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일기 #서윤후 #샘터 #신간리뷰
김선희 2024/04/0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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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기 일기
- 서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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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 - 2024-03-22
: 538
남이 쓴 일기를 엿보는 건 재미와 약간의 스릴감을 가져다준다. 내가 처음으로 엿본 남의 일기는 중학교 때 우연히 보게 된 아빠의 일기장이다. 새로 단장하기 전의 우리 집 안방 한쪽엔 뒷방으로 가는 작은 문이 하나 있었고 그 방엔 엄마의 혼수품인 자개장롱과 잘 쓰지 않는 살림도구들이 놓여 있었다. 그전에는 안 보였던 것들이 보이는 호기심 많은 중학교 1학년. 어느 날 나는 그 장롱 문을 열었다.
이불들은 예쁘고 새것이고 부드러웠다. 그 이불들을 쓰다듬으며 덮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 이불이 켜켜이 쌓여 있는 그 아래 작은 서랍장을 열었다. 비밀의 문이 해제되는 순간이랄까. 몇 권의 아빠 일기장과 처음 보는 아빠 모습이 흑백 사진으로 남아 있었다. 아빠가 일기를 쓰셨다고?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글 중 하나는 '배가 고파 우는 아이에게 분유 한 통 사줄 돈이 없다'라는 내용과 며칠 뒤엔 분유 한 통을 샀는지 분유 값이 적혀 있었다. 그 아이가 첫째 딸인 나다. 어릴 때 배를 곯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키가 큰 아이였고 골격도 튼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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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물방울 서평단 두 번째 책은 서윤후 시인의 <쓰기 일기>다. 어릴 때부터 일기 쓰기를 좋아했다는 시인. '쓰기 일기'라는 이름으로 적힌 글들은 누군가가 읽어줄 수도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블로그에 발행하고, 어떤 글은 라디오에서 읽어 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번 책에서는 자신의 은밀한 것을 들키고 싶다는 마음보다도 쓰기에 몰두했던 나날들에 대한 기록이 누군가의 쓰고 읽는 일에 닿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공개한 글이라고 작가는 소개한다.
이 책의 전개는 독특하게도 연도 순으로 나와 있지 않고 월(月) 순서로 되어 있다. 2020년의 3월 어느 날 일기와 2023년 3월의 어느 날 일기로 엮어 놓았다는 것.
기록하는 일은 창작을 의미한다. 그의 일기는 긴 시와 같다. 가령 '봄밤의 흰 새 떼가 정처를 잃고 텅 빈 나무에 앉아 있는데 그건 막 피어나려는 목련이었다'는 것. 똑같은 사물을 보지만 다르게 해석하고 독특하게 그려내는 시인의 시선에 감탄한다. 쓰는 마음, 쓰는 자세에 대해 지극한 사랑을 담은 그의 일기는 시적 감성이 가장 충만한 일기장이다.
내가 쓰고 있는 일기도 다른 각도로 써보고 싶어졌다. 수많은 생각을 꺼내어 말리는 작업을 좀 더 섬세하게 해 보고 싶은. 어수선했던 3월의 내 생활에 고요함과 사색을 안겨 준 시인의 일기장. 오래 써온 그의 일기와 쓰기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 보답을 받았으면 좋겠다. 쓰는 사람들을 마구 응원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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