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사에서 사진작가로 일하는 인영은 같은 건물에서 일하던 작은 제약회사의 여직원 의선이 거리에서 나체로 달리는 것을 목격한다. 어느 날 기억을 잃어버린 의선이 알몸에 트렌치코트 하나만 걸친 채로 인영의 집을 찾아온다. 차갑기로 유명한 인영이지만 의선을 거두기로 한다. 인영의 후배인 명윤은 우연이 의선에 관해 듣고 호기심을 가지는 정도였지만 인영의 집에 놀러 갔다가 의선을 보고 반해버린다. 어느 날 의선은 인영이 아끼던 바다 사진을 불태우고 목욕 다녀온다고 나간다. 그 사진은 인영이 언니가 죽은 제주 바다를 찍은 것이었다.
이후 명윤이 길에서 의선을 발견, 연파는 할아버지의 연 얼레를 훔쳐 도망가는 그녀를 뒤 쫒아 반지하방으로 가서 관계를 맺는다. 의선이 사라지고 난 후 명윤은 줄기차게 그녀를 찾으려 한다. 인영과 명윤은 탄광 사진을 찍어 사진집을 낸 장종욱이라는 사진가를 취재한다는 명분으로 의선의 흔적을 좆아 황곡으로 간다. 장종욱은 취재에 극히 불성실하게 응한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 나타나기는 하지만 늦게 나타나고 게다가 취한 상태였다.
장종욱은 하루 종일 막장에서 광부들과 하며 사진을 찍을 정도로 사진을 사랑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광부들의 일하는 모습을 찍음으로써 보람을 느끼곤 했다. 막장은 위험한 곳이었다. 장 역시 자신에게 사진을 찍도록 허락해준 임이라는 광부와 함께 사고를 겪기도 했다. 여섯 명이 함께 일하다가 갱도가 무너져 두 사람만 남고 네 사람은 죽었던 것이다.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르는 갱에 매일 들어간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거는 일이었다. 밤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던 아내는 장이 탄광촌이 무너지며 죽을뻔한 위기를 겪은 이후에 그를 떠났다.
인영과 명훈은 황곡과 월선의 폐탄광촌을 찾아 다니면서 의선의 흔적을 좇는다. 의선이 말했던 함이라는 이름이 붙은 학교를 찾아다니고 폐탄광의 사업소와 탄광촌을 헤매면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만 의선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의선에게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탓이다. 마침내 포기하고 떠나려던 순간 버스 터미널에서 우연히 어둔리가 현리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은 폭설을 무릅쓰고 연골을 찾아간다. 눈길을 걷던 그들은 아직 멀쩡하게 남아 있는 의선의 집에서 의선이 다녀간 흔적을 본다.

그러나 명윤은 밤새 고열에 시달린다. 다음날 아침 명윤은 자신을 놓고 가달라고 애원하지만 인영은 명윤을 부축하고 마을로 내려온다. 기진한 명윤을 내려놓고 마을로 달려간 인영은 이웃의 도움을 얻어 그를 데려오는데 성공한다. 마침내 그들은 기차역에 이른다. 그들은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기차를 타지만 사고가 일어난다. 장이 병원으로 찾아오고 회복되어 집으로 돌아온 인영은 의선이 가져갔던 사진을 발견한다. 그 사진은 인영이 언니가 배사고로 죽었던 제주 바다를 찍은 것이었다.
검은 사슴은 의선의 아버지인 임이 의선에게 해주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환상의 동물이다.
검은 사슴은 땅속 깊은 곳, 어두운 바위틈에서 살며, 뿔로 불을 밝히고 강력한 이빨로 단단한 바위를 씹어먹고 산다. 검은 사슴의 꿈은 지상으로 올라가 햇빛을 보는 것이다. 검은 사슴은 광부를 만나면 햇빛을 보게 해달라고 한다. 광부들은 뿔을 자르게 해주면 안내해주겠다고 한다.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에 검은 사슴은 뿔을 내밀고 뿔을 잘린 검은 사슴은 다시 햇빛을 보게 해달라고 하지만 이번에 광부들은 이빨을 요구한다. 이빨도 잃어버린 검은 사슴은 지하를 헤매다니다가 운 좋게 밖으로 나가 햇빛을 받으면 녹아버린다.
타인에게 모든 것을 주어버리고 마침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이 동물은 대단히 상징적이다. 어둠 속에서 기어 다니면서 바위를 먹고 산다는 그 생태 자체가 고단하다. 이 동물의 마지막은 역시 서글프기 짝이 없다. 그처럼 염원하던 대로 마침내 햇빛을 보더라도 녹아버리는 것이다.
검은 사슴의 생태가 보여주는 것처럼 소설은 어둡다. 등장인물 모두가 과거의 상처를 갖고 있고 그 상처는 그들을 놓아주지 않으며 모두가 고통에 시달린다. 특히 의선은 주민등록번호조차 없을 정도로 무심한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부모 역시 고통에 시달리는 인물들로 어머니는 정신이 온전치 않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건사하느라 아이들을 돌보지 않는다.
모든 등장인물이 상처를 갖고 있다는 이러한 묘사는 어떻게 나온 것일까. 배경이 된 탄광촌은 이미 과거의 뒤안길로 사라진 곳이다. 한때 정부는 광부들에게 ‘산업전사’라는 미명을 붙여 주었지만 그 산업전사는 목숨을 담보로 지하로 들어가 석탄을 캐내는 사람들이었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만큼 그 대가는 소중히 여겨져야 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탄광촌에는 술과 여자와 노름이 넘쳐났다. 이제 석탄은 효용이 줄었고 탄광촌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기는 하짐나 그들 또한 절망을 짓씹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탄광촌과 관련된 모든 사람이 패배의 구덩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는 것은 잊혀진다는 의미다.
그런 그들을 상징하는 인물이 의선이다. 의선은 주민등록조차 되어 있지 않기에 자신의 정체성조차 갖지 못한 인물이다. 그녀가 유일하게 마음으로 쓰던 일기는 그녀의 삶을 말해주지만 기억조차 잃음으로써 자신조차 잃는다. 그런 그녀의 흔적을 추적하는 두 인물, 인영과 명윤은 자신들의 상처로 인해 의선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반드시 가야할 곳이 바로 의선의 고향인 연골이다. 연골은 세상의 모든 연이 바람을 타고 날아들어오는 곳이므로 희망이 힘을 잃고 내려앉는 곳이다. 그러나 연골에서는 그 모든 연을 모아 태움으로써 봄을 시작한다. 상실과 회복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이곳은 죽음이자 탄생의 시발점이다.
의선이 기억을 되찾는 것에는 오징어 트럭을 모는 남자와 그의 아내가 한 몫한다. 그들은 의선에게 머물 곳을 제공하고 한편으로 애정을 보여준다. 의선은 마침내 기억을 되찾는다. 모든 사람에게는 상처가 있지만 그 상처로 인해 서로는 유대감을 느낀다. 한강의 첫 소설인 이 작품은 어둡다. 마치 탄광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끝없이 내려가고 또 내려가 마침내는 막장에 다다른다.
다행인 것인 이 막장의 끝에 사랑이 있다는 것이다. 막장속에서 사고를 만난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절대적인 연대로 살아남았듯 이들 역시 사랑으로 살아남는다. 인영과 명윤이 의선을 찾아가는 그 여정동안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듯 사진가 장 역시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을 돌아본다. 모든 주요 등장인물이 회복할 것이라는, 이전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암시를 담은 이 결말은 긴 어둠을 따라온 독자들로 하여금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한다.
1998년, 20세기의 말에 나온 이 작품은 대단히 음울해 세기말의 한 모습을 보는 듯 하다. 산없화 도시화로 대변되는 20세기는 모든 개인의 심리에 영향을 끼쳤고 도처에서 우울증을 앓게 했다. 모든 주인공이 상처로 인한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것은 20세기 말 현대인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검은황금을 좇아 그저 파내려가기만 하던 갱도가 내려앉아 기차 사고를 일으키고 많은 사람을 죽이듯 산업화 도시화는 수많은 사람을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거대한 권력과 문명의 발달은 어떻게 할 수있는 것이 아니다. 약자인 우리가 살아남는 것은 서로에 대한 사랑밖에 없다. 희망은 거기에서 출발한다. 아주 미약한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