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리뷰] H마트에서 울다
輝 2022/05/22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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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마트에서 울다
- 미셸 자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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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 - 2022-02-28
: 18,477
4.6
일하다 말고 잠깐 쉴 틈에 인터넷 창을 켜면 쇼핑말고는 생각보다 할 게 없어서 네이버 메인에 있는 영화나 책 카테고리를 휙 훑고는 하는데 언젠가 이 책이 그 어딘가에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중 굳이 도서관을 들르지 않고도 지하철역에서 책을 대출할 수 있는 좋은 세상을 이제야 누려보기로 하고 기쁜 마음으로 빨간색 표지와 함께 집으로 왔다.
엄마를 떠나보낸 딸이 훗날 그 모든 시간들을 추억하는 이야기, 그냥 그렇게 짧게 함축될 글인데 뭐가 더 특별할까 싶었는데 엄마의 상실은 그 자체로 모든 사람의 마음에 와닿을 수 있음을 간과했다.
누구에게나 엄마는 있으므로.
저만큼의 특별한 일상도 없었고 그만큼의 관심도 받지 못한 삼남매 중 둘째의 유년 시절에는 사실 엄마가 많이 끼어있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엄마라는 존재는 애틋함을 자꾸 불러 일으켜서 연민을 비싼 돈으로 감춘 선물로 포장해 주기도 하고 나는 받지 못한 관심을 담뿍 건네놓고는 채워지지 못한 애정결핍을 숨기곤 한다.
언젠가의 내게 이런 애정이 절실했단 걸 홀로 또 느끼면서.
그럼 또 어디선가 읽은 짧은 글이 생각나는 거다.
딸은 엄마를 영원히 짝사랑한다는.
내가 데려가지 않으면 못 볼 공연들로 반짝이는 눈동자를 만나면, 또 내가 사주지 않으면 나온 줄도 모르고 지나칠 신간을 주면 티는 안 내도 사진찍어 프로필에 올리곤 하는 걸 보면, 늘 조금은 모노톤이었을 무덤덤한 엄마의 세상이 나로 인해 조금씩 확장되는 게 기쁘면서도 한편 달갑지만은 않다.
그 감정을 가진 게 나 뿐만이 아니라는 게 유일한 위안인데 그런 마음을 대번에 파고들어 정곡을 찌르는 게 이 책이었다.
역자 후기에선 이 책을 영화 ‘미나리‘의 엄마와 딸 버전으로 소개했는데 내 생각엔 이 책은 영화 ‘애자‘의 미국판 같다.
맞지 않아 늘 삐걱이는 모녀가 서로 이해하며 화해하는 과정 속에 엄마의 죽음이 깔려있단 것과, 그로 인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겪어보지 못한 상실을 현실로 체험하게 만드는 게 똑 닮아서 눈물을 찔끔 자아낸다.
물론 허구와 현실은 다르지만.
아무튼 읽고 나선 언젠가 뜬금 없이 엄마가 죽은 꿈을 꾸며 펑펑 울며 깨어났던 어린 날의 나와, 엄마에게 암일 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을 전해들으며 CT 판독을 기다리던 불과 한두 해 전의 내가 떠올랐다.
항상 죽음이 멀지 않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방법은 아직 알지 못해서 나는 엄마와 죽음을 같이 두고 싶지 않다.
일상의 부재까진 받아들였지만 그 계단참 너머 들려오던 목소리를 여전히 떠올리는 나는 5년이 지나도 할머니를 보내지 못한 것 같은데 하물며 엄마를 어떻게 떠나 보낼 수 있을까.
남의 슬픈 이야기에 자꾸만 나의 무력함을 들이밀어 나에게 여전히 엄마가 있음을 위안 삼는 게 얼마나 못되고 못난 짓인지 아는데 이 책이 나에게 남긴 걸 이따위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인 걸 어찌하랴.
이 책이 모두에게 가닿는 이유 또한 다르지 않을 거라 뻔뻔하게 주장할 뿐.
이 책은 누군가에겐 놀이공원 속 회전목마 마차를, 누군가에겐 입학식 또는 졸업식에서 받은 꽃다발을, 또 누군가에겐 모자이크 쿠키를 떠올리게 할 테다.
미셸에겐 H마트와 한국이 내겐 경주와도 같다.
그렇게 이 책은 추억과 그리움으로 모두의 책이 되는 건지도.
다만 이기적인 딸은 앞으로도 엄마의 곁에서 무심히 지켜볼 밖에.
함께 있는 시간이 길다고 후회가 적진 않을 거 같다 느끼지만 적어도 내가 하는 노력이 조금은 엄마의 한숨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거라 합리화하며 머무를 밖에.
사랑받는 게 익숙지 않은 만큼 사랑을 주는 건 더 서툴러도 엄마에게 주는 건 아깝지 않으니까, 거기에 조금 더 돌려달라 투정을 섞으며 할 줄 아는 방법으로 결국 해왔던 대로 살겠지.
그렇게 조금만 더 살아야지. 그치.
그러나 엄마의 예술은 엄마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고동치는 사랑이었고, 노래 한 곡 책 한 권만큼이나 이 세상에 기여하는 일, 기억될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사랑 없이는 노래도 책도 존재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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