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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있는사람들님의 서재

ㅇ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고 싶나요?
ㅇ 당신에게 영향을 준 죽음이 있나요?
○단한 순간만을 남겨야 한다면 어떤 기억을 간직하고 싶나요?
ㅇ당신에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나요?

관람객들은 저마다의 답을 포스트잇에 적어 질문 옆에 붙였다.

"어차피 겪을 일을 겪고 있는 거예요. 제 인생에서 바꾸고 싶은건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것도요."
"제가 인생에서 겪은 큰일 중의 하나는, 아버지의 죽음인 것 같아요. 많이 아파하셨고 지금의 저처럼 병원 신세를 졌어요.

집착을 버리면 자유로워진다는 것. 또 그 누구의 기대도 충족시킬 필요는 없지만, 스스로 기대는 충족시켜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제 인생에서 딱 하나 바로잡고 싶은, 후회되는 일이 하나 있는데 그건 저 혼자만 간직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들으면 제가 왜 말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거예요."

"제 믿음은 가족에게 배운 게 아니라, 인생에서 겪은 일들과 상황을 통해서 만들어진 거예요. 어려운 시기일수록 믿음에 매달리죠."

이건 한주원의 생전장례식에 온 이들에게서 나온 답이 아니다.
<생소한 소생> 전시를 보기 두 해 전, 나는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할 이들의 이야기를 만난 적이 있다. 
- P187
나도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귀신을 믿으세요?"
조상신이 자손을 보살피는 이치를 설명하던 나이 지긋한 장례지도사에게 제사 기일에 관해 듣던 참이었다. 
요즘은 다 자기들 편한 대로 제사를 지내느라 기일을 제대로 안 챙겨서 조상들이 제삿밥을 못 얻어먹는다고 했다. "헛제사 지내는 거죠." 대화가 안동의 헛제삿밥으로 이어지려는 찰나, 나는 궁금하던 걸 물었다. 조상신 이야기를 하는 장례인들을 볼 때마다 묻고 싶었다.
 ‘귀신을믿으세요?‘ 아니다. 
좀 에둘러 물었다.
"진짜 영혼이 와서 식사한다고 믿으세요?"
그런 거 왜 묻나 싶었겠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니에요. 안 믿어요."
안 믿는다니. 살짝 배신감이 든다.
"안 믿지만, 믿고 싶은 거예요. 내 조상이 차려놓은 음식을 와서드시고 갔구나. 마음의 위안이죠. 오기를 바라는 거고. 와서 내가 사는 모습을 둘러보고 ‘돌봐줘야겠네, 보태줘야겠네‘ 이런 마음 가져주었으면 좋겠는 거고. 그래서 제를 지내는 거잖아요."

현재까지 이어온 유교식 장례는 ‘조상신‘ 개념을 기본으로 한다.
고인을 가문의 조상으로 올리고, 장자를 가주로 세우기 위한 3년의 프로젝트였던 것이 삼일장으로 축약됐다. 장례지도사들을 보면, 기독교 교회 집사도 있고 신실한 가톨릭 신자도 있다. 일부 종교에선 조상신 개념이 반가울 리 없다. 그럼에도 거부감 없이 제례 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조상신이라는 개념이 가문과 가족을 묶어내는 관습적이자 문화적인 수단임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로 남아 있는 거죠. - P211
장례도 사회보장제도로 보장받아서 누구나 공영장례로 떠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요?
그는 사회보장제도로서의 장례를 말하고 있다. 자신이 운명할 때는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는 공영장래를 치르길 바란다. 

‘장례복지‘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그가 다른 인터뷰에서 한 말을 가져온다.
"무상 의료라는 말은 저희한테 익숙하잖아요. 그런데 무상 장레라는 말은 아직은 낯선 개념인 거죠. 4대 보험이라는 게 질병,
실업, 산재, 노령화 때문에 생긴 문제를 사회가 대응하겠다는 개념인 건데, 요즘에는 치매 같은 것도 국가가 사회보장적 측면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바로 노인장기요양보험이죠. 
그렇다고 한다면 죽음과 장례에서도 국가가 사회보장이라는 측면에서 공영장례를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그래야지만 인간으로서 존엄성과 애도가 보장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노인장기요양보험처럼 장례 또한 사회보장제도로 국가지원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낯선 주장이지만, 달리 생각해본다면 장례를 관장하는 단위가 ‘보건복지부‘라고 했을 때 (장례지도사 자격은 보건복지부에서 인증한다), 나 또한 복지라는 단어를 먼* 공영장례란 "장례 의식 없이 시신이 ‘처리‘되지 않도록 공공(公)이 무연고 사망자 및 저소득 시민에게 검소한 장례 의식을 직접 제공하거나, 또는 이리한 장례 의식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고인이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고유가족과 지인 등이 고인을 애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장례"를 뜻한다. 

보건복지부가 2024년 2월 배포한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 표준안‘에 따르면, 공영장례 대상은 무연고 사망자 외에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장제 급여수급자로서 연고자가 미성년, 중증 장애인, 75세 이상 고령으로 장례를 치르기 어려운 이들을 포함한다.- P-1
장례는 살아가는 일의 한 영역이니까. 하지만 장례가 보건복지부 소속이 된 까닭은 ‘시신 처리‘의 위생 관리에 있었다. 보건의 영역이라고 했다.
숨이 멈췄으니 시신이 맞긴 하다. 그렇지만 나는 죽은 자에게 제사를 지내는 문화권에서 자라온 사람이다. 숨이 멈춘 상태에서도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권리가 나에게 있다고 믿어왔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주검에 예의를 갖출 필요가 없을 테니, ‘요람에서 영안실‘까지가 아니라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건 그런 의미가 아닐까.

그러고 보니 내가 좋아한 영화도 장례를 집행하는 공무원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의 <스틸 라이프>(2013).
주인공 존 메이는 홀로 죽음을 맞이했거나 장례를 치러줄 이가 없는 사람들의 장례를 치르는 일을 한다. 부고를 알리고 장례식에 고인을 아는 이를 초대한다. 

나눔과나눔 활동가 박진옥, 그가 하는 일과 비슷하다.
존은 런던 케닝턴 구청 소속 공무원이나, 박진옥은 서울시와 업무 협약을 맺은 비영리단체 활동가이다. 나눔과 나눔은 상근자들의 월급을 비롯한 활동비를 서울시가 아닌 단체 회원들의 후원으로 충당하고 있다. 

서울시가 책임지는 것은 장례의 물품과 장례업체와 용역을 맺은 염습 및 시신 처리 비용 등이다. 그러니까 지자체가 지원하는 장례 비용(93만 원 상당, 2024년 기준)에 국한한다.
장례의 제반 사항을 챙기고, 부고를 알리고, 자원봉사자 모집과 사별자를 맞는 일에 대한 비용적 책임은 지지 않는다. 
국내 어느지자체나 마찬가지다. 공영장례 조레조차 갖추지 못한 시와 구단위가 적지 않다.-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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