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혁신의 지리학]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지리학과 역사를 모두 알 수 있는 책이라는 거였다. 실리콘밸리, 베이징, 서울. 독일. 캐나다 등. 혁신이 왜 그 땅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추적하는 방식이라 읽는 내내 꽤 흥미롭다.
텐센트 이야기부터 인상적이었는데, QQ에서 위챗으로 이어지는 성장 과정은 익히 들어온 얘기지만, 텐센트가 라이엇 게임즈 지분 전부, 에픽 게임즈 지분 절반, 슈퍼셀의 80퍼센트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몰랐다. 그러니까 포트나이트 하는 사람도, 클래시 오브 클랜 하는 사람도 사실은 중국 자본 위에서 게임을 하고 있던 셈이다. 스포티파이의 3대 주주도 텐센트라는 사실은 이 책을 읽고 새로 알게 된 사실이다. 중국 밖에서 텐센트를 위챗 정도로만 알고 있다면, 그건 이미 옛날 이야기라는 걸 알아야 한다. 중국 자본은 생각보다 많은 곳에 분포되어 있다. 정말 별로다. 소름이 돋는다.
쿠팡 창업자 김범석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6개월 만에 때려치우고 서울로 건너와 그루폰 따라 하기로 시작한 게 쿠팡이었다.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 30번째로 진입한 스타트업이 어떻게 1등이 됐는지를 보면, 무식하게 직진한 것이 전략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체 물류, 당일 배송, 자정 전 주문하면 다음 날 7시 배달. 반품도 그냥 문 앞에 두면 끝. 그게 지금의 쿠팡이 됐고, 2021년 뉴욕 상장에서 840억 달러 가치로 데뷔했다. 알리바바 이후 최대 규모의 외국 기업 IPO였다고 하니, 솔직히 한국인으로서 뿌듯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얼마 전 개인정보 유출 관련 사건은 같은 한국인으로써 정말 실망스럽다.
그리고 실리콘밸리가 왜 그렇게 강한지에 대한 설명이 책에서 꾸준히 나온다, 애너리 색스니언이라는 학자 이야기인데, 그가 UC 버클리 대학원생이던 시절 실리콘밸리는 곧 망할 것이라는 결론을 냈다고 한다. 집값이 너무 높고, 임금이 너무 높고, 인프라가 한계라고. 근데 40년이 지난 지금도 실리콘밸리는 건재하다. 그게 왜일까. 캘리포니아주의 느슨한 경쟁금지 조항 덕분에 직원들이 자유롭게 이직할 수 있었고, 그 이동과 함께 아이디어도 섞였다는 거다. 보스턴 루트 128의 기업들은 폐쇄적인 수직통합 시스템이었다면, 실리콘밸리는 구멍이 뚫린 그물망 같은 구조였다고 한다.. 사람이 움직이면 정보도 움직이고, 정보가 섞이면 새로운 기술이 나온다. 어찌 보면 되게 단순한 논리인데, 현실에서 이렇게까지 큰 차이를 만들어냈다는 게 대단해보였다.
책에서는 엔비디아 이야기도 빠질 수 없는데. 원래 고사양 게임용 GPU를 만들던 회사가 인공지능 인프라의 핵심이 된 게 포인트다. 인공지능용으로 판매되는 GPU 5개 중 4개가 엔비디아 제품이라는 수치는 꽤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엔비디아 젠슨황이 그렇게 치킨 테이블에서 인기가 있던 걸까. 한 분석가는 AI 전쟁에서 엔비디아가 유일한 무기 거래상이라고 했는데, 이 표현이 책에서 읽은 문장 중에 가장 의외였다. 그 정도라고? 미국이 엔비디아 고성능 칩의 중국 수출을 금지하고 있는데, 중국은 우회로를 찾고, 엔비디아는 규정 기준 이하의 저성능 칩을 만들어 우회한다. 이 고양이와 쥐의 게임이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것이 흥미로웠다.
한국 재벌 얘기도 나오는데, 박정희가 집권 초기에 재계 12위까지 기업인들을 전부 감옥에 가뒀다는 부분은 언론에도 나왔던 부분일까 싶었다. 삼성 이병철 회장도 예외가 없었다고 하니. 그렇게 잡아 가뒀다가 국가 재건에 기여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석방한 게 재벌 체제의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참 대단한 분이다. 국가 재건에 기여하는 약속을 잡아내다니. 지금의 삼성, 현대, SK가 그 구조에서 나온 거라는 걸 생각하면, 한국 경제의 뿌리가 꽤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1960년대에 가발이 한국의 세 번째 수출 품목이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미국인들이 착용하는 가발의 3분의 1이 한국산이었다는 대목에서 한국의 위상은 과거에도 있었다는 생각에 뿌듯해졌다.
텐센트도, 쿠팡도, 실리콘밸리도 전부 사람이 이동하는 자본의 흐름 위에 있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투자를 막기 시작하면서 그 자본이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 지리적 특성에 맞춰진 경제적 효과를 책이 아주 잘 설명해주고 있어서 몰랐던 부분들이 참 많았다. 그래서 더 좋았던 책이다. 기술 산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 또는 쿠팡을 매일 쓰면서 그게 어디서 왔는지 한 번쯤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