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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있는사람들님의 서재

학교 강의에 영 재미를 붙이지 못했던 것이 첫째이유다. 전쟁 바람에 서재에 박혀 있던 책들이 쏟아져 나와 청계천을 따라 4가에서 7에 걸쳐 늘어선 고서점에 산더미로 쌓여 있던 시절이다. 헌 책을 뒤지는 일도 재미있었지만 운만 좋으면 이미 금서가 되어 시중에서 자취를 감춘 귀한 책들을 싼값에 살 수 있다는 덤도 있었다. 
백석의 <사슴>, 가와카미 하지메의 <가난 이야기>, 그 밖에 백남운, 전석담 등의 책을 구해 읽을 수 있었던 것도 이 고서점 순례 덕이다. 고서점에서 여러 친구들과도 알게 되었는데, 이 친구들로부터도 많은 것을 듣고 배우면서 나는 새로운 세상에 서서히 눈떠 갔다.

당시 서울은 전쟁의 참화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맨 불타거나 허물어진 집뿐이었고, 가는 데마다 팔다리를 잃은 상이군인이며 오갈데 없는 거지들이 득시글거렸다. 
서울역 일대와 종로 2, 3가는 창녀로 뒤덮였고, 서울역이며 각 버스 정거장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몰려드는 젊은이들로 밤낮없이 혼잡을 이루었다. 

그때 우리가 얼마나 가난했는가는 당시의 우리 국민소득이 50달러인 데 비해 북한은 160달러, 필리핀은 300달러라는 한 자료가 잘 말해 준다. 산업 시설이라고는 전국적으로 전무해서,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물건이라고는 빗자루밖에 없다는 자조의 비아냥이 나올 지경이었다. 

경제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승만 독재는 더욱 극성을 부리고 독재 체제라는 온상 속에서 부패는 극에 달하면서 가난에 시달리는 국민들을 조롱했다. 경제- P-1
고 정치고 나아질 전망은 전혀 보이지 않은 채 전국을 어두운 먹구름이 뒤덮고 있었다. 고서점에서 만나는 책과 친구들은 나로 하여금 이러한 현실에 새삼 눈을 돌리게 만들었고, 나는 차츰 회의에 사로잡혔다. 

이런 현실에 살면서 <갈대> 같은 오늘의 삶과는 동떨어진 시를 쓴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깊이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 뒤에도 <심야>, <사화산>, <그 산정에서>, <유아> 같은 몇 편의 시를 더 써서 발표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 시 쓰는 일이 점점 재미 없어지고 신명이 나지 않았다. 마치 헛발질을 하고 있는 것 같은 허망함을 좀처럼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결국 다른 여러 사정까지 겹쳐 7, 8년 가까이 방황하면서 시를 쓰지 못하게 됐다. 그동안 시를 버리고 다른 일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하기도 했다. 돈벌이를 하겠다고 광산에서 일하는 친구를 찾아가기도 하고 장사하는 친구를 따라다니기도 했다. 
무슨 시험을 치르겠다고 공부를 해 보기도 하고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보기도 했지만나한테 만만한 일은 없었다. 새삼스레 깨달은 것은 내가 가진 재주라고는 그나마 글 쓰는 일이라는 사실이었으며, 그렇다면 앞으로는 시를 쓰되 지금까지와는 달리 현실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시,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의 삶이 담긴 시를 쓰자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시 쓸 생각을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제일 먼저 쓴 시가 <눈길>이다.- P-1
나는 예순이 넘은 지금도 자유, 정의, 인권, 이런 말을 들으면가슴이 일렁인다.

노무현 이름을 들어도 그러하다.
그에게서 희랍 비극의 원형을 본다.
제왕이나 천재가 주어진 거대한 운명에 맞서다가 장렬하게 산화하는 비극으로부터 인간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노무현은 대한민국의 ‘인권‘을 열 걸음쯤 나아가게 한 대통령이다. 
그는 대통령이라기보다 시인에 가깝다.- P-1
일본은 군국주의 세력을, 한국은 친일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후과가 오늘의 위험한 우경화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에 집착하는 한일 양국의 극우 세력은 일본 제국주의의 쌍생아로 국가주의라는 동일한 목표 아래 움직이고 있다고 봐야 적실하다 하겠다. 

그러고 보면 박근혜의 강경한 대일 외교는 국내 정치와 함수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지 근본적인 역사 인식의 차이에서 기인하지 않는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밖으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일본을 비판하면서 안으로는 일본의 후소샤 교과서보다 더 왜곡이 심한 뉴라이트의 대안 교과서를 극찬하고 노골적으로 교학사 교과서에 특혜를 베푸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취할 수 있단 말인가. 

2006년 3.1절 기념사에서 노무현은 말했다. ‘이웃나라에 대해 잘못 쓰인 역사를 바로잡자고 당당하게 말하기 위해서는우리 역사도 잘못 쓰인 곳이 있으면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노무현의 역사 인식과 실천적 면모는 민족문제연구소로서도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적어도 역사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우리도 놀랄 정도로 그 지향이 민족문제연구소와 일치하였다. 아니, 오히려 앞서는 부분이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의 추측과는 달리 그가 개인적으로 연구소와 특별한 인연이 있었거나 교감을 하던 관계는 아니었다.-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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