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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님의 서재
  •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 김영하
  • 9,000원 (10%500)
  • 2010-07-20
  • : 3,971
단편소설이 소설의 요체라 믿던 한 대학시절 교수님은 이야기가 길 필요가 뭐가 있냐 하셨다.
태백산맥이나 토지나 그렇게 길게 쓸 필요가 뭐가 있었냐라는 교수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단편소설의 미덕을 강조하시기 위해서 저렇게 굳이 이야기 하시는구나 싶었다.
그 당시 그 교수님의 단편소설 사랑의 근거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을 청해 듣지는 못했다.(혹은 들었지만 기억이 안나거나....)

단편이나 장편이나 저 나름의 호흡이 있고, 작가나 독자나 대하는 방식은 다를 것이다.
장편소설에 길들여져서 기승전결을 굳이 나누고 찾는 독서습관이 있다면 단편은 읽기에 반죽만 끝낸 피자정도 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단편소설에 길들여져 있다면 이 얘기 저 얘기 다 끌어다 붙여서 먼 길 에둘러 가는 길을 알려주는 네비게이션 같은 장편소설을 원망 할 수 도 있겠다.

내 생각에 단편의 미덕이라면 역설적이게도 '마지막 문장의 어정쩡함'이다.
독자들에게 주제의식 따위에 대한 강박을 벗어버리게 해주고, 무엇을 생각하든 너의 자유로다...라고 선언하는 듯한 툭 던지고 빠지는 마지막 문장.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끝이 아니기에, 이야기 바깥에서 한창 구경을 하던 우리(독자)들은 싱겁게 끝난 이야기를 보며 어리둥절 또는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해 또 나름대로의 2차적인 정신적 방황...

아래는 재미로 다시 들쳐본 김영하의 단편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의 마지막 문장들.

"그리고 그 아래에 이렇게 덧붙였다. *찬찬히 생각해볼 것!"-로봇
"노랗게 빛나는 환한 터널이 택시를 삼키자 수진은 눈을 감았다"-여행
"영원히 입을 다물 수 없게 된 박제 악어는 언제나 허공만을 응시하고 있다."-악어
"그녀의 피부가 눈부셔 모두 눈을 감았다."-명예살인
"그들은 계속 먹고 마셨다. 그야말로 꾸역꾸역이었다."-아이스크림

소설집의 이름처럼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르니 너 맘대로 한번 생각해보라는, 또 거기서 교훈을 찾고 싶으면 찾던지, 삶의 단면을 발견할 수 있으면 하라는 식. 
시들도 단편소설화(?)된 경향이 많아진 요즘, 무언가에 대한 영감을 그야말로 원샷 원킬로 찔러주는 단편소설의 역할은 세상의 모든 장편들의 프로토타입 일 것이고, 마라톤 같은 우리 삶에 만나는 전체인지 부분인지가 항상 헛갈리게 생긴 묘한 지도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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