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리뷰] 고스트 프리퀀시
輝 2022/06/2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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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스트 프리퀀시
- 신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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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 - 2021-10-15
: 138
4.0
‘마그눔 오푸스‘, ‘아나톨리아의 눈‘, ‘고스트 프리퀀시‘
세 가지 짧은 글을 엮은 얇은 책이다.
이야기를 간추리는 건 사실 무의미할 것 같다.
내용 자체도 물론 흥미로웠지만 가장 인상깊었던 건 이 글의 형식이었다.
꿈과 환각과 정신세계를 뛰어넘는 모호한 시공간 개념이라던가 낱낱이 흩어진 이야기에 구각뿔의 주사위를 굴려 번호를 매긴다거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소리를 녹음하여 글로 들려주는 발상같은 것들, 형식에 얽매이지 않아 꼭 해체되었다 재조립된 것 같은 글들이 너무 신선했다.
그리고 또 하나 문득 문학에도 시대가 변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여실히 깨닫고 말았다.
키오스크나 스마트 뱅킹 혹은 MZ세대니 뭐니 그런 사회적인 관점에서만 세대차이를 느끼면서 젊은 작가가 그저 나이가 적고 무게감이 덜한 작품을 쓸 뿐이라 생각했는데 그것만이 아닌 거다.
코딩이며 주식을 초등학교 졸업 전부터 익힌다는 세대와 우리가 같지 않듯 책에서만 모든 지식을 캐어내던 세대와 컴퓨터를 제 몸처럼 끼고 살아온 세대는 이미 나뉘었다는 걸, #000000의 어둠과 .wav 형식의 기억 등의 표현을 통해서야 뒤늦게 깨치고 만다.
그러니까 이런 글을 쓸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작가와 독자는 어느 세대 이후 출생자여야겠구나 하는 깨달음.
비록 전공이 문학이 아니어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글속에 기어코 녹이는 꿋꿋함과 비정형적인 문장들을 뭉친 뒤 고르게 펼쳐내는 그들만의 표현력과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그려내는 일상 혹은 비일상의 장면들, 그것들이 읽는 내내 얼마나 찬란하게 반짝였는지.
최근 떠오르는 작가들의 책들에서 내가 발견해낸 즐거움들이 이런 맥락이었던가 싶어 재밌었다.
그리하여 고전은 고전대로 문장 하나, 단락 하나가 콕 박혀 내내 마음을 뒤흔들 테고 요즈음 이야기는 또 그것대로 이렇게 새로운 감명을 남겨 결국은 모두 내 시야를 넓히고 내 생각을 정제시키고 내 삶을 다양하게 꾸며줄 테지.
뭐 그런 깨달음으로 금세 페이지가 끝나고 마는 짧은 책이었다.
아무튼 꽤 괜찮았다.
📎
꿈에 해가 나왔다. 아주 밝고, 뜨겁게 잘 익은 해였다.
모두가 해를 탐냈다. 한데 아무도 해를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아비가 해를 가지기로 했다.
아비는 꿈에서 개였다. 하얀 개. 아무래도 경술년에 태어나 그런 건지.
아비는 해를 물고 달아났다. 천하야 어두워지든지 말든지. 괘념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얼마 뒤에 네가 찾아왔다. 그래, 네가 바로 해였다.
아비가 해를 물고 달아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만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 나는 꿈에서 황금 잉어를 훔쳤어요.
이제 주인이 다시 자기 것을 돌려달라고 해요. 어떻게 하면 좋아요?
태몽은 산모가 꾸는 게 아니라 으뜸으로 배짱 있는 식구가 꾸는 것이다.
이제 그만 돌려주어라.
너 이미 세상에서 최고 값진 보물을 가지고 있지 않으냐?
📎
나중에 쇼팽은 심낭염으로 인한 심장눌림증 속에 흉통을 호소하며 죽어요. 자그마치 스물한 개에 이르는 녹턴을 작곡하는 사이, 너무나도 많은 밤을 눈 뜬 채로 들이마시기 때문이지요.
📎
시간의 뒤섞임을 나타내는 전정신경계 신호. 다행스럽게도 그때 내 몸은 박지일이 바깥에서 태웠던 슬림 사이즈 던힐 제품 때문에 7밀리시버트쯤 피폭되어 있었다. 담배 내부에도 미량의 포름알데히드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이것은 오히려 나의 현실을 방부 처리하는 방식으로 시제 오염을 막아 주었다.
결국 우리 앞에 남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이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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