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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님의 서재
  • 가만한 당신
  • 최윤필
  • 13,500원 (10%750)
  • 2016-06-30
  • : 2,892

가만하다:


 '거의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고 차분하다.'


(상대적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차별이나 억압을 알리고 없애는 데에 큰 역할을 한 가만한 사람들에 대한 긴 부고 기사.

부고 기사라는 것은 어딘지 쓸쓸한 기분을 불러 일으킨다. 부고기사란 더 이상 이 사람은 세상에 숨쉬고 있지 않다. 더 이상 이 사람에게 어떤 말이나 행동이 나올 것이라 기대할 수 없다. 만날 수도 없고, 그가 누군가를 만나러 갈 수도 없다는 선언. 혹은 그것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남아있음'의 의미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남긴 것의 의미도 생각한다.

 이 책은 두가지 생각을 머리 속에 남긴다.

첫번째는 한 명의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이리도 대단하고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 그 파장은 알게 모르게 남아있는 사람들의 생활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지구라는 행성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인간들 중 어떤 이들은 자기 자신의 행동 범위를 벗어나는, 말 그대로 대의적인 일을 하기도 한다. 똑같은 눈코입팔다리를 가지고 그런 일들을 해내는 사람들은 뭔가 달라도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저 사람은 난 사람이다 뭐 이런 기분.

두번째는 그런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유한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새삼스런 감정. 그야말로 책 몇페이지는 쉽게 채울 수 있게 대단한 성취를 만들어낸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도 병들고 약해져서 결국 세상을 떠난다. 그들이 다 하지 못한 일은 남아 있는 사람들이 해낼 수 있을 것이지만, 아무리 봐도 그와 비슷하게라도 해낼 수 있을 거라고는 쉽게 생각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역시 우리와 똑같은 눈코입팔다리를 가지고 있기에 그들은 세상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저 사람은 난 사람이었지만 아직 우리가 해내야 하는 일들을 남기고 갈 수 밖에 없었네. 그 남기고 간 일들은 우리가 사는 동안 끊임없이 노력해야할 차별이나 억압 등을 줄이거나 없애는 일이다.


바버라 아몬드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성애라는 관념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고, 때때로 누군가를 옭아매어서 성역할이라는 구시대적 관념에 가둬두는 가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졌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아이에게 무한한 사랑을 줘야하는 것이라고 학습된다. 이 학습은 엄마역할을 하는 사람 머리 속에만 있지않고 인간 전반에 뿌리 내리고 있다. 그래서 인간 대 인간으로 그 조그만 생명체를 대하며 느껴지는 증오와 무력감에 대해서는 금기시 하게 만든다. 손쉽고 편한 방법이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게 된 엄마를 욕하는 편에 속하는 건 쉽지만, 그 쉬운 판단이 얼마나 허약한 근거 위에 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그렇다면 아동학대도 방관해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가는 다른 층위의 문제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게 된 엄마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었는지, 그 상황은 온전히 엄마의 책임 하에 벌어진 상황인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남들도 그 힘든 일 불평없이 다 해내고 있다. 그러니 당신도 그 정도의 힘듦은 감수해야 정상이다. 라는 반론은 그냥 다같이 밭이나 갈고 소나 키우면서 살면 되지, 무슨 자동차고 빌딩이냐 이런 소리와 다를 것이 없다. 한 발자국을 내딛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한 발자국을 더 내딛자고 끈질기게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가만한 당신들이 남기고 간 발자취들을 되짚어보면서 다음 스텝을 이어 나가야 한다.

어떤 인간은 유한한 인생을 살다가 갔지만, 그가 뭔가 해보자고 했을때 힘을 보태준 수많았던 (더)가만한 당신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흐름으로써의 유한함들이 결국엔 유한함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행복과 불행은 능력의 많고 적음보다 의욕(욕심)의 많고 적음에 더 자주 영향을 받는다. 능력은 결핍일 때 주로 문제가 되지만 의욕은 과잉일 때가 더 자주 말썽을 빚고, 경험으로 판단컨대 능력은 충분할 때가 드물고 의욕은 적당할 때가 드물다. 그 간극이 커지면 자신도 주변도 불행해진다. 아마 모성이 놓인 자리가 거기일 것이다.

물론 모성만 그런 건 아니다. 사회가 개인을 평가하는 기준은 능력도 의욕도 다다익선에 맞춰져 있고, 모범에 못 미치는 이들과 사회의 기준을 내면화한 이들은 하릴없이 자책하고 죽도록 분발한다. 모성이 더 치명적인 것은 (내든 안 내든)사표나 이민 같은 탈출구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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