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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hy-님의 서재
  • 펠리시아의 여정
  • 윌리엄 트레버
  • 14,400원 (10%800)
  • 2021-05-24
  • : 1,254
이 책은 펠리시아의 이야기이다. 첫 챕터는 배멀미로 시작된다. 앞으로의 순탄치 않을 여행을 암시하는 것 같다. 목적지는 영국이고, 그녀는 임신한 아기의 아빠를 찾으러 떠난다. 그녀를 따라 책 속을 여행하는 동안, 나도 멀미를 겪는 듯 하다. 때로는 휘청거리고, 속이 울렁거리고, 때로는 이 책에서 목격하고 들은 것들을 토해내고 싶어지기도 했다.

이 책은 또한 힐디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의 충격적인 비밀이 책의 후반부에 드러난다. 그 일은 우아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사건이다. 그래서 대신 그는 집을 우아하게 꾸미고, 선한 인상으로 자신을 포장한다. 요리를 즐기고 재즈를 듣는다. 재즈에는 밝음과 우울감이 뒤섞여 있다. 재즈처럼 그의 마음은 예측 불가능한 변주와 불협화음으로 혼란하다.
힐디치는 반복해서 어린 여자들을 만난다. 그런데 그는 다른 소설 속 남자들과는 다르다. 여자들을 만나,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한다. 도대체 그가 그녀들에게서 보상 받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그 결핍의 뿌리 - 그 비밀이란 무엇일까. 그녀들이 떠나겠다 말하는 순간, 그는 그녀들이 그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그의 온 인격이, 그 비밀에 묶여 있다. 그 어두움에서 그는 헤어나올 수 있을까.

아, 이 책은 그녀들 — 베스와 엘시 커빙턴과 샤론, 게이, 재키, 보비의 이야기이다. 그녀들은 언제 어떻게 사라지든,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이 땅엔 그런 소녀들이 있다. 떠나 왔지만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소녀들. 이 땅에서 사라진다 해도 뉴스가 되지 않는 소녀들. 나는 시리아 내전으로 고향 밖을 떠돌게 된 소녀들을 떠올린다. 그녀들은 전쟁을 피해 떠나왔지만, 일상은 여전히 전쟁통이다. 난민 캠프를 떠돌고, 성폭행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앞으로의 삶은 정착지 없는 여정이 될 것이고, 내일에 마주할 또 다른 전쟁이 다음 행선지가 될 것이다.
그녀들과 펠리시아는 언제쯤 ‘집’이라 할 만한 곳에 도착해, 한 숨 푹 잘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에 여행의 고단함은 위로 받는다. 펠리시아는 아직 집으로 가지 못했다. 배멀미를 겪으며 도착한 영국에서 펠리시아는 연인에 대한 순진한 믿음을 잃었고, 죄책감을 잃었다. 그리고 그녀의 진짜 여정이 시작된다. 그녀는 이제 밤거리가 무서워 움츠리는, 어린 소녀가 아니다. 인생의 고통에 수긍하고 그 안에 침잠해 걷는 - 어른의 여행을 한다. 추운 밤을 지샌 후에, 구름의 변덕을 따라 돌아다닌다. 오전의 햇빛이 밤새 눅눅해진 그녀의 옷과 머리카락을 말려 준다. 펠리시아는 이제 순진하지 않지만, 세상의 폭력과 인간의 모순된 내면을 통찰하는 눈으로 여행을 계속한다.

선과 악, 성자와 악인, 생명과 죽음, 자비와 경멸, 증오와 용서. 그 대립된 관계에 뚜렷한 경계란 존재하는가. 윌리엄 트레버가 이렇게 질문하는 듯 하다. 오염되지 않은 선이 존재하는가. 거기에 대해 펠리시아의 생각을 빌어 - 그리 강하지 않은 목소리로 - 윌리엄 트레버는 책 말미에 이렇게 남긴다.
“그럴 필요가 없는 어떤 사람이 가던 길을 멈추고 멍청한 해나를 위해 구급차를 불렀다... 여자들이 밤에 수프를 가지고 온다. 선의로, 결코 잊지 않고,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 치과의사는 자신의 존재를 부랑자들의 썩은 이에, 부랑자들의 악취와 불결함에 바쳤다. 그녀의 선량함은 한 남자가 내뱉은 모든 말과 그가 한 모든 행동을 왜곡시킨 사악함보다도 더 큰 미스터리다.” __ p. 320-321

우리는 세상의 이면을 외면한 채 여행한다. 그런 우리에게 윌리엄 트레버는, ‘이제 제대로 보라’고 안내한다. 쇼윈도와 주택대출 이자율 광고와 전자레인지 광고와 켄터키 프라이드치킨과 코카콜라 광고 문구 아래로, ‘집도 없고 배도 고픕니다’라고 판지에 쓴 호소도 좀 보라고. 그들의 절망과 거세된 꿈과 눈물도 들어 보라 한다. (p. 153-157 인용)

윌리엄 트레버는 우리를 여행지로 안내한다. 여행지의 거친 도로, 동행자의 지난 이야기들, 결핍의 체취 등을 직시하고 겪게 만든다. 그리고 멈추어, 사유하라 말한다.
“그녀는 떠오르는 생각 속에서 굳이 의미를 찾지 않고, 목적 없는 여정에서도 더이상 의미를 찾지 않으며, 시간과 사람이 뒤죽박죽 섞인 가운데서도 어떤 규칙을 찾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생각은 존재한다.” __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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