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는 미국에 정착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미국에서 나고 자란 인도인이다. 그녀의 작품에 이끌렸던 것은 대개 미국에 살고 있는 인도인 이민자와 그 자녀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에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친척 중 한 두 명 정도는 외국에서 살고 있는 지금의 시대에 어쩌면 이건 내 이야기일 수도 있고, 내 아이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므로. 퓰리처상을 받았던 [축복 받은 집]이 그러했고, 세 번 째 작품인 [그저 좋은 사람]도 그러했다. [축복 받은 집]을 읽었을 때는 미국에 사는 이민자들의 정착과 적응 그리고 거기에서 부딪히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다루는 동시에 인간에 대한 애정을 놓치지 않았다. 단순히 그녀가 이민자의 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에 좋았던 것이 아니라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혹은 입체적인 시선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 작품들에 공감했고 그녀에게 신뢰가 생겼다. 문체가 유려하거나 소재가 독특한 것은 아니었지만 작품에서 나오는 단단함과 힘이 느껴졌다. 그러나 너무 기대를 해서일까 혹은 타국에서의 나의 생활에 그녀의 주인공들을 너무 빗대서 일까, 이번에 읽은 [그저 좋은 사람]은 [축복 받은 집]을 기준으로 하자면 어떤 면에선 한 발 진보해있고, 어떤 면에선 한 발 후퇴해있는 것처럼 읽혔다.
[그저 좋은 사람] 역시 미국에 사는 인도인 이민자들이 중심이 된 이야기다. 이번 작품에서 줌파 라히리가 더욱 초점을 모은 것은 “가족”의 이야기였다. 새 여자친구를 사귄 아버지와 딸과의 관계, 동생처럼 아껴주던 이웃남자를 사랑한 엄마, 알콜중독에 걸린 동생과 가족들의 시선, 가족처럼 함께 살던 남자와의 사랑과 이별 등. 전작에서도 그녀가 “가족”에 대해 특별한 서사를 갖고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이번 작품들에서는 그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몇몇 작품에서는 매우 공감을 했지만, 몇몇 작품에서는 낯익다는 느낌을 받은 것 또한 가족 이야기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가족” 이란 것은 가장 다루기 힘들면서도 가장 일반적으로 취급되어 오는 소재인 것 같다. 가족이란 개념 자체가 주로 외부로 열려 있는 오픈적인 공간이 아니라 닫혀 있는 내부의 공간이기에 잘못 다루면 보수적이거나 평범하게 느껴지고, 잘 다루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전의 줌파 라히리의 작품들은 미국에 정착한 이민자 그리고 인도인 이라는 두 가지 이질성이 맞물리면서 독특한 아우라를 형성했다. 그러나 이번의 몇몇 작품들의 주인공은 인도인이 아니어도 상관없고 인도인이어도 상관없게 느껴진다. 어디까지나 성공한 인도인들이 주된 인물들이고, 미국의 일반인들도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는 대학이나 직업, 사회적인 성공을 한 인물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그렇기에 오히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생스럽게 사는 이민자들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선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만 생각하기에는 줌파 라히리의 작품은 좀 답답하게 느껴진다. 좀 더 보편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이번 작품들은 인도인이 아닌 이들에게 더욱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도인이기에 느껴지는 낯섦, 이질감 등의 그녀만의 색깔이 좀 바래있거나 위축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작품이 성숙해진다는 것은 작가의 시선이 어디로 닿아가느냐는 말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외연이 넓어진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긴 우물을 파는 것처럼 깊이가 깊어진다는 의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줌파 라히리는 후자다. 그녀는 인도인이어도 상관없고 인도인이 아니어도 상관없는 가족의 이야기를 택했다. 단편 [그저 좋은 사람](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든다) 에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동생이 알콜중독에 걸리면서 가족들과 일어나는 불화 속에서 동생을 바라보는 나와 가족의 심리 변화를 짚어내는 것 또한 줌파 라히리의 세심한 시각에서만이 가능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작품들은 그녀의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를 갖게 만든다. 어떻게 흘러갈지는 알 수 없으나 그녀가 가족 이야기로 외연마저 넓은 작가가 된다면 그건 그녀가 또 다시 성숙해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또한 그녀가 ‘인도인’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에서 서서히 벗어나 ‘가족’이라는 보편적 정체성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그녀가 이제는 정말로 미국에 잘 적응해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미국의 성공한 시민과 피부색과 이름으로 죽을 때까지 져버릴 수 없는 결국 인도인이라는 두 가지 타이틀을 동시에 지닌 채 말이다. 앞으로 가든 뒤로 가든 그녀는 그저 좋은 사람 이상임에는 틀림없다. 나도 그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