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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있는사람들님의 서재

흰쥐를 생체실험한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긴장되면서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기회가 되면 또 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 실험을 통해 무엇을 배웠냐고 물었더니심장과 간, 콩팥 같은 것이 흰쥐의 몸속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흰쥐가 불쌍하다고 하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후에 이 아이들에게 흰쥐 생체실험을 시킨 어머니를 만났다.
왜 그런 실험을 시켰냐고 물었더니, 나중에 과학 공부를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다른 아이들도 다 하니까, 그런 것을알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또 토끼를 생체실험한 후에 몹시 괴로워하는 한 고등학생을만난 적이 있었다. 과학 동아리에서 행해진 실험이었는데, 그소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 있는 토끼를 마취시키고 해부하는 친구들이 무서웠다고 했다.
나도 고등학교 때 토끼를 해부한 경험이 있다. 마취한 토끼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목에 올가미를 씌워 죽인 토끼였다. 마을 어른들은 그 토끼를 다리 밑으로 끌고 가서 나한테 해부하라고 했다. 털을 없애고, 배를 가르고, 간과 콩팥이며 쓸개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찾아가도록 훈수하였다. 그분들은 나에게 과학적인 지식을 알려주기 위해 그런 일을 시킨 것이 아니었다.
생명의 소중함을 알려주기 위해 그런 일을 시킨 것이었다. 비록 인간이 잡아먹을 수밖에 없지만, 간이며 쓸개, 창자 등 인간과 모든 걸 똑같이 갖춘 동등한 생명체라고 하면서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함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때부터 이런 글을 쓰려고 준비하고 있었는지모른다.
나는 서울에서 ‘우리 가게에서는 동물실험을 거친 화장품만판매합니다!‘ 하고 용감하게(?) 써붙인 글을 보았다. 나는 한동안 그 가게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놀랍게도 그 가게는 손님이아주 많았다.
하루에도 애완동물의 목줄을 끌고 다니는 사람을 수십 혹은수백 명씩 마주친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어진다. ‘당신들에게 애완동물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만약 그 애완동물들이 실험실로 끌려간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애완동물과 야생동물은 다른가요?‘, ‘우리가 먹는 삼겹살이나 치킨과는 어떻게 다른가요?‘라고.
나는 강연을 듣는 아이들에게 종종 "너희들은 참 불행해."라는 말을 한다. 그때마다 그들은 약간 놀란 듯하다가 이내 체념하는 눈빛을 지으면서 내 말을 자기들 방식으로 해석한다. "그래, 우리 세대는 불행하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취업하기
쉽지 않고, 점점 많아지는 노인들을 다 먹여 살려야 하고......"
내가 히죽히죽 웃다가 "왜냐고? 너희들은 너무 오래 살아야 하니까!"라고 말하면 그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폭소를 터트리다가 이내 서글픈 웃음을 짓는다. 맞다. 지금 아이들은 불행하다.
인간이 자랑하는 엄청난 과학과 숱한 의학 지식이 수명을 끝없이 연장시킬 것이다. "그런데 이백 년, 삼백 년 산다면 너희 그많은 시간을 뭐 하고 살래? 시간은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니거든." 내 말에 아이들은 그냥 멍하니 나를 쳐다만 보고 있다.
나는 가끔씩, 지금 내가 행복한가, 하고 묻는다.
나는 가끔씩 청소년이었던 과거 속의 나에게 넌 행복했니?
묻고 싶어진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는 인간들을 많이 만났다. 책을 통해서 혹은 꿈을 통해서 과거 속의 사람을 만난 적도 있다. 인간들은 잘 살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했다. 오래 살면 행복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과학과 의학의 발전으로 인간들의 소득은 엄청나게 늘어났고, 평균수명도 거의 배 이상 늘어났다. 그렇다면 그들의 행복 지수도 그만큼 늘어나야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행복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들이그렇고. 미국이 그렇고, 일본과 한국이 그렇다. 그런데 그들은
더욱 더 맹렬하게 잘 살고 싶어 하고, 오래 살고 싶어 한다. 영원히 살고 싶어 한다. 만약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면, 그러니까 신이 된다면 그때는 행복해할까? 이 글은 그러한 물음표들의 메아리다.
나는 한 지인이 보내온 카톡을 몇 번이나 곱씹는다. "코로나19를 일으킨 바이러스의 등장은 근본적으로 환경을 착취의 대상으로 대하는 인류의 태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하지만 어떠한 언론도 거기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오로지 악의 축인 바이러스의 퇴치만이 정답인 것처럼 떠들어댄다."
나는 앞으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일어날까 봐 두렵다. 인간의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모든 동물들이 착취의 대상이라는 발상이 바뀌지 않는 한 인간의 미래는 한순간에 지옥으로 변할 수도 있다.
나는 그런 두려운 마음으로 이 책을 세상에 내보낸다. 공교롭게도 이때에 코로나19 라는 전염병이 온 나라를 태질하고 있어서 몹시 우울하다. 그래도 날은 풀리고, 땅에서 새로운 생명이 돋아나고 있어서, 그것들을 보고 다시금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매화꽃이 피고 버들개지도 부풀어 오르고 
봄눈까지 휘날리는
2020년 3월 어느 날, 이상권
인간의 그늘 아래 스러져간
수많은 생명을 위해
생태 이야기꾼 이상권이 들려주는 ‘불편한 진실‘

"인간은 결코 특별하지 않아.
수많은 생명체 중 하나일 뿐이지."
가축도 인간과 똑같은 생명체야. 최소한 몸을 맘대로 돌릴 수 있고, 맘대로
털을 고를 수 있고, 맘대로 누웠다가 일어날 수 있고, 맘대로 날개를 펼칠수 있어야지. 지금 너희들이 좋아하는 치킨, 삼겹살, 스테이크가 되는 닭이나 돼지, 소들은 최소한 그런 자유조차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 살고 있거든.
지옥이나 다름없지. 그런 곳에서 강제로 살만 찌우도록 한 다음, 인간의 입으로 들어오는 거야. 그러니까 인간은 가축들의 지옥을 먹고사는 것이지.
-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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