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실린 여덟 가지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기 위하여
이 책에는 모두 여덟 편의 한문 단편을 골라 실었습니다. 사실 한문단편은어른을 위한 읽을거리로 등장하였고, 그래서 어린이들에게 읽히기에 부적절한 내용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장래의 역사를 담당할 훌륭한 인간형 내지 인간 기질을주제로 한 이야기들은 오늘날 우리 어린이들이 읽어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나아가 매우 사실적인 인물 설정과 이야기 전개는, 앞서 말한 것처럼 18~19세기 무렵 우리 조상들의 삶의 모습을 실감나게 전해 주어 흥미롭기도 합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이 책을 좀 더 알차게 읽을 수 있도록 한 편 한 편의 개략적인 내용과 배경이 될 사항을 소개합니다.
뺨 맞은 원님
전형적인 한문단편에 속할 이 이야기는 성질이 고약한 원님을 아랫사람들이 짜고서 골탕을 먹이는 이야기입니다. 선정을 베풀어야 할 관리가 자기고
집이나 세우고 일을 잘못된 방향으로 처리해 가면 박 소극적이지만 유쾌한 방법으로 골려 줄 수 있다는 데 재미가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지방 수령을 중앙에서 파견한 대신, 거리(胥)들은 그 지역출신이 종신직으로 맡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끼리 짜기만 한다면 아무리지위가 높은 수령이라 할지라도 이런 봉변을 당할 수 있었지요.
물론 서리들의 이 같은 행동에는 나쁜 점도 있습니다. 비록 여기서는 수령의 잘못이 크고, 그래서 아랫사람들이 마을의 안녕을 위해 선한 거짓말을 동원한 것으로 처리되어 있지만, 자기 이익만을 위해서 이런 상황을 악용하는사례 또한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수령과 지방 서리들이 적당히 결탁하게 되지요. 그래서 백성들의 삶만 어려워지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바보 신랑 성공기
조선 시대 양반은 신분상 특권을 누리고 살았지만, 그것은 과거에 붙어 정상적인 벼슬살이를 해야만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양반들의 자식에대한 교육열은 오늘날과 다를 바 없었지요.
조선의 사회 · 경제 구조에서는 관리가 되어 벼슬살이를 하는 것 말고 뾰족한 다른 출세 길이 없었습니다. 과거에 붙어 관리가 되려는 경쟁은 오히려 지
금보다 더 치열했다고 할 수 있지요.
대대로 빛나는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래서 대단한 중압감을 지니고 살았을 것입니다. 자기가 사는 시대의 사회 구조에 적응하지 못하고 바보가 되어 버린 그는 한 사회가 가진 문제점의 소설적 표현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공부하는방법이나 사람이 가진 장기는 다 다르다는 점이 나타나 있습니다.
조선 시대판 ‘바보 온달‘이라 할 이 이야기는 원래 제목이 ‘김안국‘인데, 실제로 김안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으나, 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과는 무관합니다.
옛 하인 막동이
양반 제도라는 것이 철통 같은 조직망으로 짜여져 아랫사람의 진입을 막았던 것 같지만, 18~19세기를 넘어가면서 뜻밖의 사태들로 신분 변동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였지요. ‘수염이 석 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오늘날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먹을 것이 없으면 양반
도 양반 행세를 하기 어렵고, 상놈이라도 돈을 가지고 높은 신분을 살 수 있는 기묘한 상황이 이 시기에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 같은 배경을 염두에 두었을 때 매우 실감나게 읽힙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강조하고, 그러지못했을 경우 양반이라도 날카로운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지요. 하지만 주인공 막동이가 보여주는 언행은 그 시대의 보편적인 상하 관계나 윤리 의식을 밑바탕에 갖고 있다 할 것입니다. 그것이 돈을벌어 양반이 된 중인 이하 서민들의 인식과 행동의 한계였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타고난 신분이 아닌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열려 있는 사회의 가능성을 작게나마 보여주었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북경 거지
조선 시대 때 중국으로 가는 사신들의 통역을 맡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역관이라 합니다. 이 이야기는 한 역관이 겪은 일을 소재로 씌어졌지요.
조선은 초기에는 명나라에, 후기에는 청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쳤습니다. 이른바 사대주의의 전형적인 행사였기에 그 자체로는 기분 나쁜 일이긴 하지요. 그러나 당시 정치적인 면에서 보면 불가피한 일이었고, 다른 측면
에서는 그것이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창구인데다 조공을 빌미로 한하나의 무역이었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이 이야기 속의 사건도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하겠습니다. 오천 냥의 은화를 가지고 가서물건을 사와 판다는 것은 당시의 무역 행위 가운데 하나였던 셈입니다.
작은 나라의 역관이지만 자존심을 지키려 하는 데서 나오는 주인공의 행동은 다소 엉뚱한 데가 있지만, 장사에 눈을 뜨면서도 사람을 믿는 도리를 지니고산 새로운 인간형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금 가득 은 가득 요술 바가지
한문단편의 묘미가 드러나는 구성에 인물 묘사가 뛰어납니다.
여종이 자기 방을 꾸밀 수 있다거나, 자신의 직관적인 판단으로 남편을 고를 수 있다거나 하는 점들이 자칫 조선 시대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으나, 여러분들은 이미 여기 실린 단편들을 통해 시대가 변한모습을 보았기에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여종에게 선택된 주인공 남자는 ‘바보 온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도타운 정과 기이한 행동을 지닌 특이한 사람으로 그려져 소설적 재미를 한껏더해 주고 있습니다. 재물에 대해 아무 욕심이 없으면서, 자기보다 못한 사람
들을 위해 아낌없이 베푸는 모습들을 마음속에 담아 둔다면 좋겠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요술 항아리를 약속대로 갖다 버리는 장면은 이 이야기가허구임을 암시하면서 동시에 허욕과 욕심을 버리고 살기를 바라는 이야기꾼의 배려가 담겨 있다고 하겠습니다.
엽전 두 꿰미 공덕
이 이야기는 여기서 소개하는 한문 단편 가운데 가장 완벽한 소설적 구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먼저 시골의 향반들이 중앙의 관직을 얻기 위해 취하는 행동이나, 지금의송파나 거여동이 서울의 관문으로 누렸던 상업적 열기 따위를 확인할 수 있지요. 다른 한편 주인공이 비록 허황하고 무능하다 해도, 다른 측면에서는 그지없이 착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고, 끝내 그 같은 자신의 성격대로 살아가다복을 받는다는 점을 중요하게 보아야겠습니다.
사실 원본에서는 불쌍한 여인이 은혜를 입어 큰돈을 벌었다는 데 초점을맞추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실으면서는 ‘엽전 두 꿰미‘가 어떻게 사람의 아름다운 인연을 맺어지게 했는가에 주목하였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세딸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합니다. 재산을 자식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지만 자식은 누구도 부모를 모시려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배은망덕한 딸들이지요.
그런데 그것이 딸이니까 그랬다는 자칫 그릇된 인식을 가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게다가 사촌 남동생은 누이들에게 모함을 당해 집을 나가기까지 했으면서도 끝내 숙부를 잘 모셨다는 것이니, 남자니까 그랬다고 간단히 몰아가버리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아들이든 딸이든 자식들이 부모를 후원자로만 본다든지, 부모의 능력에 따라 모시거나 모시지 않는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인다든지 이런 모습은 오늘날에도 여기저기서 목격되는 바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나아가 이웃이며 스승과의 만남에서도사람을 대하는 원리와 원칙은 마찬가지라는 점을 일깨울 수 있을 것입니다.
은 항아리
부모나 어른이 자식이나 젊은이들에게 가르칠 진정한 교훈이 무엇인가를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이 무렵 가장 값어치 나가는 화폐 단위는 은이었습니다. 북경으로 가는 역관들이 은을 가지고 가서 교역 수단으로 삼을 만큼 국제적인 화폐이기도 했
학부모와 선생님을 위한 보충 설명
앞서 말한 것처럼 한문 단편은 기본적으로 어른들의 읽을거리였습니다. 이야기에 따라서는 어린이들이 읽고 이해하는 데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을 읽히는 학부모님과 선생님들이 그 배경을 잘 이해하시고 도움말을 주면, 옛 선비들의 삶과 철학이 오롯이 전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몇 가지 참고가 될 만한 사항을 적습니다.
먼저 ‘한문단편‘이라는 용어를 처음 쓴 학자 가운데 한 분인 이우성 선생은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조 후기, 특히 18세기 이후에 상품. 화폐 경제의 발전에 따라 도시의 형성과 농촌의 변화, 양반 사족의 광범한 몰락과 중인 · 서리 등을 위시한 상인.
수공업자·농민들 사이에서의 신흥 부자들의 대두 등등, 많은 새로운 역사현상과 더불어 일반적으로 전통적 가치관이 크게 동요되면서 부와 신분의갈등, 남녀간의 본질적 정욕과 기존 규범과의 모순이 중대한 문제로 제기되는 동시에, 그 해결에의 추구가 이 작품들에 의하여 진지하게 그려지고있으며, 또한 장래의 역사를 담당할 훌륭한 인간형 내지 인간 기질이 양반계급에서가 아니고 민중 속에서 발견되고 있음을 이 작품들은 가장 잘 포
착하였고, 또한 가장 잘 묘사했다고 할 것이다.
이 같은 설명은 그대로 한문 단편의 특징이면서, 야담을 한문 단편이라는용어로 바꾸어 쓴 학자들의 기준이기도 합니다.
한문단편은 이 같은 분위기가 성숙되는 과정에서 소설의 형식으로 발전해간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대체로 짧은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므로 단편(短篇)이라 하지만, 소설이라 붙이기에는 어설픈 대목이 있습니다. 한문 단편이라는 용어를 쓰는 데는 이런 사정이 있지요. 이들과 달리 소설적 구성을 거의완벽하게 갖춘, 예를 들어 박지원의 「허생전」 「호질」 같은 경우에는 한문 (단편)소설이라 이름 붙입니다. 그러므로 한문 단편을 야담과 한문 소설의 중간쯤이라 해두면 무난할 듯합니다. 야담보다 나아간 점은, 소재나 그것을 다루는 솜씨가 훨씬 더 리얼리티를 띠었다는 점입니다.
이우성 선생과 함께 한문 단편의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한 임형택 선생은다음과 같이 그 성격을 정리하였습니다.
1. 비록 한문 표현을 쓰고 있지만 고답적이고 난삽한 문투가 아닌 우리 민족 특유의 속담, 생활어휘를 적절히 폭넓게 구사해서 평이하며 우리의 정
감에 밀착되어 있다.
2. 그 시대 인간의 삶의 현실을 구체적 사실적으로 다양하게 반영하였다.
특히 새로운 부의 추구, 신분의 분화, 민중의 저항 등 이조 후기 역사의 발전적 방향을 부각시키고 있다.
3. 역사의 전진적 방향에서 창조적 저항적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사고하는인간의 갈등을 포착하여 새로운 인간 형상을 창출하였다. 저항적 창조적인주인공은 주로 민중 속에서 발견되고 있었다.
4. 이처럼 사실적이면서도 전개 방식은 서술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형성 과정의 특수성(강담사의 이야기가 정착된 것)에서 연유된 현상이다.
우리 문학사를 보면 18세기 이후의 분위기는 이전과 상당히 다른 면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문 단편들이 우리 특유의 정감에 밀착하여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새로운 인간 형상을 창출한다는 점은 같은 시기의 사설시조의 발전이나 판소리 · 탈춤 등의 성장과 궤를 같이합니다. 전통적인 농업 경제의 기반은 그대로이지만, 견고했던 양반 체제가 흔들리고 왕실과 귀족 그리고 농민사이에 맺어진 전통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능력 있는 개인의 재산이 인정되는분위기가 성립되면서, 이른바 돈 버는 일이 사람 사는 모습들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 분위기를 근대적 자본주의의 싹이라고까지 보는 학자들도 있는데, 비록 전반적인 사회 현상은 아닐지라도 분명 이전사회와 달라진 모습이고, 어느 정도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적 요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때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한문 단편은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소재와 과감한 주제를 다룰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주제와 소재는 한문 (단편)소설에서도 발견할 수 있으나, 한문단편은 더욱 간단하고 재빠른 형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어떤 사안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기에 훨씬 쉬웠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러기에 문학사에서도 "한문 단편은 신분제의 동요, 화폐경제의 발달, 타고난 기질의 긍정 등을 문제로 제기하면서 현실적 경험에 입각한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조동일 선생)고 서술되고 있습니다.
한문단편이 실린 책들
이와 같은 한문단편을 실어 전해 주는 책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먼저 야담집의 경우, 유몽인(寅, 1559~1623)의 『어우야담(於于野談)』을최초의 야담집으로 칩니다. 그는 세상에 전해 오거나 주위에 돌아다니는 이
야기를 찾아 모아서 기록한다고 하였는데, 임진왜란 후 자신이 암행어사로지방을 돌면서 들은 이야기들이 주로 실렸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유봉인의이런 일은 같은 양반 사대부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물론노래나 이야기를 모으는 일은 고대 중국에서부터 치민(民)의 한 수단으로행해졌던 바입니다.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이것들을 들어 보면 민심을 살필수 있다고 생각한 까닭입니다. 치민의 수단으로 관에서 수집하던 것이었으므로 그 주제나 내용에서 제한이 가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몽인의 작업은 그 같은 관료적인 의식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것이 도리어 지탄의 대상이 된 이유였겠지요.
앞서 소개한 안석경의 『삽교만록」은 지은이가 강원도 두메산골 삽교라는곳에 들어가 살면서 겪은 바를 정리한 것이고, 「파수록」은 같은 시기 곧 18세기 중엽 지은이 미상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본격적인 야담집으로는 19세기에 들어 편찬된 이희평(李羲平, 1772~1839)의 『계서야담(西野談)』을 듭니다. 그는 사대부 출신이기는 하나 당대 민간에서 유행하던 창의성 있는 설화를 적극적으로 수집하였는데, 이를 계기로야담집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청구야담(靑邱野談)』과『동야휘집(東野彙이 나오기에 이릅니다.
「청구야담」은 19세기 중엽 이후에 만들어져 가장 많이 읽힌 책입니다. 한문으로 기록되었으므로 상당한 신분에 있는 문필가의 손을 거쳤을 것이 분명한데, "하층민이 겪은 사연을 통한 세태 묘사에서 한층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도 받고 있습니다. 여섯 권의 책에 260편 가량의 이야기가 실려 있으니 양으로 압도하지만, 앞에 나온 야담집들과 중복되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그러나 야담집으로서 결정판이라는 평과 함께 이 분야 연구의 가장중요한 자료로 받아들여져 최근에 번역본이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이원명(李源命, 1807~1887)의 『동야휘집』은 이조판서에까지 오른 사람이라는 편찬자의 이력이 특히 눈에 띕니다. 「어우야담」과 「계서야담」의 저자가 같은 신분이었음을 의식해서인지 두 책에다 자기가 들은 이야기를 보태서 새로운 야담집을 만들려 했고, 편집이 조금 딱딱하다는 점에서 『청구야담과는 구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편찬자가 분명하고, 양적으로 『청구야담에 버금가는데다 야사(野史類)의 성격까지 갖추고 있는 점이 특이하여많은 연구자들의 관심 대상이기도 합니다.
이밖에 이 책에 소개한 이야기들이 실린 야담집으로 『차산필담(此山筆談)』과 『동상기찬(東廂記纂)』 그리고 『파수편)』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19세기 후반에 나온 것으로 보이는 『차산필담』은 호를 차산(山)이라 했던 김
해 출신의 아전 배전(裵)이 편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열여섯 편이실린 작은 책인데, 창작의식이 두드러진다는 좋은 평과 함께 이율배반적 중인의식의 소산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도 받고 있습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청구야담」의 수준에 이르지 못함은 분명하지요. 『파수편』은 일본에 소장되어 있는 편찬자 미상의 필사본인데 그 내용이 『청구야담』과 거의 중복되고,
『동상기찬』은 일제 시대 때 백두용이라는 사람이 엮어 출판한 책입니다.
이상의 야담집에는 책 이름에 야담, 필담 등의 용어가 보일 뿐, 한문 단편이라는 말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한문 단편은 앞서 소개한 바 오늘날의 연구자들이 만들어 낸 용어입니다.
요즈음에 와서 이 한문단편은 어떻게 전승되고 있을까요?
먼저 번역의 형태로 소개되는 경우로 『청구야담』 등의 번역 출간이 이루어졌습니다.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편찬한 책으로는 이가원 선생이 엮은 『이조한문소설선』이 1960년대에 나왔고, 1970년대에 들어 이우성·임형택 선생이엮은 『이조한문단편집이 선을 보였습니다. 특히 후자는 한문 단편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키며, 학계에서 이 분야의 연구를 이끈 책입니다. 모두 서른아홉종의 문헌에서 176편의 이야기를 뽑아 세 권으로 나누어 짤막한 해설과 함께번역하고, 원문까지 실어 놓았습니다.
해 출신의 아전 배전(裵)이 편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열여섯 편이실린 작은 책인데, 창작의식이 두드러진다는 좋은 평과 함께 이율배반적 중인의식의 소산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도 받고 있습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청구야담」의 수준에 이르지 못함은 분명하지요. 「파수편」은 일본에 소장되어 있는 편찬자 미상의 필사본인데 그 내용이 청구야담과 거의 중복되고,
『동상기찬』은 일제 시대 때 백두용이라는 사람이 엮어 출판한 책입니다.
이상의 야담집에는 책 이름에 야담, 필담 등의 용어가 보일 뿐, 한문 단편이라는 말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한문 단편은 앞서 소개한 바 오늘날의 연구자들이 만들어 낸 용어입니다.
요즈음에 와서 이 한문 단편은 어떻게 전승되고 있을까요?
먼저 번역의 형태로 소개되는 경우로 『청구야담」 등의 번역 출간이 이루어졌습니다.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편찬한 책으로는 이가원 선생이 엮은 『이조한문소설선이 1960년대에 나왔고, 1970년대에 들어 이우성 · 임형택 선생이엮은 『이조한문단편집이 선을 보였습니다. 특히 후자는 한문 단편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키며, 학계에서 이 분야의 연구를 이끈 책입니다. 모두 서른아홉종의 문헌에서 176편의 이야기를 뽑아 세 권으로 나누어 짤막한 해설과 함께번역하고, 원문까지 실어 놓았습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이가원과 이우성. 임경의 편찬서에 기대어 엮었습니다. 특히 『이조한문단편집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원문과 대조해 가면서부분적으로 고치거나, 독자의 수준에 맞게 표현을 바꾸어 쓰기도 했음을 밝힙니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이 수록된 책
뺨 맞은 원님: 「축관장지인타협(逐官長知印)」 『청구야담』 2권
바보 신랑 성공기: 「김안국(金安國)」 「동상기찬』 2권
옛 하인 막동이 : 「송반궁도우구복(宋班窮途遇舊僕)」『청구야담』 6권,
「구복자철보은정(舊僕刺鐵保恩情)」 『동야휘집』 4권
북경 거지: 제목 없이 실림, 『삽교별집』 4권
금 가득은 가득 요술 바가지: 「택부서혜비식인(擇夫壻慧婢識人」『파수편』上권, 『청구야담」 8권
엽전 두 꿰미 공덕: 「수은식화(受恩殖貨)」 『차산필담』 2권
은혜를 모르는 세 딸 : 제목 없이 실림, 「파수록
은 항아리 : 「굴은옹노과성가(堀銀甕老寡成家)」『청구야담 2권참고한 책이조한문단편집 상·중·하」 이우성· 임형택 엮음, 일조각 1973~78『이조한문소설선」 이기원 엮음, 민중서관 1961『청구야담』 이월영 • 시귀선 옮김, 한국문화사 1995야담문학연구의 현단계 1~3』 정명기 엮음, 보고사 2001한국야담자료집성 1~12 정명기 엮음, 고문헌연구회 1987『한국문학통사』 조동일 지음, 지식산업사 1984『한국문학사의 시각』 임형택 지음, 창작과비평사 1984
"네가 만 냥을 구하는데, 겨우 오천 냥뿐이라 대답을 못하였을 뿐이다.
너도 꽤나 성급하구나. 우리를 조롱하고, 우리나라를 작다고 깔보다니."
기운은 호기스럽게 은 주머니를 던져 주었다.
그 주머니에는 서울을 떠나올 때 나라에서 빌린 은 오천 냥이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그때서야 북경 거지는 절을 하며 말하였다.
"소인이 말실수를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대인께서 깊이 꾸짖지 않으시고하찮은 거지에게 일을 맡겨 주시는군요. 이제야 비로소 기회를 얻어제 능력을 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른 통역관들은 기운이 또 정신 나간 짓을 하는구나 하고 비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