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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이야기님의 서재
  •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 신경숙
  • 14,850원 (10%820)
  • 2010-05-17
  • : 17,424

  '크리스토프 이야기를 해주겠네.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크리스토프는 가나안 사람이라네. 거인으로 알려져 있지. 힘이 장사였던 그는 무서운 게 없었지. 자신은 오직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위대한 사람에게만 봉사하겠다고 결심했지. 하지만 아무리 여기저기 떠돌아도 자신을 바칠 만한 위대한 인물을 찾을 수 없었다네. 모두가 그를 실망시켰지. 자기 자신을 바칠 존재를 찾는 일에 지친 크리스토프는 실의에 빠져 어느 강가에 집을 짓고 그곳에 머물렀어. 강 저편으로 건너가려고 하는 여행자들을 건네주는 일을 하며 지냈다네.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센 크리스토프는 겨우 삿대 하나만 지닌 채로, 강물이 아무리 불어나도 그 삿대로 강물을 헤쳐나가며 사람들을 강 저편으로 건네주곤 했다네. 그에겐 그저 소일거리였지. 배도 없이 맨몸으로 사람들을 태워 건네주는 뱃사공 역할을 한 셈이라네.

  어느 날 밤이었어. 크리스토프가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희미하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네. 이 한밤중에 누군가 싶어 문을 열어보았으나 아무도 없었어. 어둠뿐이었지. 문을 닫고 들어와 다시 잠자리에 들려고 하니 또 크리스토프!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 다시 나가보았으나 마찬가지로 짙은 어둠뿐이었네. 세 번째 부르는 소리는 바로 곁에서 들리는 것 같았어.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어. 기이하게 여긴 크리스토프는 삿대를 챙겨들고 집 바깥으로 나가 강으로 갔지. 어둠 속의 강가에 한 아이가 서 있었어. 아이는 오늘 밤 안에 강 저편으로 건너가야 한다면서 크리스토프에게 강을 건너게 해달라고 부탁했지. 아이의 청이 간절해 크리스토프는 깊은 밤이긴 하지만 이깟 아이쯤이야! 여기며 아이를 어깨에 태우고 강물 속으로 들어갔다네. 그런데 크리스토프가 강물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강물이 마구 불어나기 시작했네. 순식간에 장신의 크리스토프 키를 넘을 지경으로 강물이 범람했지. 뿐인가. 처음엔 가벼웠던 아이도 강물이 불어남에 따라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어. 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거대한 철근 같은 무게가 크리스토프의 어깨에 내려앉았지. 강물은 점점 더 불어나고 아이는 엄청난 무게로 그를 짓눌렀다네. 그토록 자신만만하던 크리스토프는 처음으로 자신이 강물에 빠져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어. 삿대로 겨우 균형을 유지해가며 아이를 어깨에 태운 채 불어난 강물을 헤치고 간신히 강 저편에 이르렀지. 강가에 아이를 내려놓으며 크리스토프가 말했네. "너 때문에 내가 죽는 줄 알았다. 너는 이리 작은데 너무 무거워서 마치 이 세상 전체를 내 어깨에 지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 머물면서 지금껏 수많은 사람들을 강 이편으로 건네주었지만 너보다 더 무거운 사람을 실어나른 적이 없구나." 그 순간이었네. 아이는 사라지고 눈부신 빛에 둘러싸인 예수가 눈앞에 나타났지.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네. "크리스토프! 그대가 방금 짊어진 건 어린아이가 아니라 바로 나, 그리스도다. 그러니 그대는 저 강물을 건널 때 사실은 이 세상 전체를 짊어지고 있었던 것이다."라고. 

 
 '여러분은 각기 크리스토프인 동시에 그의 등에 업힌 아이이기도 하다. 여러분은 험난한 세상에서 온갖 고난을 헤쳐나가며 강 저편으로 건너가는 와중에 있네. 우리 모두는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차안에서 피안으로 건너가는 여행자일세. 그러나 물살이 거세기 때문에 그냥 건너갈 수는 없어. 우리는 무엇엔가에 의지해서 이 강물을 건너야 해. 그 무엇이 바로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들이기도 할 테지. 지금 여러분은 당장 그것이 여러분을 태워서 저쪽 언덕으로 건너가게 해주는 배나 뗏목이 되어 줄 것으로 생각할 거야.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이 여러분을 태워 실어나르는 게 아니라 반대로 여러분이 그것을 등에 업고 강을 건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여러분에게 문학이나 예술은 여러분을 태워 강 저편으로 건네주는 것만이 아니네. 여러분이 신명을 바쳐 짊어지고 나가야 할 필생의 일이기도 한 것이네.
  여러분은 각기 크리스토프들이네. 강 저편으로 아이를 실어나르는 자들이기도 하지. 거대하게 불어난 강물 속에 들어가 있는 운명을 지닌 자들이란 말이네. 강물이 불어났다고 해서 강 저편으로 아이를 실어나르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되네. 강을 가장 잘 건너는 법은 무엇이겠는가?

  서로가 서로에게 크리스토프가 되어주는 것이네. 함께 아이를 강 저편으로 실어나르게. 뿐인가. 강을 건너는 사람과 강을 건너게 해주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네. 여러분은 불어난 강물을 삿대로 짚고 강을 건네주는 크리스토프이기만 한 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 전체이며 창조자들이기도 해. 때로는 크리스토프였다가 때로는 아이이기도 하며 서로가 서로를 강 이편에서 저편으로 실어나르는 존재들이네. 그러니 스스로를 귀하고 소중히 여기게.'

 

  '사랑하는 테오
........ 나는 반드시 땅을 파는 사람, 씨 뿌리는 사람, 경작하는 남녀를 쉬지 않고 그려야 해. 농촌생활에 속하는 모든 것을 면밀하게 그려야지. 다른 사람들이 그러했고 또 지금 그러하듯이 말이야. 나는 이제 더이상 자연을 앞에 두고 무력하지는 않아'     - 고흐

 

 '이 도시를 알기 위해 걷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걷는 일은 스쳐간 생각을 불러오고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바라보게 했다. 두 발로 땅을 디디며 앞으로 나아가다보면 책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숲길이 나오고 비좁은 시장통 길이 등장하고 거기에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말을 걸고 도움을 청하고 소리쳐 부르기도 한다. 타인과 풍경이 동시에 있었다.'
 

   널빤지에서 널빤지로 난 걸었네.   

   천천히 조심스럽게
   바로 머리맡에는 별
   발밑엔 바다가 있는 것 같아 난 몰랐네 - 다음 걸음이
   내 마지막 걸음이 될는지
   어떤 이는 경험이라고 말하지만
   도무지 불안한 내 걸음걸이.
                                          - 에밀리 디킨슨

 

  '1964년 3월 13일에 일어난 제노비스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훔쳐 온 책에서 읽었다. 미국 뉴욕의 주택가 새벽 세시 십오분에 캐서린 제노비스란 이름을 가진 여성이 야간근무를 마치고 아파트로 귀가하다가 괴한을 만나 칼에 찔려 죽어가는 것을 서른여덟 명의 이웃이 듣거나 봤으면서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고 한다. 칼에 찔린 제노비스가 도와주세요, 라고 외쳤을 때 아파트에 일제히 불이 켜졌으나 누구도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오진 않았다고 한다. 밖으로 나오지는 않고 창 안에서 누군가가 그 여자를 내버려둬-라고 고함을 치자, 괴한은 도망쳤다. 제노비스는 피를 흘리며 길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나 누구도 제노비스를 돕기 위해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파트의 불들은 곧 꺼졌고 거리는 다시 조용해졌다. 황급히 자동차가 있는 곳으로 도망치던 범인은 조용해진 거리를 보자 다시 돌아와 상처입고 쓰러져 있는 제노비스를 또 찔렀다. 제노비스가 다시 비명을 내지르자 아파트의 불들이 다시 켜졌다. 범인은 다시 도망쳤다. 제노비스가 칼에 찔린 몸을 간신히 이끌고 자신의 집 쪽으로 가는 사이 좀 전처럼 아파트의 불은 또 일제히 꺼졌다. 몸을 숨기던 괴한이 다시 제노비스에게 다가와 범해을 마저 끝냈다. 삼십오 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연속적으로 칼에 찔린 제노비스는 결국 숨을 거뒀다. 도움을 청하는 제노비스의 비명에 불이 켜지면 멈췄다가 불이 다시 꺼지면 이어진 범행. 제노비스가 칼에 찔리고 쓰러지는 것을 창가에서 구경만 한 사람의 숫자는 서른여덟 명이었다고 씌어 있었다. 이것이 인간일까. 나는 훔쳐온 책을 다시 그 자리에 갖다놓고 싶었다.

 

 귀기울여 듣던 윤은 제노비스의 비명소리를 서른여덟 명이 아니고 한 사람이 들었다면 그녀는 살았을지도 몰라, 라고 말했다. 네 생각이야?라고 물으니 윤은 심리학!이라고 대답했다. 사람의 심리 속에 그런 게 있대. 위험에 처한 대상을 혼자 보게 되었을 땐 바로 행동하게 되지만 다른 사람들과 동시에 공유하면 무의식이 행동을 지연시킨대. 상대방에게 미루는 건가? 내가 말하자 윤은 떠맡긴다기보다는 분산되는 거겠지. 누군가 희생당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책임감이 적어지는 것으로 봐. 심리학에서는..... 윤은 내 손을 잡으며 혼잣말을 했다. 불이 꺼질 때마다 제노비스는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숨을 거둘 때까지 칼에 찔린 고통보다 그 공포가 더 컸을 거야.'
 

 '나는 지금 장난꾸러기들의 조롱을 받으며 고개를 숙이는, 무거운 짐을 진 당나귀처럼 길을 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때에, 당신이 원하시는 곳으로 나는 가겠나이다.  - 프랑시스 잠' 
 

 
   사랑은 이 세상의 모든 것
   우리가 사랑이라 알고 있는 모든 것
   그거면 충분해. 하지만 그 사랑을 우린
   자기 그릇만큼밖에는 담지 못하지.

                                           - 에밀리 디킨슨

 

  '우리는 지금 깊고 어두운 강을 건너는 중입니다. 엄청난 무게가 나를 짓누르고 강물이 목 위로 차올라 가라앉아버리고 싶을 때마다 생각하길 바랍니다. 우리가 짊어진 무게만큼 그만한 무게의 세계를 우리가 발로 딛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불행히도 지상의 인간은 가볍게 이 세상의 중력으로부터 해방되어 비상하듯 살 수는 없습니다. 인생은 매순간 우리에게 힘든 결단과 희생을 요구합니다. 산다는 것은 무의 허공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무게와 부피와 질감을 지닌 실존하는 것들의 관계망을 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아 있는 것들이 끝없이 변하는 한 우리의 희망도 사그라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살아 있으라. 마지막 한 모금의 숨이 남아 있는 그 순간까지 이 세계 속에서 사랑하고 투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살아 있으라.'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절망할 줄 모르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다만..... 그 절망에 자네들 영혼이 훼손되지 않기만을 바라네.'

 
 
  '살아 있다는 것은 곧 다른 모양으로 변화할 것을 예고하는 일이고, 바로 그것이 우리들의 희망이라고 했던 윤교수.'

 

  '모든 것엔 끝이 찾아오지. 나도 발생했으니 소멸하는 것이네.'

 

  '함께 있을 때면 매순간 오.늘.을.잊.지.말.자,고 말하고 싶은 사람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언제든 내.가.그.쪽.으.로.갈.게,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사방에서 새벽빛이 툭툭, 터진다. 눈이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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