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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있는사람들님의 서재

합니다. 언니네트워크에서 비혼이나 가족구성권에 관한 운동을 해왔어요. 2019년부터 회원으로 있다가 운영위원이된 건 2~3년이 되었네요.

운영위원은 어떤 역할을 하나?
언니네트워크는 연말에 운영회의에서 운영위원들이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문제의식이나 사업 아이디어를 함께 공유해요. 아이디어가 구체화되면, 회원총회 자리에서 사업을 공유하고 기획단을 꾸리죠. <탈가부장:례식>도 그렇게준비한 사업이고요. 운영위원은 물론 기획단원들도 다 자기 본업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럼에도 각자가 하고 싶은이야기도 있고 재미도 있고 해서 자주 모여 사업을 하는 거같아요.

<탈가부장:례식>이 사업으로 채택된 이유는?
2022년에 유난히 장례식에 갈 일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장례에 관한 대화를 나눌 일도 많았는데, 우리가은 장례식들이 참 공허하다는 인상을 받았던 거 같아요. 
고인을 애도하는 시간은 정작 부족하지 않나? 장례식만으로 충분히 서로 마음을 나누고 위로할 수 있나? 하는 고민도 하고요. 
그동안 언니네트워크는 다양성이나 가족 구성권 같은 키워드를 가지고 활동해왔는데,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으로 인해 성소수자의 네트워크가 단절되고, 관계를 상실하는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꼭 퀴어 커플이 아니더라도, 친구와 같이 사는 사람, 혼- P-1
자 살더라도 퀴어 커뮤니티와 연결되어 있음으로써 일상을 지탱해왔던 사람들이 ‘원가족‘ 혹은 ‘법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서로 단절된 거죠. 
그러면서 법적 가족에 갇힌 관계와 단절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되고, 
장례와 애도라는 주제로 그런 이야기들을 더 폭넓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장례를 어떻게 꾸리면 덜 차별적이고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을까? 거기서부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사업을 준비하며 조금 더 신경을 쓴 부분이 있다면?
꼭 결혼이 아니어도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여러 양태가 있다고 생각해요. 성소수자냐 아니냐를 떠나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만나고 헤어지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최대한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게끔 할 수 있을까. 

나의 관계나 정체성이 어떻게 취약함이 되지 않게끔 할 수 있을까. 혹은 취약하더라도 행복할 수있게끔 할 수 있을까. 이런 걸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 고민이 전시에는 어떻게 반영되었나?
전시에는 실제 애도를 할 수 있도록 만든 추모 공간이 있었어요. 그 공간을 아무런 조건 없이 프라이빗하게 쓸 수있도록 신청을 받고 운영했어요. 현실의 장례식장은 애도에 집중하기 어려운 장소잖아요. 
나와 고인의 관계를 밝히는 데도 긴장이 돌고, 상주나 가족의 역할이 있고. 전시에서 대안적 애도 공간을 제시해보고 싶었어요. 언니네트워크 소모임에 합창단이 있었는데, 그 시기에 합창단원으로- P-1
오래 활동했던 회원이 돌아가셨었어요. 합창단분들이 전시공간에서 추모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분을 사랑하는 분들이 모여, 그분이 생전에 아끼던 물건을 가지고 와서 시간을 보내다 가셨어요.

전시 기획에 앞서 네 차례의 워크숍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
전시회를 하기에 앞서, 기획단이랑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기억에 남는 건 3강이었는데, ‘나의 죽음 시나리오 쓰기‘라고 해서, 자기가 원하는 장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어요. 일단 사람들이 공간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이 와서, 그 점도 놀라웠고,
다들 이야기 나누는 걸 너무 즐거워하셔서 진행자가 이야기를 멈추지 못하고 계속 시간이 연장되는 거예요. 
어떤 분은 내가 고른 사진으로 영정을 하고 싶은데, 너무 마음에 드는 사진이 많아서 디스플레이를 설치해서 영정 사진을 전시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가 즐겁게 기억에 남아요. 

우리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구나. 그런데 이야기할 만한 공간이 마땅하지 않았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즐겁다니.
<탈가부장:례식> 전시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놀라웠던 게, 그 전시회를 갤러리에서 열었는데, 1층은 전시 공간이지만 2층은 갤러리 사무실이란 말이에요. 이례적으로 사무실 분들도 내려와서 전시를 구경하셨어요. 보통 퀴어-페미- P-1
니스트 행사를 하면 우리끼리 만나게 되는데, 다른 사람들이 와서 즐겁게 보고 간 게 의미 있더라고요. 

사람들이 내가 기대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지금의 장례와 애도문화에 답답함과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그걸 피부로 느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조금 더 다른 것들을 해볼 수 있는 동력이 된 것 같아요.
내가 원하는 장례를 상상하는 건 즐겁지만, 현실의 장례는 내 뜻대로만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맞아요. 유언장에 아무리 내가 원하는 장례를 쓴다고 해도,
그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이 장례를 치러주는 사람들의 의지에 달린 거니까. 나는 죽어서 내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으니. 

결국엔 내가 맺어온 관계들이 장례를 통해 드러나게 되는데, 그 관계가 현재 한국에서는 법이나 행정적 부분들을 통해 제약되니까.

 법적 가족이 아닌 자가 들어갈 자리가 없죠.

전시를 마치고 ‘친구사이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로부터 탈가부장:례‘ 관련 강연 요청을 받은 적이 있는데, 질의응답 때 한 분이 그런 얘기를 해주셨어요. 자기가 커밍아웃을 한지 얼마 안 됐고, 부모님 반응이 너무 안 좋아서 내가 이 가족들이랑 내 남은 삶을 끝까지 함께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자기가 죽으면 가족들이 내 장례를 치러줄 텐데. 그러면 가족들은 내가 성소수자인 걸 숨기고 싶을 거고, 내 장례가 어떤 모습일지 고민이다. 
그런 이야기를 나눠주셨는데 많이 와 닿더라고요. 단지 성 정체- P-1
성 문제만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마지막 자리에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에서 그 장례를 치러주는 사람들에 의해 ‘진짜 나‘는 사라질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유언장을 쓰는 거 같아요. 
매년 쓰고 있어요.

처음 유언장을 썼을 때는 좀 편지처럼 쓰게 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라 생각을 하고 쓰게 되니까 되게 디테일하게 제가 요구하고 있더라고요. 그 후로 매년 쓰는데, 바뀌지 않는 게 있어요. 7년 된 동성 파트너가 있는데,
그 친구에게 저의 많은 부분을 양도하고 싶고 위임하고 싶다는 의사를 늘 밝히는 거예요. 내가 하늘나라로 가게 되었을 때, 그 친구에겐 장례에 관한 권리가 하나도 없는 거에요 저랑 법적으로 혼인한 관계도 아니거니와 그래서 유언장에 이런 이야기를 쓰게 되더라고요.


<탈가부장례식> 전시 후속으로 더 해보고 싶은 사업이 있나?
전시 때 장례업계에서 일하는 분들이 명함을 많이 놓고 가셨어요. 그렇게 연결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고, 장레지도사가 성소수자, 퀴어한 관계에 대한 이해와 배경지식을 갖춘다면 퀴어 친화적인 장례식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게 ‘실무자를 위한 평등한 장례‘ 매뉴얼이나 워크북 같은 것을 만들어 장례학과나 상조회사에 배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눴어요.- P-1
좋은 아이디어 같다. 매뉴얼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가나?

큼직한 걸 이야기하기보다는, 장례와 애도에 조금 더 평등한 모습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들을 생각하고 있어요. 
사소하지만 많은 것을 바꿔놓을 팁이 뭐가 있을까, 고민해요. 
예를 들면, 언니네트워크에서 내는 잡지 (《어페미니스트)가 있어요. 가족구성권을 다룬 호가 있는데,
그 안에 <병원에서 장례까지 살아남아라, 김 인생 씨>라는글이 있어요. 
거기에 보면, "그 사람이 여자처럼 보인다고그 사람의 상복을 무조건 한복 치마로 준비하지 마라, 치마를 입을 건지 정장 바지를 입을 건지 물어봐라."
 "운구할 사람을 구할 때, ‘운구할 남자‘가 아니라 운구할 사람‘이라 불러라." 
이런 내용이 있어요. 
실무자인 장례지도사에게 다양한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그만큼 존중하고 존중받는 장례를 치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본인의 장례는 어떠하길 바라나?

저는 세부적인 걸 떠올린 적은 없지만, 확실히 바라는 건,
우선 제가 뀨뀨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지 꽤 되었잖아요. 본명이 아닌 활동명 뀨뀨 아는 친구들도 많고, 그래서 장례가 진행된다면 위패에 제 활동명을 같이 적어줬으면 하는마음이 있어요. 
그다음에는 제 파트너가 원하는 방식으로 제 장례를 치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늘 있고요.- P-1
나는 흔들리지 않는 나의 세계가 두렵다. 
그 두려움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문화학자 임기호는 이런 말을 했다. 
"외면과 허무 사이의 선택을 거부하고 죽음 양식을 선택하는 것이 인간이며, 
이 선택에서 삶을 위해 투쟁하는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 

반드시 오는 죽음을 외면하거나, 
어차피 오는 죽음을 허무로 비껴가지 않은 인간은 죽음 양식을 선택해 왔다. 그것이 문화가 되었다. 

선택하고 투쟁하여 살아가는 존재 앞에서 ‘닮지 않음‘은 아무런 이유도 되지 못한다. 삶의 위계도, 죽음의 서열도 소용없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투쟁하는 존재이다. 

내가 만난 장례지도사들이 ‘고생했다‘며 연신 주검을 매만지는 건 이 때문이다. 
이들은 살아가기 위해 해온 투쟁의 고단함을 안다. 

김민정 시인은 지인의 생일 카드에 이런 말을 적어주었다고 한다.
"죽기 위해 태어나느라 애썼어."
우리는 모두 애써 살아온 존재이기에 애도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읽는 동안, 당신과 내가 떠올리지 못한 참사와 죽음, 그리고 전쟁과 학살. 그 모든 죽음에 우리가 가닿기를, 그리하여 안부를 물을 수 있기를.-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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