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리뷰]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輝 2022/02/20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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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 최백규
- 8,100원 (10%↓
450) - 2022-01-21
: 3,778
5.0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몰라서 시는 줄곧 내게 예쁜 말에 불과했다.
그래서인지 신간을 뒤지며 소설 사이 얇게 끼어있는 시집을 외면하다 보면 부채감 같은 게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원색의 표지들이나 제목들이 그런 나를 타박하는 듯 금방 들러붙어 애써 떨궈내기를 여러 번 반복하다가 그마저 익숙해져 으레 아무런 감흥없이 휙 스크롤을 내리곤 했다.
왜였을까.
다 읽고나서 왜 내가 이 책을 골랐던가를 떠올리려 소개 페이지를 다시 들어가보기도 했지만 신기하게도 내가 처음 느낀 감정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그러니까 바스락거리는 압화같은 게 걸려있을, 저 표지색의 안온함을 닮은 안락한 거실같은 걸 기대하며 책을 담았던 것 같은데 다시 보니 그 어디에도 그러한 따스함과 설렘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때의 내 감정이 어디에서 유발되었는지를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그런 이유로 나는 소란한 가운데 가볍게 책을 펼쳤다가 얼마 못 가 놀라 덮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적막 속에서 다시 책장을 연 게 어젯밤 늦은 시간이었다.
김사과의 <천국에서>를 보며 꼭 다큐멘터리 같다고 느낀 적이 있다.
그 말은 생소한 것은 꼭 무언가 비슷한 면을 찾아야 휘발되지 않는 내 뇌의 빈곤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외에는 적합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시 정리하자면 그 책이 다큐멘터리라면 이 시집은 실화 탐사 르포 같다.
왜 저 간결한 문장들에 나는 마음이 저려오는지, 저 쉬운 단어들이 왜 한숨만을 자아내는지, 나는 이 시들로 무엇을 얻고자 했는지.
다만 나는 우울해지지 않았다.
우울에 지지 않으니까 더는.
동정하지 않고 온전한 슬픔을 그려내기가 어려울 뿐이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는 결국 어떻게 시를 읽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시집은 내게 그걸 알려주지 않았다.
이 시가 내게 준 건 그득한 절망 속 한 줄기 빛 같은 여름과, 깜깜한 세상 속 연약하고 아련한 사랑이 풍기는 아름다움과, 생과 사 그 사이의 시간을 채우는 기억의 소중함과,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따위의 물음 등이었는데 그래서 새와 비와 여름이, 그리고 위로 같은, 결국 전해주고 싶은 것과 전해지는 것들이 막무가내로 섞여 머릿 속에 가득해 천천히 심장까지 내려와버렸다.
시를 읽을 줄 몰라 읽은 시가 시 같지 않다.
이런 게 시라니.
이런 짧은 글로 내 시간을 뒤흔들다니.
나는 역시 시는 취향에 맞지 않다.
이렇게 속절없이 휘둘리는 일은 사양이다.
이 시가 소설이라면 나는 그 어린 소년에게 행복을 쥐어주고 해피엔딩도 만들어줄 수 있었을 텐데.
까닭 없는 아픔 속에도 절망하지 않도록 희망을 전하는 신호들을 페이지마다 넣어 꼭 위로해줬을 텐데.
결말 없는 끝맺음이 공허하게 떠도는 게 어색하다.
그게 자꾸 마음에 걸린다.
비를 맞으면서도 눈을 감지 않는
미래를
사랑이라 믿는다
_‘숲‘ 중에서
-사랑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그때쯤 결심한 것 같다, 세계가 망가지더라도 시를 쓰자
아름답게 살자 남은 인생을 모두
이 천국에게 주자
_‘애프터글로우‘ 중에서
누구나 살아 있는 동안 심장 끝에서 은하가 자전한다는 사실을 안다 늙은 항성보다 천천히 무너져가는 지구라면 사각의 무덤 속에는 더러운 시가 있을까
(중략)
이것을 혁명이자 당신들의 멸망이라 적어놓겠다 몇백억 년을 돌아서 우주가 녹아내릴 때 최초의 중력으로 짖을 수 있도록, 모두의 종교와 역사를 대표하도록
두 발이 서야 할 대지가 떠오르면 세계 너머의 하늘이 가라앉고 나는 그 영원에서 기다릴 것이다
돌아가고 싶은 세상이 있었다
_‘지구 6번째 신 대멸종‘ 중에서
우리가 그 여름에 버리고 온 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아플까
_‘폐막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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