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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르네 지라르와 모방욕망

필요 때문에 르네 지라르(1923- )의 책들 뒤적이게 됐다. '지라르 컬렉션'이라고 부를 수는 없어도 국내에서 출간된 그의 책들과 관련서들을 웬만큼 갖고 있었지만, 모두 박스 보관도서인지라 도서관에서 대출하든가 해야 한다. '부재중'이었던 지난 2004년에 나온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문학과지성사)만 어제 새로 구입했고, 영역본은 오늘 학교 도서관에서 대출했다. '워밍업'을 위해서 출간 당시의 언론 서평 하나를 옮겨온다. 한겨레(04. 05. 28)에 게재됐던 것으로 필자는 고명섭 기자이다. 지라르에 관한 기본사항들을 잘 정리해주고 있다.  

 

 

 

 

-문학비평가이자 문화인류학자인 르네 지라르(81)는 20세기 철학의 주제인 ‘욕망’의 문제를 평생 천착한 사람이다.(*더불어 그의 중요한 주제는 '폭력'과 '종교'이다.) 그는 인간 사회의 모든 문제 근저에 욕망이 깔려 있다고 보았으며, 노작들을 이 욕망의 구조와 원천을 탐구하는 데 바쳤다. 1998년에 출간한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는 이 일생의 주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펼치는 책이다.

-그가 말하는 욕망의 특성은 1961년 펴낸 출세작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한길사, 2001)에서 이론적으로 탄탄하게 정립됐다. 그는 문학비평가로서 위대한 소설 작품들을 분석했는데, 그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욕망의 삼각형’을 찾아냈다. 소설의 주인공들이 대상을 직접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제3자의 중개’를 통해 욕망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 그의 발견이다. 주인공 남자가 어떤 여성을 직접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남자의 욕망에 자극받아 사랑하고자 하는 욕망이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욕망 주체와 욕망 대상 사이에 욕망의 중개자가 존재하는 ‘욕망의 삼각형’이 소설의 기본 구조를 이룬다.

-그런데 자신의 욕망이 ‘모방된 욕망’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독자적인 욕망이라고 애써 주장하는 경우를 지라르는 ‘낭만적 거짓’이라 부른다. 이와 달리, 위대한 작품은 욕망의 비자발성을 인정하고 그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데, 그는 그것을 ‘소설적 진실’이라고 칭한다.(*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은 이러한 거짓과 진실의 한 표본적인 소설이다.) ‘낭만적 거짓’은 일종의 무의식적 자기기만이며, ‘소설적 진실’이야말로 사태의 실상이다. 문제는 이 주인공과 중개자 사이에 형성되는 욕망 모방 관계가 선망과 질투와 원한과 증오의 감정으로 뒤엉키는 ‘경쟁 관계’를 이룬다는 사실이다. 주인공에게 중개자는 욕망의 ‘모델’이자 그 욕망 실현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이 주인공-중개자라는 ‘짝패 관계’에 모든 ‘폭력적 갈등’의 본질이 들어 있다.

-이 문학적 통찰을 인류 문화전반에 적용함으로써 지라르 자신을 문화인류학자로 끌어올린 것이 저 유명한 <폭력과 성스러움>이다. 지라르는 짝패의 갈등이 통제되지 않을 경우 영원한 상호 폭력의 악순환으로 빠지게 되는데, 그 악순환을 끊기 위해 인류가 도입한 문화적 장치가 ‘희생제의’라고 말한다. 사회의 반목과 불화가 위험수위에 이를 때 특정한 대상을 지목해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고 희생양으로 삼음으로써 내부의 화평을 끌어내는 것이 희생제의라는 집단적 폭력 행위다. 희생물은 궁극적으로 평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성스러운 존재로 신격화된다. 희생제의는 희생자 처지에서 보면 집단 폭력이지만, 가해자 처지에서 보면 성스러운 행위다. 이런 현상은 인류의 모든 문화적 텍스트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는 이 희생제의를 기록한 문헌 가운데 기독교 성서의 경우를 주제로 잡아 다른 신화적 텍스트와 비교하는 책이다. 지은이가 보기에 성서는 다른 모든 신화와 결정적으로 구별되는 지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신화들이 희생자를 ‘죄인’으로 묘사하고 있는 데 반해, 성서는 희생자를 ‘무고한 존재’로 표현하고 있다.

-신화 텍스트들이 모두 가해 집단의 관점에서 서술된 반면에 성서는 그 관점을 거부하고 일종의 ‘소설적 진실’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 왕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간통한 죄인임을 스스로 고백하지만, 공관복음은 예수가 유대 사회 불화의 희생자로 처형당하는 과정을 희생자 처지에서 그려냄으로써 폭력을 폭력 자체로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은 ‘루가복음’에서 예수가 한 말을 빌린 것인데, 여기서 사탄 또는 악마는 인간 내부에 완강히 자리잡은, 모든 폭력의 원천인 ‘모방 욕망’을 가리킨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 폭력에서 인류가 벗어날 수 있을까 그것이 불가능하더라도, ‘진실’을 안다면 폭력에 성스러움을 입히는 집단적 자기기만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06. 05. 25.

 

 

 

 

P.S. '워밍업'을 끝낸 독자도 읽을 만한 본격적인 지라르 입문서도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그간에 나온 책들 가운데 필독서는 김현의 <르네 지라르 혹은 폭력의 구조>(나남, 1991)이다. 김현 전집에는 <폭력의 구조>로 포함돼 있는데, 아쉬운 건 나남판에 들어 있던 그의 '도스토예프스키론'과 '<이방인>론' 번역이 빠지게 된 것. 지라르의 이론을 한국문학 읽기에 적용한 실례는 김현의 평론집 <분석과 해석>에서도 읽어볼 수 있다.

<오늘의 프랑스 사상가들>(문예출판사, 1989)도 르네 지라르에 한 장이 할애돼 있다. 그리고 지라르의 저작 대부분을 우리말로 옮긴 김진식 교수의 <르네 지라르에 의지한 경제논리 비판>(울산대출판부, 2005)도 얇은 책이지만 참고해볼 만하겠다. 진중권의 <폭력과 상스러움>(푸른숲, 2002)에는 지라르의 폭력론 혹은 희생양 이론이 한국사회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저널적인/패러디적인 글들이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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