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뇌는 혼자 생각할 때보다 다른 뇌와 '연결'될 때 비로소 진정한 잠재력을 발휘한다. 신경과학자 한나 크리츨로우는 저서 [초연결 지능]을 통해 우리가 왜 타인과 협력해야만 생존하고 진화할 수 있는지 그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다. 똑똑한 개인보다 '함께 생각하는 뇌'가 만드는 힘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지, 책이 전하는 집단 지능의 메커니즘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흔히 유능한 전문가 한 명이 팀의 모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기대하지만, 전문 지식은 때로 새로운 생각을 가로막는 울타리가 되기도 한다. 지적 수준이 높을수록 자신의 성취에 안주해 타인의 조언을 배척하는 <지능의 함정>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를 깨는 비결은 십 대의 기발한 <수평적 사고>와 성인의 노련한 지혜가 맞물리는 지점을 찾는 데 있다. 특히 ADHD나 자폐 같은 특성을 장애가 아닌 <신경 다양성>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조화로운 팀은 개별 지능의 합을 뛰어넘는 <초연결 사고>의 토양이 된다.
이러한 연결의 힘은 현대의 팀워크를 넘어, 시공간을 초월한 유전적 유산으로까지 확장된다. 어린 시절의 부정적인 경험(ACE)은 뇌의 구조와 면역계를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후성유전학>적 경로를 통해 다음 세대에게 대물림된다. 트라우마는 DNA라는 책의 글자를 고쳐 쓰지는 않지만, 중요한 페이지에 '강력 주의'라는 포스트잇을 붙여두는 것과 같다. 부모가 겪은 시련이 자녀에게는 '세상은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유전적 신호로 전달되는 셈이다. 실제로 공포를 학습한 할아버지 쥐의 기억이 손자 쥐의 뇌 회로에 각인된다는 실험 결과는 이 보이지 않는 연결의 위력을 실감케 한다.
하지만 이 유전적 사슬은 영원한 감옥이 아니다. 공포를 느꼈던 환경이 다시 안전하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경험하면 뇌의 신경 회로는 원래대로 돌아오고, 후손에게 전달되던 트라우마의 포스트잇도 지워진다. 결국 인간의 지능과 삶은 고립된 섬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타인과 촘촘히 엮여 상황에 따라 변하고 성장하는 가변적인 유산인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완벽한 인간은 없다’는 해답을 다시금 확인했다. 인간의 뇌는 전문성을 얻으면 유연성을 일부 내어주어야 하는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 전문가들이 자신의 맹점을 보지 못해 집단 전체를 잘못된 길로 인도할 수 있다는 대목에서는, 지식의 양보다 중요한 것이 사고의 빈틈을 인정하는 겸손함이라는 점을 느끼게 되었다.
특히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후성유전학>은 나에게 꽤 신선한 충격이었다. 트라우마가 단순히 심리적 상처인 줄만 알았는데, 그것이 생물학적 신호가 되어 다음 세대의 삶까지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던 지점이라 매우 인상 깊었다. 내가 가끔 느끼는 이유 모를 불안이나 예민함이 어쩌면 내 성격 탓만이 아니라, 앞선 세대가 살아남기 위해 남겨둔 생존 지혜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야가 한층 넓어진 기분이다.
가장 마음이 움직였던 부분은 사회가 '부족함'이라 명명했던 특성들이 사실은 인류 생존을 위한 특별한 전략일 수 있다는 시각, 그리고 유전적 흉터조차 치유를 통해 지워낼 수 있다는 희망적인 대목이었다. 우리는 과거의 기억에 갇힌 포로가 아니라, 지금 어떤 환경을 만드느냐에 따라 미래 세대의 유전자 다이얼을 다시 맞출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다.
이 책은 겸손과 연대를 이야기한다. 타인의 재능으로 나의 부족함을 채우고, 나의 강점으로 타인의 빈틈을 돕는 과정 말이다. 특히 나 한 사람의 회복이 다음 세대에 "세상은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내는 소중한 밑거름이 된다는 점이 마음 한구석에 깊게 남았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