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를 동시에 요구해야 한다.
하나는 더 이상 성 정체성에따라 직장의 범위가 결정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전통적으로 ‘여성스럽다고 여겨진 가사 노동을 남성이 똑같이 분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요구 모두 강렬한 저항에 부딪힌다.
남성은 이 요구들을 난처해하고 위협적으로 느끼는데, 요즘에는 두번째 요구보다 첫 번째 요구를 조금이나마 덜 불편하게 여기는 듯하다. 이 현상은 가정생활의 문법이 (언어 자체처럼) 성차별적 억측의 가장 강력하고 완강한 요새임을 보여준다.
여성을 억압하지 않는 가정생활 방식에서 남성은 모든 가사활동에 참여할 것이다. (그리고 여성은 가족과 아무 관련 없는 ‘바깥의 의무에 상당한 시간을 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해결책이 남성의 가사 참여도를 높이는 수준에 그쳐선 안 되고, 모든 집안일과 책임을 똑같이 나누는 것이 이상적이다. 가사일 자체도 반드시 재검토해야 한다.
가족은 봉인된 분자일 필요가 없고, 가족의 모든 활동이 ‘그 분자‘ 안에 속할 필요가 없다. 전근대 사회에서 그랬듯, 많은 가사 업무를 공용 공간에서 더 효율적이고 쾌적하게 수행할 수있다. (여유가 있는 각 가족이 개인 베이비시터나 가정부를 두는 것에는, 즉 프리랜서 여성을 고용해 아내의 비공식적이고 보수도 없는 하인 역할을 분담하거나 대체하는 것에는 진정한 유익이 없다.
마찬가지로, (이기심과 두려움이라는 이유를 제외한다면) 각 가족이 자기 세탁기와 자동차, 식기세척기, 텔레비전 등등을 갖춰야할 이유는 없다. 여러 국가가 전근대 경제에서 산업화를 거쳐- P91
상당한 부유층을 제외하고는 개인 가사도우미(주로 여성)를 고용하는 가정이 점점 줄고 있는 한편, 각자 소유한 기계의 도움을 받는 가정이 급증하고 있다.
소비사회에서는
‘개별‘ 가족이 기계 하인의 서비스를 구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신념이지만, 이런 서비스의 대다수를 여러 가족이 공동으로 소유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불필요하게 중복되는 노동을 없애고 경쟁과 소유욕을 억제하고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
가사 노동을 평등하게 나누는 것은 아내와 남편의 역할, 어머니와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억압적 정의를 바꾸는 데 꼭 필요한 단계 중 하나다. 또한 이렇게 하면 작디작은 가족들을 서로 갈라놓음으로써 각 가족의 구성원에게 엄청난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모든 현대 산업사회의벽들을 부술 수 있다.
현대의 ‘핵‘가족은 심리적·도덕적 재앙이다. 성적 탄압의 감옥이자, 일관성 없는 도덕적 해이의 장이자, 소유욕의 박물관이자, 죄책감을 생산하는 공장이자, 이기심의 양성소다. 그러나 가족 구성원들이 불안과 축적된 살인적 감정이라는 지나친 대가를 치르고 있긴 해도, 현대의 가족은 긍정적 경험을 제공하기도한다. 줄리엣 미첼 Juliet Mitchell이 지적했듯이, 오늘날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족은 보통 사람을 소외시키지 않는 대인 관계의 근사치(온기와 신뢰, 대화, 경쟁심 없음, 충실함, 자발성, 성적 쾌락, 재미)가 아직 허용되는 유일한 장소다. 노동과 모든 사회적 유대 관계에서 사람을 - 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