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복있는사람들님의 서재

사건 발생 20일 뒤, 컴퓨터통신에는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덮어주는 아량도 필요한 것 아니냐. 마지막까지 가면 당하는 사람은 다른 보복을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제 그만 좀 해라. 잘못했다고 했잖느냐" 등의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1996년 6월 <한겨레21> 기사는 그들이 과거에서 멀어지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사건 해결까지 가는 동안에 지켜보는 이들은 피해자를 비난하기도 한다.

1996년 7월 3일 <한겨레>를 보면, 고려대 총학생회는 "이대 쪽이 성폭력 사건으로 규정하는 만큼 관련 학생들을 여성단체에서 자원봉사를 시켜 속죄하도록 하는 게 어떻냐"며 학사징계 대신 자원봉사를 요구했다. 

가해자 쪽에서 입맛대로 처벌을 요청하는 모습은 마치 성범죄를 저지른 가수가 "음악으로 보답하겠다"며분별없이 구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당시 총학생회장이었던 윤민화씨는 6월 20일치 <한겨레21> 인터뷰에서 "학칙에 의거한 처벌을 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고대생이 이대생에게 가한 12년간의 폭력은 여성을 주체로 보지 않고 쟁취의 대상으로 보던 당시 대학의 남성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부르주아 의식을 교육하겠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여자대학에 난입해 여학생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것은 여성이 언어를 가지고 지식을 쌓는 것에 대한 남성의 두려움을 반증한다.

- P-1
더 들어가보자. 
여성도 가부장제와 공모한다. 여성이기 때문에 가부장제와 공모하게 된다. 이들은 여성이면서도 여성이 아니었다.

‘민족고대‘로 대표되는 남성문화를 내면화한 상태였다. 약자는 때로 현실의 모순을 직면하는 데 실패해 강자와 공모하게 된다.

약자와의 연대를 통해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마음먹는 일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니 가해자 중에 여학생이 섞여 있었다는 사실은 여성이 남성의 시선을 내면화해 결국 자신에게 내상을 입힐 정도로 가부장제가 복잡하고 강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당시 여성위원장이었던 조혜련씨는 고대 여학생들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이 일화를 통해 우리는 진짜 주체를 발견하게 된다.

"고대 여학생들로부터 온 편지가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그동안 자신들이 눈감고 있던 문화에 대해 말해줘서 고맙다는 편지를 받았어요. 
고대와 이대의 싸움이라기보다 고대와 이대 여학생들이 남성문화에 대해 저항했던 사례가 아니었나 합니다." (‘슬랩‘ 인터뷰 중에서)

실제로 대학의 주체는 남성으로 대표되었다. 

당시 고대생은 연대생과의 학벌주의에 기반한 경쟁의식 속에서 이대생이 저들을 차별하는 것 같은 피해의식에 휩싸여 있었다. 
고대와 연대로 대표되는 남성 간의 파워게임이 이대를 배경으로 벌어졌던 것이다. 

고대생은 응원가인 <막걸리 찬가> 가사를 다음과 같이 개사해 부르기도 했다. "이대생은 우리 것 숙대생도 양보 못 한다."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이 2017년 10월 16일 <한겨레21> 페미니즘 특강에서 설명한 내용은 이 사건을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남성과 남성의 갈등은 남성의 몸이 아니라 여성- P-1
의 몸에서 일어난다. 약자의 몸은 늘 강자에게 전쟁터로 제공된다.

청일전쟁이 한반도에서 일어난 것처럼. 

미국 남성이 한국 여성을 강간하면, 
한국 남성은 미국 남성과 싸우는 게 아니라 
미국 여성을강간하는 판타지를 꿈꾼다."

그들이 폭력의 대상으로 이대생을 삼은 데에는 이러한 생각이 깔려 있었다.
 (나만큼) 똑똑하고 (나만큼) 배운 (사람) 여자를 견딜수 없다. 

이대라는 여성들의 배움터를 자신들의 싸움터로 상상하고 
연세대로 대표되는 다른 남성과의 경쟁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 식으로 실감하는 존재감이란 얼마나 작고 무른가.

2017년에는 연세대학교의 응원가사가 논란이 됐다. 다음은<Woo> 가사의 일부다. 
고대의 <막걸리 찬가>와 닮았다. 
"고대 못생겼어 일단 못생겼어/ 계속 못생겼어 고대 이낏/ 이대한테 차이고 숙대한테 차이고/ 여기저기 차이고 차이고 또 차이고" 
연대에 따르면 고대생이 못생겼기 때문에 이대와 숙대 학생들에게 거절당한다는 것인데, 
남대생을 주체로 삼았다는 것이 같다. 
해당 가사는 여성혐오 논란 이후 개사되었다.


2016년 이후 온라인에서 "왜 안 만나줘"는 상징적인 문장이되었다. 여성이 데이트해 주지 않는 것을 억울해하는 남성들의 대표적인 행태가 유머로 소비되기 시작한 것이다. 
연애와 결혼에서 좌절이 예상되는 시기에 남성의 분노는 강렬해진다. 

여성에 대한•후려치기와 여성 간의 구분을 병행하며 ‘내 여자‘가 될 ‘개념녀‘를•찾아다니고 내 여자가 되어주지 않을 여자에게 분노를 쏟아낸다.

그들이 페미니스트를 향해 "남자의 사랑을 받지 못한 여자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욕인 이유는 그것이 투사이기 때문이다.- P-1
이대와 고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이름을 남겼다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도 두 학교의 남대생들은 이성의 인청을 통해서 세워지는 자존감을 공유한다. 그동안 고려대와 연세대의 여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떤 누구도 누군가의 애인이 되기 위해 입학하지 않는다. 이성에게 선택받는 것 외의 방식으로 삶의 이유를 찾을 수는 없을까.

그들은 신남성이 되었을까. 

1996년 7월 3일치 <한겨레>를 보던 중, 500여 명의 가해자 사이에 법학과에 재학 중인 스무살 학생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사실은 유독 성범죄에만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한국의 판결들과 연결되었다. 

‘소라넷‘과 ‘엔(N)번방 사건에 대한 미온적인 대처, 세계 최대 아동성착취물 사이트 운영자 손정우에게 내린 1년 6개월의 징역, 아동 대상 성폭력 범죄자인 조두순을 격리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알림을 주어 가해자를 피하도록 하는 결정까지. 

최근 디지털성범죄 관련 양형기준이 조정되기는 했지만 우리나라는 성폭력에 관대하다. 

"모든 남자가 그런 것은 아니다"라는 말은 사건을 축소하고 
"좋아해서 그랬다"는 말은 범죄를 장난으로 왜곡한다. 

남성이 중심이 되어온 역사 안에서 
범죄와 처벌이 한데 엉켜 이어지는 것이다. 

사회가 남성의 침범권을 옹호하는 동안 여성은 살아갈 자유를 잃었다.

최근 트위터에서 "24시간 동안 세상에서 남자가 없어지면무엇을 하고 싶냐"고 묻는 말에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밤에 산책, 혼자 산책, 하이킹, 
밤에 잘 때 창문 열어놓기, 
택배 걱정안 하기, 택시 안심하고 타기. 
혼자 여행하기∙∙∙. 

성별 권력의 존재는 
남자에게 침범할 권리를, 
여자에게는 피할 의무를 주고 있다.- P-1
정말인가? 절반은 진실, 절반은 거짓이다. 웬 멍멍이풀 뜯어먹는 소리냐고? 실제로 멍멍이는 풀을 뜯어먹을 뿐 아니라 여린 새싹을 좋아한다. 한국은 변했을 뿐 아니라 불변하기도 했다.

수많은 이들의 힘겨운 노력과 투쟁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침실에 갇혀 있던 성소수자들이 광장으로 나왔으며, 퀴어축제에 가면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즐기는 그들이 보인다. 
사회적 집단으로서 성소수자가 부재하던 시절은 지났다. 
그들은 몇 년 전부터 ‘엘지비티‘의 외연도 넓혀가는 중이다. 
기존의 ‘엘지비티‘에A(Asexual: 무성애자), I(Intersex: 중성 또는 간성), 
Q(Questionary: 성적 지향 혹은 성 정체성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를 더해 ‘LGBTAIQ+‘로 명명한다. 

궁극적으로 이성애 중심 세상이 성소수자를 구분하는 것에 불과한 이 모든 경계가 흐려지길 바라면서.

엘지비티 운동의 역사가 게이 중심으로 흘러온 점, 
동성결혼이 전 지구적 이슈임에도 한국에서는 동성혼은커녕 사실혼조차 인정되지 않는 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여전히 불투명한 점등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늘 그랬듯, 시간은 진격하고 쟁취하는 자의 편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더 많이 떠들고, 더 많이 나대는 수밖에.

 ‘침묵은 곧 죽음. 퀴어축제의 슬로건이다.- P-1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