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처럼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이란 책을 시작으로 해서 10년 넘게 페미니즘을 지지해왔다. 페미니즘 판에도 급진적인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벨 훅스 같은 온건한 학자들의 책, 그리고 한국의 저명한 몇몇 학자들의 책을 읽으며 지지의 불씨는 유지했다. 이 해방의 학문이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 더 나아가 장애인, 이민자, 성소수자들의 인권까지 포괄할 인권 운동의 선봉대라고 착각하면서 말이다.
얼마 전 페미니즘에 대해 잘 모르는 친구가 82년생 김지영, 기타 몇몇 소설책 읽고, 본인을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여기고 아무런 사유 없이 여초 커뮤니티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본인의 주장과 근거로 사용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이제 페미니즘은 젊은 여성들에게 하나의 명품백 같은" 것, 즉 "나 깨어있는 여자야"라고 인스타에 전시할 구별짓기용 아이덴티티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슬슬 혼란이 시작됐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듯이, 젊은 여성들이 페미니즘에 관심 갖기 시작하자 개나 소나 워마드 메갈이나 다 받을 수밖에 없는 밥그릇 키우기, 파이 키우기로 인해 이 운동은 망가졌다. 그래야 학자들은 본인들의 책을 더 많이 팔고 강연을 다니고 TV 출연으로 대중적 인기와 지지로 정교수 자리를 얻을테고, 여성운동 시민단체는 후원금을 더 얻을테니 말이다. 그래서 잘못 됐다고 말해야 할 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워마드도 메갈도 페미니스트라는 세례를 줬다. 저자도 얘기한다. "페미니즘에는 정답이 없지만 아무거나 다 페미니즘은 아니라고 말하기."라는 궤변으로 아무런 비판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얼마 전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을 쓴 정희진 인터뷰 기사 중
국민일보 “공부 않는 페미니즘, 신자유주의에 포섭됐다”
출처 : https://m.kmib.co.kr/view.asp?arcid=0924334093
정희진은 새 책에서 남성들의 지체된 성 인식을 비판할 뿐만 아니라 여성주의의 오류도 짚는다. ‘피해자 중심주의’나 ‘성적 자기 결정권’ 등 지금까지 여성 운동을 이끈 핵심 개념들에 이견을 제기하고,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성소수자·난민 반대나 남혐 문화를 비판한다. 그는 “이제는 남성 문화뿐만 아니라 동료, 여성주의자, 여성들과 내 의견이 다른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대중화 이후 한국 페미니즘의 문제로 정희진은 먼저 “여성학 없는 여성주의”라는 현상을 짚는다. “남녀 모두, 심지어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는 이들조차 여성주의는 공부하지 않아도 저절로 안다고 생각한다. 여성주의는 넘치는데 여성학이 없다.” 그는 “페미니즘이 굿즈가 됐다”는 말도 했다.
공부하지 않는 페미니즘, 여성학 없는 여성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로 든 것은 ‘영 페미니즘’의 주된 흐름 중 하나인 ‘터프(TERF)’다. 그는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생물학적 페미니즘이 터프인데, 터프가 지금 페미니즘의 대세”라며 “요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주의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렌스젠더의 숙대 입학 논란 당시, 서울 소재 여대의 페미니즘 동아리 23개가 반대 성명서를 냈다. 또 내가 김건희씨를 비판했더니 페미니스트들로부터 ‘여혐’이라고 공격을 받았다. 그들은 여성들의 문제에만 관심을 둔다. 그 외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신경쓸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장애인 문제나 지방소멸 문제 같은 데는 여성이 없나? 세상에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페미니즘이 어디 있나? 난민을 반대하는 페미니즘이 어떻게 가능한가?”
정희진은 공부하지 않는 페미니즘이 신자유주의에 포섭돼 버린 게 지금 한국 페미니즘의 현실이라고 진단한다. 그에 따르면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과 능력주의, 개인주의 등은 가부장제를 무력화했고 여성들에게 성역할을 거부하고 개인화할 수 있는 틈새를 제공했다. 이런 기회 속에서 젊은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자신의 생존 전략이자 성공을 위한 논리로 전유했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 중산층 젊은 여성들의 야망이 페미니즘을 주도하고 있다”면서 “안타깝게도 많은 여성이 신자유주의적 여성주의를 지지하고, 그것이 원래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한다. 성소수자, 난민, 사회적 약자의 현실은 나중에 다룰 문제이거나 여성주의와 무관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사회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논의나 고민이 너무 없었다. 힐링이나 자기개발, 치유 등 다 개인적 대응에 그쳤다. 구조적 사유를 하지 못했다”면서 “페미니즘도 여기서 나아가지 못했다. 신자유주의가 사실상 페미니즘을 흡수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