎어지고 자빠지며경험을 쌓습니다. 그렇게 헤맨 곳이 그 아이의 영토가된다고 저는 늘 말합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가 뭐 하나라도 해냈을 때 눈여겨보고 칭찬하고 격려해주는 것 정도입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기회 있으면늘 하곤 하지요. 아이 스스로에게서 뭔가가 자랄 때를기다리지 못하고, 이것저것 주입하며 아이의 인생에
마구 개입하는 부모들의 자신감이 놀랍기도 하지만 우려도 많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육에 관해서는 이야기하기야 쉽지만, 막상 닥치면 현실의 일상이 쉽지 않은줄은 너무도 잘 알지만, 이제는 정말 그런 이야기를 좀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이즈음 기회가 있고 형편이 되면 떠듭니다.
여주 끝에서 일산까지는 만만찮은 거리였습니다. 고단했지만 이런 선생님들이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또 경청하는 학부모들이 있어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좋은 사회 구성원이 잘 키워지는 곳, 거기 아니면 달리 어디에 우리의 미래가 있겠습니까.
이 나무의 이파리,
동방에서 와 내 정원에 맡겨져,
남모르는 뜻을 맛보게 하고
아는 사람에게 기쁨 주네
이건 그 자체 안에서 둘로 갈라진
하나의 생명체인가?
아니면 참으로 귀하게 서로 만나
사람들이 하나인 줄 아는 둘인가?
그런 질문에 대답하려다
참뜻을 찾은 것 같네
그대 내 노래들에서 느끼지 않는가
내가 하나이면서 둘이라는 것을?
언뜻 보기에 평범해 보이는 시 한 편으로 은행나무가 바이마르에서 누리고 있는 위상을 생각하면, 우리
해맑은 ‘어른‘ 괴테 할머니가
고단한 이들에게 전하는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수업
바르게 살면 큰일날 것 같고, 무슨 수를 써야지만 손해 안 볼 것 같지요? 아닙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도 살아지고, 작은 결단들에서 언제나 선한 결단 쪽을 택해서 묵묵히 가노라면 그것이 쌓여 마지막에는 무엇이든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묵묵히, 계속, 다만 바른길로‘ 중에서
괴테가 문제를 감당해가는 방법은 그 문제와 정면 대결을 하는 것입니다. 수학문제와는 달리 인생의 문제에는 답이 잘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면 그것을 감당하는 힘이 생기곤 하지요. 그는 정면 대결을 함으로써, 감내나 극복 정도가 아니라 번번이 문제를 뛰어넘어 훌쩍 커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괴테가 문제를 감당한 방법‘ 중에서지난 날들을 돌아봤을 때, 자신의 매 순간순간이 최선이 아니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잘 살아왔으니 그러면 된 것이지요. 그래도 조금 더 열심히 잘해볼걸, 후회가 생기신다면 바로 지금 하십시오.
거대한 일, 멋진 일, 굉장한 일만 하려고 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세요.
죽음을 굳이 떠올리지 않습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