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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고래가 내는 노래는 15~25Hz 음역대인데, 1989년 냉전 체제가 해체되어 가던 때 미군 해군 소속의 음파 탐지 병사는 52Hz로 노래하는 고래로 추정되는 소리를 탐지한다. 이 사실은 학계에도 알려지고 이 소리의 주인공이 과연 고래인지, 고래라면 어떤 고래인지 탐사가 시작된다. 고래의 모습을 관찰할 수는 없었지만 탐사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은, 고래의 소리가 맞고, 한 마리가 내는 소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고래는 이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높은 음역대의 외톨이 고래.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의 존재는 이렇게 세상에 알려진다.

소설 <52헤르츠 고래들>은 52헤르츠 고래에 대해 알려진 바와 달리 복수형 어미를 제목에 달고 있다. 주인공 키코는 친어머니에 의해 학대 받으며 자랐다. 친구의 도움으로 집에서 탈출했고 회사를 다니며 아픔을 이겨내고 있다. 학대의 기억은 일상생활을 지배하곤 했고 자주 외로웠다. 자신을 엄습하는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울고 있던 어느 날, 츤데레 같던 룸메이트는 늘 말없이 맥주 한 캔을 내주곤 했는데 그 날은 씨디플레이어를 받는다.

그 안에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의 노래 소리가 퍼지고 있었다. 방탄 소년단의 앨범 중 <화영연화>라는 제목이 있는데 그 수록곡 중 ˝whalien52˝라는 노래가 있고, 이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이쯤되면 그 소리가 궁금할 수 밖에. ^^
https://soundcloud.com/bbc_com/the-52hz-whale-recorded-by-bill-watkins
영국 BBC가 그 소리를 홈페이지에 담아 두었다.

회사의 전무 치카라와 사랑에 빠진 키코에게는 그 사랑이 시작되기 전부터 존경하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안상과는 맺어지지 않았다. 그는 키코를 아껴주었지만 그 이상의 선을 탐하지 않았고, 키코도 그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유지했다. 치카라에게 안상을 소개시켜 주던 날, 아니 안상에게 치카라와 친구들을 소개하던 날, 안상과 치카라는 묘한 신경전을 벌였고, 치카라는 그 만남을 계기로 안상을 만나지 말 것을 종용한다.

키코의 사랑은 행복의 사다리를 타지 못했다. 치카라에게는 약혼자가 있었고 신분의 차이는 난관을 극복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키코를 손가락질 했다. 안상이 키코에게 적극적으로 애정을 고백하지 않았던 것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이유가 있었다. 키코만이 아니라 안상도 52Hz 소리를 내는 고래였다. 안상은 자살한다. 치카라와 다툼을 벌이다 키코는 치카라의 손으로 칼에 찔리고 만다. 부상은 회복되겠지만 마음의 상처는 아물 길이 없었다. 키코는 치카라의 아버지인 사장에게 이별 위로금을 받아들고 할머니가 살다 돌아가신 시골 마을의 빈집으로 낙향한다. 이 낙향의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한다.

하릴없이 해안가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다 비를 만난 키코는 그 날 지저분한 옷차림의 장발 소년과 만난다. 그의 온몸에 있는 멍자국을 키코는 알아본다. 어찌된 일인지 소년은 말을 하지 않는다. 이름도 알지 못하지만 신경이 쓰이는 키코는 소년에게 52(고쥬니)라는 별명을 지어준다. 세 번째 고래다.

키코와 고쥬니는 서로의 상처를 아물게 할 것인가? 세상은 이들의 서로 돌봄을 방해하지 않을 것인가?

소설 속 이야기처럼 52Hz 고래가 한 마리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이 소설은 같은 제목으로 영화로도 만들어 졌다. 몇 년 전 일본 사람들을 크게 울렸다고 한다. 보통은 원작이 있는 영화의 경우 소설 쪽이 훨씬 나은 경우를 많이 봤다. 글과 영상은 서로 차원이 다르다. 글로 쓴 서사와 묘사는 아무리 자세히 그려내도 문자 속의 이미지를 독자가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다양한 상상력과 가치관을 반영해서 채색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상은 이런 채색의 허용도가 매우 낮은 매체일 수 밖에 없다. 대개의 경우 글 쪽이 더 많은 정보와 가능성을 품고 있고, 영상은 이것을 확정함으로서 보다 분명한 이미지를 만들지만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존재했던 가능성을 소거한다.
이 소거의 결과는 훨씬 뚜렷하고 분명하다. 소거 이전의 글은 반투명 유리처럼 흐릿하지만 다양하다. 사람들은 앞의 것을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고, 내 경우는 뒤의 것을 선호한다.

그런데도 이 작품의 경우 소설도, 영화도, 괜찮게 봤다. 소설에서는 들을 수 없고 상상하기만 했던 고래의 소리를 영화에서는 들을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일 것 같다.

보통의 영화에서 남녀 주인공들들의 외모는 과잉되곤 한다. 저 캐릭터가 꼭 저렇게 아름답거나 잘 생길 필요가 있는가 생각하곤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외모가 몰입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 저렇게 얼굴 뜯어 먹고 살다가 늙으면 어쩌려고 그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내가 대신 고민해 줄 일은 아니니까 그쯤하고 만다. 다만 과잉이잖아 하는 생각은 늘 거둘 수가 없는데,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들의 외모가 무척 설득력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정체성이 나중에 드러나는 안상은 그에 비해 불필요하게 키가 너무 크지 않은가 생각했고, 다만 그 수염은 설정과 무척 어울렸다는 점을 말해둔다.

소설과 영화의 스토리와는 별도로 52Hz 고래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흔히 목소리 없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그다지 좋은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목소리가 없는 사람은 없다. 목소리는 하나의 대표적인 기호일 뿐인데, 그런 의미에서 ‘의사‘, ‘의지‘, ‘뜻‘이 없는 사람은 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표현을 알아채는 사람과 사회가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과 사회가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목소리 없다‘고 간주되는 사람을 대신하는 목소리나 그들이 목소리를 내게 하는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소리‘나 ‘표현‘을 알아 듣는 사회의 감각과 능력이 필요할 뿐이다.

좀 엉뚱한 마무리일지도 모르겠다.
미국 해군은 왜 1989년에야 52Hz 고래의 소리를 탐지할 수 있었을까? 바다가 좀 더 조용해져서 라고 어딘가에 쓰여 있더라. 바다의 소리를 탐지하는 이유는 소련의 잠수함이 미국 서해안을 누비고 다닐까 봐서였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겪은 미국에게 그것은 무시할 수 없는 공포였을 것이다. 그러나 1989년이면 음향 탐지병의 임무는 충분히 느슨해 졌을 것이다. 잠수함 스크류 돌아가는 소리는 더 이상 미 서해안의 태평양에서 들을 수 없다. 무기들이 사라진 태평양의 소리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탐지병의 귀에 원래부터 존재했지만 들을 여유가 없었던 그 소리가 들린 것은 우연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뒤로 세상의 전개는 평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미국은 여전히 누군가의 무기를 두려워 하고 있거나 적어도 그렇다고 주장한다. 이제는 한국마저도 수 개월을 떠오를 필요가 없는 핵추진 잠수함을 가지게 된다며 호들갑을 떠는 세상이 왔으니 저 바다의 외로운 고래의 노래는 다시 들리지 않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군소설 #52헤르츠고래들 #마치다소노코 #세상에서가장외로운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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