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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
  • 빌 브라이슨
  • 10,800원 (10%600)
  • 2009-02-23
  • : 874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시리즈.


이 책은 빌 브라이슨이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쓴 칼럼을 모은 것이다. 빌 브라이슨은 일단 재미를 보장한다. 그리고 읽고나면 뭔가 유식해지는 느낌도 갖게해서 고민없이 책을 집어들게 하는 작가다. 내 책장에 있는 것도 4권 정도가 된다. 이 책을 읽고나서 빌 브라이슨은 왜 재밌는가 생각해봤다. 더 정확히 말하면 빌 브라이슨은 왜 웃긴가.


왜 웃긴가.


그의 유머가 어떤 식인지 알 필요가 있다. 내가 파악하기로 몇가지로 요약된다. 그리고 그의 유머를 생각해보는 글은 그의 글만큼 재미가 없다. 핵노잼이 예정되어 있는 글을 시작해보자면.


첫번째로 '과장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나는 늘 늦은 밤에 TV를 켜고 '개방대학'을 보는 게 재미있었다. 그 안에는(아마도 남은 시간을 모두 역전류 검출관 앞에서 보낼 생각으로)1973년에 단 한 번 간 '쇼핑여행'에서 앞으로 입을 옷을 몽땅 사가지고 왔을 것처럼 보이는 강사가 나와서 이상하게 단조로운 목소리로 "따라서 발산하지 않는 두 개의 해(解)를 더했을 때 또 하나의 발산하지 않는 해가 얻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같은 말을 하곤 했기 때문이다."


또 이런 것도 있다.


"그 결과 우리는 대체로 말이 뛰다 나왔나 싶을 정도로 푹 꺼진 침대에 냉방장치라곤 열린 창문이 전부고, 한밤중에 가구 부서지는 소리와 '총 내려놔, 비니. 뭐든 시키는 대로 다 할게'라고 말하는 여자의 째지는 듯한 목소리를 듣고 잠이 깰 것만 같은 모텔 방에서 야영을 해야 했다. 이런 경험들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거나 불합리하게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영화 <싸이코>에서 재닛 리가 모텔 욕실에서 살해당하는 장면을 보고 '그래도 저기엔 샤워 커튼이라도 있네'하고 생각했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건조하게 어떤 광경을 묘사하는 글들은 차고 넘친다. 이런 글들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 건조한 문체는 눈이 글을 따라가면서 차분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가가 어설프게 구사하는 끼를 보지 않아도 된다. 대부분의 경우에 어설픈 유머는 건조한 문체보다 더 견디기 힘들다. 웃기려고 노력하는 상대방을 지켜보는 일은 일상생활에서는 그나마 견딜만한 편이다. 딴 생각을 하고 있을 수 있고,그 가상한 노력을 나를 위한 호의라고 여겨 고맙게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책을 집어 던진다. 아니면 뭐라도 있을거라 기대하면서 참아본다. 이 두가지 선택지 밖에 없는 상태에 놓인다. 그리고 전적으로 이 사태의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다.

따라서 잘하지 못할 바에야 하지 않는 것이 백번 나은 이런 '대놓고 유머'는 외줄타기의 심정으로 쓸 수 밖에 없어보인다.

빌 브라이슨은 실재를 부풀려서 당시의 기분을 묘사한다. 그리고 그런 묘사로 기분은 더 잘 표현된다. 놓치고 넘어가는 감정이 없이 이것과 저것을 잘 기억해두었다가 적확한 상황에 이어붙여서 묘사의 정확성을 극대화 한다.


두번째로 '불평한다.'


미국사회의 관료주의를 비판하는 대목이 나오는 데 이런 식이다. 아내의 사화보장카드가 어디 있는지 모를 때 사화보장번호를 알아내려고 사회보장국에 전화를 걸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본인에게만 알려주도록 되어 있는데요."

"카드에 이름이 적혀 있는 사람 말인가요?"

"맞아요."

"하지만 그녀는 내 아내인걸요."

"카드번호는 본인에게만 알려주도록 되어 있어서요."

"만약 내가 내 아내라면 전화상으로 내게 그 번호를 말해줄 수 있나요?"

"그렇지요."

"하지만 다른 사람이 내 아내인 척하고 전화를 걸어서 물어볼 수도 있잖아요."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전화한 사람을 그 사람 본인이라 여기고 알려주는 거지요."

"잠깐만요."

나는 잠시 생각했다. 아내가 외출을 했으니 그녀를 불어올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 모든 과정을 반복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다시 수화기에 대고 보통 때의 내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세요, 저는 신시아 브라이슨인데요, 제 카드번호를 알 수 있을까요?"

신경질적으로 킬킬 웃는 소리가 들렸다.

"빌, 당신이라는 거 알아요."

"아니, 정말이에요. 나는 신시아 브라이슨이라구요. 제 카드번호를 알 수 있을까요?"

"알려드릴 수 없어요."

"내가 여자 목소리로 말하면 상황이 달라질까요?"

"그래도 안 돼요."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지금 당신 컴퓨터 화면 속에 내 아내의 번호가 떠 있나요?"

"그래요."

"그렇지만 말해주지는 않겠군요?"

"말해줄 수 없어요, 빌."

그는 진심인듯 했다. 나는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미국 공무원들이 규칙을 어길 일은 전혀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더 이상 조르지 않았다."


불평하기는 빌 브라이슨의 전매특허 같은 것이다. 비꼬기와 빈정거리기를 기반으로 과장을 섞어서 유머를 구사한다. 불평하기를 시전할 때 빌 브라이슨은 당연해보이는 일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사춘기 반항아로 자기 자신을 설정한다. 이게 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게 그의 입장이고, 그게 불평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되어준다.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하는 행동들이 실은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투덜거린다. 투덜거리는 그의 글을 읽으면 배가 나오고 머리가 벗겨지고 전체적으로 곰돌이 같아서 해로울 것 같지는 않지만 뭔가 사회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은 아저씨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런 아저씨는 깍쟁이스타일보다는 매력적이라서, 적어도 이런 사람이 내 앞에서 허세를 떨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읽는 사람과 비슷한 수준 혹은 그 이하라는 설정으로 쾌적한 유머환경을 조성하는 셈이다.


세번째로 '재치만점' 이다.


"나에 관한 한 나이 들어간다는 것에는 세 가지 장점이 있다. 앉아서도 잠을 잘 수 있고, <사인펠드> 재방송을 이미 본 것인지도 모르고 몇 번씩 다시 볼 수 있으며, 세 번째가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것은 노화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유머를 구사하려면 적재적소에 양념을 쳐야한다. 이 상황에서 웃긴 게 다른 상황에서는 전혀 웃기지 않는다. 그리고 조금 늦은 타이밍에 치고 들어가면 이미 배는 떠났다. 모임이 끝나고 집에 오면서 아까 이 얘기를 그 때 했어야 하는데 하면서 후회를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투수가 공을 던진다. 다양한 구종을 가지고 있는 투수는 제구도 완벽해서 어느 곳에라도 원하는 속도와 원하는 코스로 공을 보낼 수 있다. 타자 입장에서는 내가 원하는 공이 올 때까지 신중하게 걸러내는 선구안이 필요하다. 그 공이 오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 모든 공을 다 쳐내기에는 실력이 모자라다. 그리고 원하는 코스로 공을 보내서 안타로 만드는 건 또 많은 변수가 도와줘야 가능하다. 모든 공을 다 칠 수 있는 실력을 기르는 건 어떤 상황에서라도 유머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과 비슷하다. 요기로 오면 이렇게 쳐야지 저기로 오면 요렇게 쳐야지 답이 나와 있다는 건 너무 어려워서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다. 고로 현실적인 유머는 효율적인 환경을 만들어놓는 것이 최우선이다. 빌 브라이슨은 과장을 써서 불평을 하면서 공이 어디로 날라올 지 대충 선을 그려놓는다. 그리고 재치를 양념으로 안타를 만들어낸다. 이쯤되면 완벽에 가까운 준비이고, 그가 이렇게 웃긴 이유가 납득이 간다. 물론 그게 쉬운 거면 지금 이 글이 이렇게 핵노잼일리가 없을 것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나는 늘 늦은 밤에 TV를 켜고 ‘개방대학‘을 보는 게 재미있었다. 그 안에는(아마도 남은 시간을 모두 역전류 검출관 앞에서 보낼 생각으로)1973년에 단 한 번 간 ‘쇼핑여행‘에서 앞으로 입을 옷을 몽땅 사가지고 왔을 것처럼 보이는 강사가 나와서 이상하게 단조로운 목소리로 "따라서 발산하지 않는 두 개의 해(解)를 더했을 때 또 하나의 발산하지 않는 해가 얻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같은 말을 하곤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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