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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니
  • 썸타는 미술관
  • 김용임
  • 20,700원 (10%1,150)
  • 2026-05-05
  • : 1,205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썸타는 미술관]이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미술을 이렇게 가볍게 지어도 되나 싶었다. 그림 보는 걸 무슨 연애하듯 표현한 게 좀 낯간지럽기도 했고. 그런데 다 읽고 나니까 제목을 이렇게 지은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마지막 장에 썸타는 연인들을 위한 코스가 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림을 설명하는 책이라기보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즐기고 감상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에 더 가깝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관람 방식에 대한 부분이었다. 나도 미술관을 가면 하나라도 더 보려고 빨리 걸어 다니는 편이다. 그런데 저자는 오히려 그런 욕심을 버리라고 말한다. 대형 박물관에서는 미리 보고 싶은 작품만 정해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한 작품 앞에 오래 머무는 편이 훨씬 좋은 감상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기억에 남는 건 백 점을 본 날보다 단 한 점 앞에서 오래 서 있었던 날이었다.







관람이 끝난 뒤 카페에 들르고 맛집을 가고 산책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모두 감상의 연장이라는 이야기도 공감했다. 주말에 미술관을 갔다가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여유, 생각만 해도 흐뭇해진다.  그래서인지 책 속 미술관은 조금 이상적으로 그려진다. 


책의 후반부 에곤 실레 이야기는 미술책이라면 한 번쯤 등장하는 단골 소재다.  처음에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읽다 보면 실레라는 사람이 그렇게 낭만적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발리는 무명 시절 그의 곁을 지키며 그림 도구를 챙기고 감옥 뒷바라지까지 했지만, 실레는 성공을 앞두고 더 안정적인 삶을 선택했다. 책에서는 이별의 비극에 더 무게를 두지만, 내 눈에는 조금 다르게 읽힌다. 사랑보다 자기 성공을 택한 인간의 현실적인 욕망 말이다. 치열하게 자리 잡아야 한다는 조바심, 남들 보기에 그럴듯한 삶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소중한 관계를 뒤로 미루는 지금의 내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실레가 아무리 대단한 예술가라 하지만 현실적인 안정을 좇으며 자기에게 더 유리한 선택을 한 그런 사람이었다. 물론 그림을 계속 그리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기반이 가장 중요했을 수도 있긴하지만 말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림보다 발리가 더 오래 남았다. 유명한 화가들은 대부분 알고 있었지만, 그 곁에서 이름 없이 사라진 사람들은 거의 모른다. 미술사라는 건 결국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남기는 역사같다. 책은 화가를 설명하고 있었는데, 내 시선은 계속 모델과 연인들에게 향했다.


〈죽음과 소녀〉는 그래서 후회의 그림이라기보다 이미 늦어버린 기록같다. 매달리는 여자를 안고도 텅 빈 눈을 하고 있는 남자. 흔히 이 작품을 떠나간 사랑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내 눈에는 욕망에 영혼을 팔아버린 사람의 공허함으로  보였다. 







다 읽고 나니 문득 미술을 보는 일이 사람을 보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의 첫인상만 보고 지나가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런데 왜 이런 색을 썼는지, 왜 이런 표정을 그렸는지 궁금해지는 순간, 전혀 다른 그림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첫인상으로 끝나는 관계도 있고, 오래 볼수록 새롭게 보이는 관계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그사람의 첫인상보다는 매력을 더 보게 되는 이유도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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