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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xkim의 서재
  • 시간을 읽는 그림
  • 김선지
  • 18,900원 (10%1,050)
  • 2025-12-05
  • : 1,200

시간을 그림으로 읽는다는 것

오버좀 하자면 책장을 넘기다 문득 멈칫했다. 내가 지금 미술관을 걷고 있는 건가, 역사책을 읽고 있는 건가? 김선진 작가의 『시간을 읽는 그림』을 읽으며 느낀 첫 번째 당혹감이었다. 아니, 당혹감이라기보다는 기분 좋은 혼란이라고 해야 맞겠다.

카메라가 없던 시절, 그림이 사진의 역할을 했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그림이 단순히 '아름다운 것'을 담는다고만 생각했다. 흑사병 시대의 채찍질 고행단, 엘리자베스 1세가 부린 공인 해적들, 극장에서 공개 시연되던 해부학 강의까지. 그림은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인간의 광기와 고통, 역사의 민낯까지 고스란히 담아냈다.

현대미술을 전공한 저자가 한국천문연구원 웹진에 '명화 속 별자리 이야기'를 기고한 것을 계기로 천문학자 남편과 함께첫책을 펴낸 후 책을 쓰는 여정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이후 역사와 과학, 예술을 융합한 글쓰기에 푹 빠져 있다는 저자의 열정이 이 책 곳곳에서 느껴진다. 200여 점의 그림을 통해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세계사를 펼쳐 보이는 이 책은, 거장의 명화뿐 아니라 신문 삽화, 길거리 포스터, 풍자만화까지 아우른다.

책의 특별한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유럽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메소아메리카, 아프리카, 중국, 몽골까지 균형 잡힌 세계관으로 역사를 조망한다는 것. 아즈텍 제국의 인신 공희 그림 앞에서 나는 한참을 멈춰 섰다.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야만, 그리고 그것을 기록한 화가의 눈빛까지 상상하게 되었다. 아편 전쟁으로 몰락하는 중국의 모습을 담은 삽화들은 제국주의의 폭력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미술에 문외한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조원재 작가의 『방구석 미술관』을 읽을 때의 그 신남이 되살아났다. 어렵지 않았다. 지루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렘브란트의 해부학 강의 그림을 보며 17세기 암스테르담의 공기를 상상했고,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당시 쥐고기를 파는 파리 시민들의 그림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토마스 에이킨스의 두 그림을 비교하는 대목이었다. 1875년 작 〈그로스 클리닉〉에서는 검정 프록코트를 입은 채 수술하는 의사들이 등장하고, 1889년 작 〈애그뉴 클리닉〉에서는 흰 가운을 입은 의료진이 정돈된 수술실에서 일하는 모습이 펼쳐진다. 불과 14년 사이에 의료 환경과 인식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한 눈에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처럼 책은 단순히 그림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주제를 다룬 그림들을 비교하며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게 한다.

 

세계사의 한 순간 한 순간이 영화의 스틸컷처럼 생생하게 펼쳐졌다. 폼페이의 벽화를 보며 화산재에 묻히기 전 그들의 평범한 일상을 떠올렸고, 프랑스 혁명의 격동을 담은 그림들 앞에서는 광장의 함성이 들리는 듯했다. 아일랜드 대기근의 참상을 그린 그림은 오래도록 마음을 무겁게 했다. 감자 역병이라는 자연재해가 어떻게 한 민족의 운명을 바꿔놓았는지, 그림은 천 마디 말보다 강렬하게 증언했다.

 나이가 들수록 느끼는 것이 있다. 그림을 볼 줄 알고, 음악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물론 읽고 쓰는 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예술을 감상하는 능력은 단순히 교양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삶을 더 깊고 풍요롭게 만드는 일종의 언어 습득이다. 마흔을 넘어서니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왜 사람들이 미술관에 가고, 클래식 음악회에 가는지. 그것은 단지 고상해 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다른 층위를 경험하고 싶은 갈망이다.

 이 책은 그 언어를 배우는 데 더없이 좋은 안내서였다. 전문 용어를 늘어놓거나 어렵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림 속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내면서 자연스럽게 역사적 맥락과 예술적 가치를 이해하게 만든다. 저자의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텔링은 딱딱한 교과서적 역사를 생생한 드라마로 바꿔놓는다 

책을 읽으며 우리도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수많은 사진들이 훗날 누군가에게는 21세기를 읽는 창이 될 것이다. 그림이 시간을 기록하듯, 우리의 일상도 결국 역사가 된다. 그렇다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그려내야 할까. 아름답게? 진실되게? 아니면 그저 솔직하게?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과거의 화가들은 자신이 그린 그림이 수백 년 후 사람들에게 그 시대를 증언하는 유일한 창이 될 줄 알았을까. 채찍질 고행단을 그린 화가는, 해부학 강의를 그린 렘브란트는, 자신의 붓끝이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을까. 아마 그들 대부분은 그저 눈앞의 광경을 담았을 뿐일 것이다. 하지만 그 진실된 기록들이 모여 거대한 역사의 파노라마가 되었다.

미술관도 좋고, 역사책도 좋지만, 때로는 이렇게 둘의 경계를 허물며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중년의 독서는 이런 맛이 있어야 한다. 물론 중년이 아니라도 이런 감성은 필요하다. 가볍게 읽히지만 무게는 잃지 않는, 눈이 즐겁지만 머리도 함께 움직이는. 그러면서도 가슴 한편을 따뜻하게 또는 묵직하게 채워주는 그런 책이었다.

그림으로 시간을 읽고 나니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달라진 기분이다. 거리의 낙서도, 신문의 삽화도, 심지어 SNS에 올라오는 그림들도 다르게 보인다. 모두가 우리 시대를 기록하는 작은 증언들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일상이 조금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 우리 모두는 역사의 목격자이자 기록자인 셈이다.

당신도 나도 잘 기록하고 생생하게 목격해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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