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두 장의 그림을 손에 쥐었다. 하나는 과학의 눈으로 세계를 그린 과학적 세계관이다. 이 그림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그림이다. 학교에서 교과서를 통해 배운 그림과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신화로 채색되어 있지않다. 교회의 말씀에 기초하지도 않았다. 과학이 세계를 가장 잘 그리고 있으며, 앞으로 점점 더 잘 그릴 수 있고, 또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그림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1장 ‘이 세상에 풀 수 없는 수수께끼는 없다-비엔나에서 우리는 20세기 전반,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등장한 ‘비엔나 학파‘의 과학에 대한 무한 신뢰를탐사했다. 그들은 공개적으로 과학적 세계관을 선언했다. 우리 모두가 과학적세계관으로 무장해서 세계를 바라보기를 희망했다.
과학은 세계를 보는 우리의 눈을 새롭게 뜨게 했다. 누가 이 점을 부인하겠는가? 지금까지 나타난 인간의 지식 체계 중에서 과학이 가장 놀라운 성과를- P-1
거두었다는 사실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그러나 다시 물어보자. 과학은 모든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 인가? 그리고 모든 학문은 반드시 과학을 전법으로삼아야 하는가?
이어서 과학적 세계관과 대칭을 이루는 또 하나의 그림을 우리는 받아 들었다. 이 그림에서 과학은 지식의 하나일 뿐이다. 과학은 다른 인간의 앎보다 우원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더 열등하지도 않다. 과학적 세계관은 ‘서양‘이라는특정 공간 속에서, ‘근대‘라는 특정 시간 속에서 태어난 하나의 세계관일 따름이었다. 과학,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서양 근대 과학‘을 통해서 바라본 세계는원시 사회에서 주술을 통해 바라본 세계와 다를 것이 없다. 아니, 서양 근대 과학으로 무장한 세계관은 주술적 세계관보다 더 위험하다. 오로지 과학적 세계관만 옳다고 주장하면서 과학적 세계관에 적합하지 않은 것들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P-1
2장 ‘철학의 새 천년, 1968년에 시작하다-파리‘에서 우리는 20세기 후반에등장한 ‘철학적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관을 여행했다. 철학적 포스트모더니즘은 과학적 세계관을 전복한다.- P-1
포스트모더니즘은 방아쇠를 ‘근대‘의 심장을 향해 정면 조준한다. 근대가쓰러지면, 근대의 산물인 과학적 세계관도 함께 무너질 것이라고 계산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과학에 ‘서양 근대 과학‘이라는 모자를 씌운다. 이성에 ‘서양근대 이성‘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보편적 진리‘를 근대를 지배한 백인과 남성,
그리고 부르주아지가 합작해서 만들어 낸 허위 이데올로기로 파악한다.
오늘의 세계는 ‘과학적 세계관‘과 ‘포스트모더니즘 세계관이 그린 그림이교차한다. 과학 문명의 발달로 세계는 하나가 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국경의 벽을 자유롭게 뛰어넘는 것은 사람과 상품, 그리고 자본만이 아니다. 이른바 ‘세계 표준‘을 정하는 데는 체제와 이념도 예외가 아니다. 세계는 놀라운 속도로 하나의 지구촌으로 향해 가고 있다. 단순화해서 말하면, 이러한 흐름은과학적 세계관의 확산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에서 태어나 세계로 확산된 근대화의 ‘연속‘이라고 할 수도 있다.
다른 한편, 오늘의 세계는 다문화 사회이기도 하다. 문화 상대성이 용인되고, 사회적 소수의 권리가 존중되는 시대다. ‘다문화주의‘에서는 하나의 잣대로 모든 것을 획일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너와 나의 다른 잣대를 인정한다. 너의 문화와 나의 문화의 다름을 재앙이 아니라, 축복으로 바라본다. 단순화해서- P-1
말하면 이러한 흐름은 포스트모더니즘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에서 태어나 세계로 확산된 근대가 드디어 막을 내리고, 과거와 ‘단절‘ 된 새 시대가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러분에게 다시 묻는다. ‘과학적 세계관‘과 ‘포스트모더니즘 세계관이 그린 세계의 그림 가운데 어느 편을 더 지지하는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비엔나와 파리 철학 여행에서 계속 던진 질문이다. 공은 여러분에게 넘어왔다. 이제 여러분이 답할 차례다.- P-1
3장은 위 물음에 대한 필자의 답안지다. 3장 ‘우리는 하나의 세계에 살고 있다-실재의 귀환‘에서 나는 ‘실재‘의 귀환에 큰 희망을 건다.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실재를 소환했다. ‘과학적 세계관‘과 ‘포스트모더니즘 세계관‘에서 귀양 가 있던 실재를 소환해서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의 모순을 해결하려고 하는 세계관을 나는 ‘리얼리즘‘이라고 불렀다.
전체 여행 중에서 유럽의 도시를 탐사하지 않은 유일한 장이 이 3장이다. 아마 무슨 무슨 주의라는 이름이 가장 많이 등장했던 곳이 아닌가 싶다. 좀 지루하기도 하고, 조금 어렵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나는 여기서 분명하게 말한다.- P-1
이장은 획 건너뛰어도 상관없다. 나의 답안지를 읽는 것보다는 여러분의 답안지를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물론 나는 여러분을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이 답안지를 썼다. 그리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쓸 생각이다. 이번에 답안지를 쓴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에는 좀 더 부드럽게 쓸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논리에 허점이 보인 대목을 틀어막기 위해서는 더 생경한 용어를 동원할지도 모르겠다. 아마 전자는 이 책과 같은 철학의 대중화를 위한 글에서 드러날 것이고, 후자는 좀 전문적인 논문에서 나타날 것이다.
2부에서 우리는 근대적 세계관의 원리를 ‘클로즈업‘해서 살펴보았다. 그것은 우리가 1부에서 그린 ‘과학적 세계관‘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위기를 살펴보는 것이면서, 동시에 ‘포스트모더니즘 세계관‘의 씨앗이 어떻게 싹텄는가를역으로 추적하는 것이기도 하다. 큰 흐름에서 보면, 근대 초기에는 과학적 세재판을 예찬하는 계몽의 정신이 강조되었고, 근대 후기에 접어들면서 포스트모더니즘 세계관의 힘이 점점 강해진다.- P-1
4장 ‘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피렌체‘에서 우리는 근대의 시작을 알- P-1
린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로 떠났다. 여기에서 우리는 근대의 출범을
‘근대적 인간‘의 탄생에서 찾고, 근대적 인간의 특징을 나의 눈으로 세계를 본다는 점으로 풀었다.
나의 눈은 신의 눈이 아니라 인간의 눈이다. 인간의 눈은 항상 그가 서 있는곳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의 눈으로 그린 세계에는 항상 나의 시각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나의 시각으로 그린 세계를 추하고 불완전하다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름답고 질서 있다고 당당하게 생각한 사람이 근대인이었다.
미술에서는 ‘원근법‘, 건축에서는 ‘투시법‘이라는 이름으로 각각 불리는 ‘시각 perspective‘의 원리는 지금 여기에 나의 눈을 고정시켜 세계를 바라보는 동일한 원리의 다른 표현이다. 그것은 또 정확하게 카메라를 탄생시킨 과학의 원리이기도 하다. 이렇게 나의 눈은 화폭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고, 도시 공간을새로운 질서로 건설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를 과학적으로 보는 첫걸음이되기도 한다.
르네상스 시대에 등장한 시각법은 공간을 합리적으로 분할하는 원리가 된다는 점에서 근대 합리주의를 예고하고 있으며, 그 누구도 아닌 나의 경험적 시각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근대 경험주의를 배태하고 있다. 또한 거기에는 이미- P-1
5장 이성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밝히는 빛이다. 찰스테르담에서 우리는주의의 원류를 찾아 17세기 암스테르담으로 떠났다. 암스테르담은 사종교의 자유를 찾아온 사람들이 세운 자유의 도시였다. 그곳에서 우리는근대 철학의 닻을 올린 데카르트와 스피노자를 만난다. 그들이 건설하고자 한세계는 이성의 눈으로 본 세계였다. 그들이 해석한 나의 눈은 곧 이성의 눈이했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는 근대 세계를 세우는 방법으로 이성을 내세다. 이성은 이치에 맞게 생각하는 능력이며, 철학의 제일 원리를 이끌어내는이었다.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그의 선언은 철저하게 이성이 가진 추른 과정에서 나온 것이었다. 데카르트가 세운 세계의 그림은 이성이 그린 세계했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가 세운 물질과 정신의 이원론적 철학에 반대했지그 반대의 논리에 동원된 것은 데카르트적 개념의 이성이었다.- P-1
6장 ‘하얀 백지에 인간 사회를 그리다- 에든버러‘에서 우리는 세계의 기본- P-1
원리를 이성이 아니라 경험으로 상정한 경험주의들을 추적했다. 그들이 하얀백지 위에 그린 그림은 이성의 눈이 아니라 경험의 눈으로 그려진다. 이성이그린 그림은 경험의 세계를 초월한 형이상학으로 규정되어 불 속에 버려진다.
경험의 기획은 현실 세계에서 큰 위력을 발휘했다. 존 로크가 씨를 뿌린 경험주의는 정치 이념으로서 자유주의 정부론과 결합하면서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새로운 정치 질서를 가진 세계를 건설했고, 데이비드 흄에 의해 완성된 경험주의는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는 애덤 스미스의 자본주의 경제론을 탄생시켰다. 또 아이작 뉴턴은 가설보다 실험 관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험 과학의원리를 세웠다. 우리는 6장에서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고향 에든버러를 중심으로 이러한 ‘경험의 기획‘을 살펴보았다. 그 무렵 나라를 빼앗긴 스코틀랜드의 지식인들이 정부가 아니라 시장과 시민 사회에 관심을 둔 이유도 넌지시짚어 보았다.- P-1
7장 ‘계몽의 철학적 주춧돌을 완성하다-쾨니히스베르크‘에서는 칸트 철학에 초점을 맞추었다. 지금은 러시아 땅 칼리닌그라드로 이름이 바뀐 동프로이센의 수도 쾨니히스베르크를 평생 떠나 본 적이 없는 칸트는 근대적 세계관의- P-1
두 주역, 이성과 경험을 ‘선험‘으로 묶는다. 모든 인식은 경험에서 시작하지만그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이성(칸트의 용어로는 오성)은 경험에서 온 것이 아니라고 칸트는 주장했다.
칸트 철학은 경험을 뛰어넘어 있지만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선험의 철학‘
이며, 또 이성의 힘으로 이성을 비판하는 ‘비판의 철학‘이다. 그는 이 선험 철학 또는 비판 철학으로 독단론에 빠진 이성의 기획과 회의론에 빠진 경험의 기획을 종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sapereAude"고 외쳤다. 계몽의 힘은 이미 주어져 있다. 문제는 타인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선언하는 용기라고 칸트는 말한다. 우리는 칸트 철학에서 근대인의 완성을 읽는다.- P-1
8장 ‘절대정신의 세계 역사를 정리하다-베를린‘에서 우리는 헤겔과 만난다.
칸트에서 근대인의 철학이 완성된다면, 헤겔에서 우리는 근대를 벗어나는 ‘탈근대‘의 조짐을 읽는다.
헤겔 철학은 칸트 철학의 용어로 씌어진 칸트 철학에 대한 이의 제기다. 칸트철학에서 등장한 철학 용어는 헤겔 철학에서 새롭게 해석된다. 헤겔은 칸트- P-1
철학에서 핵심을 이루는 ‘선험적 환원‘, 곧 객관의 경험적 내용을 주관의 형식으로 환원하는 것을 형식주의라고 비판하고, 객관과 주관을 서로 얽혀 있는 또는 상호 매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른바 ‘변증법‘이다.
헤겔은 그의 시대를 ‘새로운 시대‘ 또는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로규정했다. 오늘의 시대를 새로운 시대, 또는 과도기로 규정하는 탈근대 철학과닮은꼴이다. 이성의 변증법적 자기 전개가 사회와 역사에 항상 매개되어 있다.
는 점에서 이성의 사회적·역사적 제약을 강조하는 탈근대 철학과 또 닮았다.
우리는 칸트가 선언한 자신만만한 근대인의 모습이 헤겔 철학에 오면 역사의꼭두각시가 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말을 탄 세계 정신‘으로헤겔이 감격한 나폴레옹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른 한편 헤겔 철학의 목표인 절대정신의 자기완성은 근대 세계의 완성이기도 하다. 그것은 역사의 종언, 곧 역사의 최종 완성이다. 그것은 자기 눈으로세계를 바라본 근대인이 자신을 완벽하게 파악한 단계라고 해석할 수 있다.
독일 관념론의 두 거인 칸트와 헤겔은 이렇게 같은 용어로 다른 모습의 근대를 그리고 있다. 우리는 칸트의 선험적 관념론과 헤겔의 절대적 관념론의 핵심개념인 ‘선험‘과 ‘변증법‘으로 곧바로 직진했다. 그들의 철학은 난해하기로 악- P-1
명 높다. 그러나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한다. 7장과 8장은 매우 딱딱하고 어려웠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칸트와 헤겔 철학에서도 가장 난해한 대목으로 돌진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방법이 역설적으로 가장 쉬운 독해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철학을 명사로서 외우고 정리하려고 하지 마라. 그들이 사용한 난해한용어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동사로서 ‘철학하는 즐거움을 느껴 보기를 나는다시 한번 강조한다.- P-1
9장에서 우리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으로 떠났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가 최초로 일어난 대영 제국의 심장 런던에서 우리는 빅토리아 시대 영광의 뒷골목을 거닐었다. 그 거리에서 우리는 뿌리 뽑힌 삶을 살아가는 부랑자와창녀, 그리고 올리버 트위스트 같은 고아들을 만났다. 소호의 거리에서, 그리고대영 도서관의 열람실에서 <자본론>을 집필한 마르크스를 만났다.
마르크스는 부르주아지가 그린 근대 기획이 실패했다고 선언하고, 노동자계급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세계를 꿈꾸었다. 말하자면 그는 근대의 기획서를다시 쓴 인물이다. 9장 ‘근대 프로젝트를 새로운 틀로 바꾸다-런던에서 우리는 헤겔의 제자인 마르크스가 헤겔이 주장한 변증법적 관념론의 역사를 변증- P-1
법적 유물론의 역사로 어떻게 고쳐 썼는지 그의 발자취를 추적했다.- P-1
10장 ‘근대가 꿈꾼 인간은 허구다-바젤‘은 2부의 마지막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뜻밖의 이야기를 듣는다. 애당초 근대라는 것은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근대의 기획서를 새롭게 고치고 말고 할 필요조차 없다. 우리는 바젤에서근대가 생각한 보편적 인간이란 하나의 허구에 불과했다는 니체 철학의 궤적을 들여다보았다. 그가 말한 "신은 죽었다"는 유명한 선언은 기독교적 세계관만을 부정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어 문헌학자였던 니체는 고대 그리스의 인본주의를 새롭게 탄생시켰다는 근대 르네상스를 허구로 바라본다.
니체는 소크라테스 철학이 아름답고 균형 잡힌 고대 그리스 정신을 타락시켰다고 했다. 니체의 지적이 옳다면, 소크라테스 철학, 정확하게 말해서 플라톤에 의해 정리된 소크라테스 철학을 되살리는 르네상스는 그 시작부터 부패한 셈이다. 르네상스라는 말 자체가 허구인지도 모른다.- P-1
3부 ‘서양 철학의 뿌리를 찾아서‘에서 우리는 고대 그리스와 중세 유럽으로먼 시간 여행을 떠났다.- P-1
11장 ‘생각이 막히면 고대 그리스로 떠난다-아테네‘에서 우리는 지금까지우리가 더듬어 온 철학 문제의 원류를 찾아 기원전 5세기 아테네 거리를 거닐있다. 그리스인이 세운 ‘노모스nomos(인간 세계)‘에서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플라톤의 증언을 통해 들었다.
‘너 자신을 알라‘는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경구를 통해 자신이 옳다는 것을주장하다가 결국 독배를 마시고 죽은 소크라테스의 재판은 인간이 세운 노모스의 세계가 자연의 세계인 ‘피시스physis‘ 와 같이 보편적 원리가 통할 수 있는곳인지, 아니면 인간이 만물의 척도가 되는 상대성을 인정해야 하는 것인지,
오늘의 문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P-1
12장 ‘유럽이 만들어지다 - 로마로 가는 길‘은 이 책에서 가장 긴 시간대를탐사한다. 그래서 우리의 여행 공간을 로마에 묶지 않고, 로마로 가는 길로 확장했다. 로마로 가는 길은 뒤집어서 말하면 로마에서 출발하는 길이다. 그 길을 연 것은 로마였지만, 그 길을 따라 유럽 도시들이 하나 둘 세워지고, 그 길을통해 사람과 문물이 오가면서 오늘의 유럽이 만들어졌다. 유럽의 도시들의 약3분의 2가 중세 시대에 로마로 가는 길을 따라 건설되었다. 로마 제국이 무너- P-1
지면서 시작된 중세 시대에도 로마는 여전히 유럽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P-1
우리는 이 여행에서 중세의 공간이 기독교 신학과 플라톤 철학이 찰떡궁합으로 만나 천 년의 가약을 맺은 곳이 아니라 치열한 사상의 전쟁터였다는 단서를 곳곳에서 포착한다. 핏줄과 핏줄의 서로 다른 가치 체계가 충돌하고, 정교분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종교와 종교가 격돌한 천 년 세월의 전쟁 속에서살아남은 승자가 기독교 신학과 플라톤 철학이라고 보아야 옳다. 기독교 신학과 플라톤 철학이 평온한 중세 천 년을 이끈 것이 아니라, 기독교 철학과 플라톤 철학의 동맹 전선이 최후의 승자였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
천년 중세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뜻밖에도 같은 뿌리를 가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제 대결을 지켜본다. 이 전쟁은 아리스토텔레스 제자들의 연합 전선인 스콜라 철학의 승리로 귀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스콜라 철학은 정치와 종교를 분리했고, 세속과 관련된 일은 의회에서 종교와 관련된 일은 교회에서 각각 맡도록 함으로써 정교가 분리된 근대 정치의 틀을 놓았다. 중세가 우리에게 준 선물 세 가지, 곧 대학과 의회, 그리고 정치에서 분리된 교회는 바로아리스토텔레스 제자들의 작품이었다.- P-1
그러나 생각의 전쟁에서 속단은 금물이다. 플라톤의 제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들이 구축한 중세의 질서를 무시하고 새로운 역사의 도래를 선언했다. 아예 판을 뒤집어 버린 것이다. 르네상스가 시작된 피렌체는 바로 플라톤의 제자들이 한판 뒤집기로 근대를 연 곳이기도 하다. 근대가 중세의 단절인가연속인가 하는 논의는 오늘날 용어만 살짝 바뀌어 다시 재현되고 있다. 지금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근세의 단절인가 연속인가 하는 정체성 공방은 우리시대만의 고민이 아니다.- P-1
모든 철학은 항상 자신의 시대를 위기로 파악한다. 이리 가느냐 저리 가느냐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는 운명의 갈림길에서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가 가장 평온한 시대라고 상정하는 중세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철학의 역사를 중세에서 마감한 책을 나는 읽은 적이 없다. 그래서 중세의 끝자락이며, 근세의 첫 자락에서 철학 여행을 접는 것이 영어색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이 책을 쓰는 동안 내내 필자의 머릿속을 떠나지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중세의 모습은 바로 오늘의 거울이라고. 그래서 중세에서 마감을 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여운이 남을 수도- P-1
있고, 또 생각할 공간을 가장 크게 남길 수도 있다고. 우리가 이번 유럽 철학 여행의 목표로 설정한 지금 여기, 그리고 우리에 대한 정체성을 다시 생각하기에적합한 결론이라고- P-1
Mission Accomplished?
기억하는가? 우리는 여행의 최종 목표를 유럽 철학을 이해하는 데 두지 않았다. ‘지금‘ ‘여기‘에 살아가는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것으로 정했다. 이제물어보자. 목표는 이루어졌는가?
긍정적인 답을 얻지 못했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쉽지 않은 일이다. 어차피한 번의 여행으로 얻을 수 있는 답도 아니다. 평생 찾아 나서야 할 문제인지도 모른다. 또 정해진 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철학의 대가들도 끊임없이 철학의 역사를 새롭게 고쳐 쓴다. 철학이란 어떤 점에서 항상 새롭게 고쳐쓰는 철학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 철학을 새로 썼고, 헤겔은 칸트 철학을 재해석해서 새롭게 만들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시각으로, 자신의 말로, 자신의 문제를 설정하는 것이다. 이 말을 살짝 바꾸면, 우리가 유럽 철학 여행의 또 다른 목표로 설정했던- P-1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의 눈으로 철학 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지금‘과 ‘여기‘, 그리고 ‘우리‘가 똑같은 것일 수는 없다. 이세상에 나와 똑같은 복제물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행에서 우리가 보는 것이 똑같을 수도 없다. 여행에서 우리가 구하는 것이 동일할 수도 없다. 설사 내가 같은 코스를 여행한다고 하더라도 항상 똑같은 느낌을 갖는 것도 아니다.
이제 다시 물어보자. 여러분은 어떤 종류의 여행을 떠난다고 하더라도 여러분 스스로가 결정한 여행 코스로 떠날 것인가? 그리고 그 여행의 주제를 스스로 정할 것인가? 당연하다고? 그러면 성공. 목표는 달성되었다.
MissionAccompolished!- 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