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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연두이야기  2007/06/30 22:24



밀양(密陽) - 밀양? 밀양아리랑? 제목을 들었을 때 연상되었던 건 경남에 위치한다는 동네. 밀양이었다. 사전을 찾아보니 밀(密)자의 뜻은 빽빽하다, 비밀로하다, 가깝다, 친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동네 밀양은 어떤 뜻으로 쓴 걸까? 햇볕이 빽빽한, 햇볕이 가득한, 햇볕으로 충만한 동네? 영화 밀양의 영어 제목은 secret sunshine - 비밀의 햇볕? 비밀스런 햇볕? 비밀을 간직한 햇볕? 숨어있는 빛?

 그 뜻을 무엇으로 해석하든... 무릇 햇볕이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는 그야말로 평등한 얼굴의 이름이 아니던가. 그런데 비밀이라....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나 그 실체를 잡을 수 없는, 세상 만물을 드러나 보이게 하나 그 자체는 보이지 않는, 하여 빛은 신이 되고 도(道)가 되며 어둠과 무명(無明)을 사는 인간에겐 희망과 구원이 되는 동시에 빛의 세상으로 가려하나 끝내 가지 못하는 인간을 시지프스로 만드는, 빛이란 그런 것이다. 햇볕은, 때로 빽빽할 정도로 이렇게, 가득한데...

 영화 중반부턴가. 눈물이, 쉬지 않고 줄줄줄 흘러내렸다. 물론, 주인공의 아들이 유괴됐으니까. 더구나 낯선 땅 밀양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있지도 않은 돈이 있는 것처럼 떠벌린 이유로 아들이 유괴를 당했고, 주검으로 돌아왔으니까. 전도연의 연기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으면서 가슴을 후벼파니까.

 그런데, 내 눈물의 이유는 그것만은 아니었다. 유괴, 죽음, 찢어지는 아픔으로 이어지는 그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햇볕이 바로 옆에 있는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데, 아니 자신 안에도 분명 존재할 터인데 그것을 보지 못하는, 그곳으로 한 발 내딛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거. 상처받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 잘못을 저지른 자신을 인정하는 일이 그토록이나 징하게 어렵다는 거. 그게 내 눈물의 이유라면 이유였다.

 죽은 남편의 외도 사실을 그녀는 인정하지 않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음으로 남편이 살고싶어했던 땅, 밀양으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간 것이다. "밀양은 어떤 곳이에요?" "어떤 곳이라... 사람 사는 데 다 똑같지예." 그녀는 몰랐던 것이리라. 자신이 치유되지 않는 한 어느 곳으로 가든 상처는 계속된다는 사실을. 그녀가 원하는 새로운 땅이 될 수 없음을. 하여 도피는 또다른 상처를 만든다. 아들의 주검도, 자신의 잘못도 그녀는 인정할 수 없었으며 인정할 수 없었으므로 또다른 도피처, 신에게로 향해 간 것임을.

 그러나, 신 앞에서조차 그녀는 발가벗지 못했다. 유괴를 도왔을, 유괴범의 딸이 맞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냥 지나쳤음에도 유괴범을 만나 '용서'란 걸 하러가는.... 그녀는 자신이 아직 그들을 용서치 못했음을, 용서하지 못한 자신을 보지 못하고, 보지 않고.... 결국은 유괴범의 입에서 "신에게 용서받았다"는 말을 듣고서야 소리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어떻게 신이 먼저 용서할 수 있느냐"고. ...

 쓰다보니 어제의 먹먹함이 잠깐 다시 스친다. 어제는 영화보고 와서 먹먹함이 내내 가시지 않아 도저히 감상평을 쓸 수 없었는데... 오늘은 오늘의 태양이 다시 떠오른다. 이제 신애는 자신의 머리를 자신 스스로 자른다. 길고 징한 터널의 끝자락에서 그녀는 간신히 한 발을 내딛은 것으로 보였다.

 다가온 종찬(맞나? 송강호의 연기는 언제나 실제인지 연기인지 구분이 안 갈 만큼 자연스럽다. 멋진 배우!)은 "거울이라도 들어들이지예."라고 말한다. 만약 그가 "내가 잘라 들릴게예."라고 말했다면 영화는 한 순간에 추락했으리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랑은 딱 그만큼인 거다. 그녀가 자르려는 머리를 대신 잘라주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잘 보이게 거울을 들어주는 거. 전도연의 연기가, 송강호의 연기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던 것처럼 영화는 마지막까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다.

 그리고 햇살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

인간 사는 곳이 어디든 그곳엔 때로 지옥처럼 느껴지는 상처가 있고, 꼭 밀양이 아니더라도 인간 사는 곳 그곳이 어디든 햇볕은 때로 빽빽할 정도로 가득차 있다. 다만, 우리는

상처에서 도피하지 않고 상처를 끄집어내어 햇볕에 말려야 하리라.

 

오늘은 세상 사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한 줌이라도 좋을 햇빛이 넘치길 기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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