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로 이루어져 있는 『시소 : 첫 번째』는 총 8편의 작품이 담겨 있다. 8편의 작품 속에서는 여러 화자와 인물이 놓여 있다. 화자와 화자가 만나는 인물들은 또 여러 상황에 놓여 있고, 갈등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들이 겪는 갈등에서, 우리는 인물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는지를 보며, 그것은 곧 여러 갈래로 나뉘어 어떤 식으로든 와닿게 된다. 때문에 읽고 난 후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뒤틀린 몸으로도 사랑은 아름다운(조혜은, 「모래놀이」)”지 나 또한 알지 못하고 있으며, 마음 깊이 반대했음에도 믿고 싶었던 날이 나에게도 있었고, 있을 것이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이 책 한 권에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도 있고,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본 작가님도 있고,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작가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다채로운 상황과 장면으로 내게 강한 여운을 남겼다. 뜻하지 않게 여운을 받은 나는, 두 손 가득 ‘공’을 받게 된 나는 이것을 어디에 둬야 하는지, 누구에게 패스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하기에 마냥 끌어안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래서 슬픈가? 하고 묻는다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게 다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가장 강한 여운이 남았던 작품은 최은영 작가님의 「답신」이었다. 그것은 마지막 문장을 쓰고 나면 찢어버릴 편지 그 자체였다. 보내는 이와 받는 이가 명백하게 있는데도 그것을 전달해 줄 사람은 없는 편지. 그렇기에 내가 더 끌어안아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 작품이었다.
있는 일을 없는 일로 두는 것. 모른 척하는 것.
그게 우리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워 보이는 상황을 대하는 우리의 오래된 습관이었던 거야. 그건 서로가 서로에게 결정적으로 힘이 되어줄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방식이기도 했지.
-p.268
작품을 다 읽은 후에 나는 생각했다. 만약 이 편지가 어쩌다 우연히, ‘너’에게 닿게 되었다면. 스물세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너’에게, 아니면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의 ‘너’에게 이 편지가 닿게 된다면 과연 ‘너’는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 이미 길에서 만나더라도 서로 알아보지 못할 관계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너’를 영원히 사랑할 ‘나’에게 너는 과연 어떠한 말이라도, 아주 짧은 한 문장의 답신이라도 보내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남겨진 여운을 감당하려고 애썼고, 머릿속으로 이미 또 다른 소설을 써내고 있었다.
모든 작품이 애달프면서 사랑스럽다. 그렇기에 나는 이 작품 안에 있는 화자와 인물들을 응원하고 싶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를 읽는 ‘우리’ 또한. 「해벽의 피크닉」을 쓴 손보미 작가님은 장면 하나하나가 재미있으면 좋겠다, 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러니 나는 ‘우리’ 또한 재밌게 「해벽의 피크닉」을 읽었으면 좋겠고, 자라나는 풍경을 곱씹어보며 「영원에서 나가기」를 읽었으면 좋겠고, 수많은 h와 손을 떠올리며 자리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프리 더 웨일」을 읽었으면 좋겠다. 이 모든 계절이 ‘우리’의 마음에 닿았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