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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님의 서재
  • 엄마가 죽어서 참 다행이야
  • 제넷 맥커디
  • 15,750원 (10%870)
  • 2023-09-06
  • : 1,274

  제 서평은 객관성을 잃었습니다. 제넷 맥커디의 강인함에 빠져 허우적대기 바쁘네요. 명랑하고 유머러스한 서술을 통해 아동학대로 망가져버린 어린시절과 엄마의 죽음 이후 지난한 회복기를 풀어낸 회고록입니다. 수많은 아마존 베스트셀러 거품 작품들 중 찬란히 빛나는 진주네요. (올해 읽은 에세이 중 최고!)


  원서로 읽고 제넷 맥커디에 매료되어 번역본이 궁금해지던 찰나 운명처럼 위즈덤하우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아무래도 책을 무료로 제공받은지라 글을 예쁘게 다듬어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에 시달리다가... 제넷 맥커디의 용기를 빌려 솔직하게 써봅니다.

 


잠깐! 제넷 맥커디, 그게 누군데?

  일단 우리나라에는 제넷 맥커디를 아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 같은데, 청소년 시트콤 <아이칼리(iCarly)>에서 샘 퍼켓 역을 맡았다고 소개해도 역시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조금 더 친숙한 배우와 작품으로 비교해보자면, <아이칼리>는 마일리 사이러스 주연 <한나 몬타나(Hannah Montana)>, 셀레나 고메즈 주연 <우리가족 마법사(Wizards of Waverly Place)>와 비슷한 위상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우리나라 청소년 드라마로 치면 <드림하이> 시리즈 정도라고 할까. 즉, 제넷은 2000년대~2010년대에 청소년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던 아역 배우다.


  그러니 이 책은 우리나라로 치면 국민 아역 배우였던 김유정/김소현 등이 성인이 되어 자신이 가정에서 겪은 아동학대와 촬영 현장에서 벌어진 아동착취를 고백하는 책을 낸 것과 다름없는 거다. 그것도 <엄마가 죽어서 참 다행이야>라는 제목을 달고.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책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용감하고도 아픈, 어떤 사랑에 대한 기록'?

  만일 이 기록이 사랑의 기록이라면 그건 짝사랑의 기록이다. 그것도 아동학대를 일삼은 엄마를 향한 아이의 짝사랑 기록이며, 짝사랑이 그렇듯 이 사랑은 과정도 결말도 모두 비참하다. 하지만 제넷의 인생을 단순히 사랑에 대한 기록이라고 칭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동학대를 비롯해 고난이란 고난은 숨돌릴 틈도 없이 제넷의 인생을 강타하지만 제넷은 무너지지 않는다. 잠시 흔들릴지언정 중심을 잡고 번번이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넷이 보여주는 용기, 그리고 더 나은 삶을 향한 의지는 여느 성장 소설의 주인공 못지않게 찬란하다. 그러니 역시 제넷의 잔인할 정도로 솔직한 고백에는 ‘용감한 성장기’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이 책에는 유년기부터 거의 현재 시점까지 제넷의 인생이 담겨 있다. 엄마 데브라가 죽기 전까지 제넷이 얼마나 데브라에게 종속되어 있었는지, 데브라는 또 얼마나 제넷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통제해왔는지 쉴새없이 제시된다. 엄마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엄마를 만족시키기 위해, 엄마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그리고 엄마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기 위해 제넷은 어려서부터 매순간 엄마의 기분을 살피고, 엄마가 뭐든 시키는 대로 따르며, 나다움을 억누른 채 엄마와 의견을 일치시킨다. 심지어 좋아하는 색깔도,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 맛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엄마가 원하는 방향으로 대답한다면 심리적 억압이 어느 정도인지 느껴지겠는가. 제넷은 자신의 행복을 희생한 대가로 엄마에게 행복을 바친다.


  하지만 엄마 데브라는 다르다. 데브라는 제넷의 기분은커녕 정신적 신체적 건강도, 꿈도, 취향도 그 무엇도 살피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것과 조금만 다른 대답을 하면 눈물을 흘리며 죄책감을 심어주거나, 히스테리를 부리거나, 외면으로 일관한다. 데브라의 꿈은 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넷을 배우로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제넷의 의사나 타고난 성향과는 전혀 상관 없이. 어린 제넷이 연기에 대한 스트레스로 틱장애를 보일 때도 이를 외면하며, 열이 39도가 넘어가도 오디션을 보게 한다. 뿐만 아니라 아이 같은 체구를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 칼로리 제한, 즉 거식을 유도한다. 말라가는 제넷의 모습을 본 또래 학부모도, 병원의 의사도 거식증이 의심된다며 주의를 주지만 데브라는 아무 문제 없다며 묵인한다. 그리고 어린 제넷이 연기를 더는 못하겠다고 고백하자, 운전 도중 운전대를 내리치며 히스테리를 부리기까지 한다.


  이렇듯 데브라는 제넷의 심리와 신체를 비롯해 모든 것을 통제했다. 꿈, 취향, 인간관계, 그리고 식습관까지 전부 자기 취향대로. 제넷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정말 숨이 턱 막힌다. 아이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학대를 사랑으로 여기며 데브라의 기준에 부응하려는 제넷의 모습은 순수하고, 또 순수한 만큼 안타깝다. 제넷은 엄마 데브라를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데브라는 제넷보다 자기 자신을 훨씬 더 사랑하기 때문에. 제넷은 자신을 희생해 엄마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려 아등바등하지만, 데브라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기분과 행복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또한 배우가 되어 엄마의 꿈을 이루어주었음에도 체중을 날씬하게 유지하는 것부터 시작해 자신이 죽으면 매일매일 묘비를 찾아와야 한다는 부탁까지 데브라의 요구는 끝이 나지 않는다. 데브라는 제넷에게 끊임없이 요구하고 기대하고 또 바란다. 제넷에게 헌신적이지만, 그 헌신은 오직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자기 헌신일 뿐이다.

 


  제넷의 삶은 엄마가 죽고 나서 완전한 혼돈 속으로 빠져든다. 그간 제넷의 정체성은 엄마 데브라를 근간으로 했기에 엄마가 없는 세상 속에서 제넷의 정체성은 그야말로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린다. 관성처럼 연기를 이어가지만 정신적으로는 점점 죽어가며, 엄마가 바라온 모습대로 살아야 한다는 마음과 그간 억압받은 자아 사이의 충돌은 거식과 폭식이라는 형태로 제넷을 망가뜨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제넷이 정말로 빛이 나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아동학대의 여파로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지만, 제넷은 다시 인생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움직인다. 엄마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인생은 무엇인가 질문하며 자기계발서를 찾는 것부터 전문 치료사를 찾아가는 것까지 서툴지만 확실하게 변화를 향해 나아간다. 물론 치료를 거부하거나 거식과 폭식으로 되돌아가는 등 회복의 길이 순탄치만은 않다. 하지만 제넷은 괴로운 인간관계를 끊어내고, 연기를 그만두고, 섭식장애를 극복하며 점차 건강하고 행복해지기 시작한다.


  결국 제넷은 엄마가 ‘Yes’라고 답하게 했던 모든 것들에 ‘No’라고 답하기 시작하면서 행복으로 나아간 셈이다. 그것도 엄마가 죽고 나서야 겨우겨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제목이 정말 엄마가 죽어서 ‘참 잘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도발적인 제목의 진짜 의미는 다음과 같다.

 

  ‘아동학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서 참 다행이야’

그리고

  ‘이제 내 삶을 살 수 있어서 참 다행이야’

 

  그러니 제넷은 엄마가 죽은 걸 기뻐하는 게 아니다. 엄마가 자신에게 드리운 통제의 그늘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되찾은 것을 아동학대의 생존자로서 위트있게 표현한 것이다. 비로소 인생이 자신만의 궤도에 올라 다행이라고. 더 이상 배우로 살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음식을 먹으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엄마의 삶을 대신 살지 않아도 되어서 참 다행이라고. 제넷은 여전히 엄마를 사랑한다. 하지만 더는 엄마의 행동이 사랑이었다 믿지는 않는다. 더 이상은 엄마가 나를 위해 그 모든 일을 해왔다고 애써 합리화하지 않는다. 데브라가 자신을 위해 희생한 이타적인 엄마였다고 미화하지 않는다. 그런 건 바보들이나 믿는 것(What a Fool Believes)이니까.


  마지막 장에 와서야 제넷의 짝사랑은 끝이 난다. 그리고 그제야 ‘엄마’라는 포장지가 벗겨지고 ‘데브라’라는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를 위해 무엇이든 하는 ‘엄마’에서 딸의 모든 걸 자기 마음대로 해야만 했던, 딸에게 평생 자신을 사랑할 것을 종용해온, 이기심 가득했던 ‘데브라’로. 평생을 사랑하고 우러러봤던 엄마가 실은 이기적이고 폭력적이고 불안정하고 형편없는 사람이기도 했다는 사실이 그제서야 선명해진다. 제넷을 구속하던 ‘엄마’라는 환상은 깨지고 냉담한 현실만이 남지만, 제넷은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자신의 묘비를 매일 찾아달라던 데브라의 요구에 ‘여기에 다시 올 일 없을 것이다’라고 답하며 ‘엄마’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자아로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제넷의 삶이 데브라로 인해 실시간으로 피폐해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교묘한 아동학대로 괴로워하고 있을 아이들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한편으로는 각종 고난이 닥칠 때마다 심리적으로 무너지고 또 무너지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제넷의 모습이 너무나 찬란했다. 데브라는 제넷을 자신의 분신으로 키우고자 했지만, 제넷은 결국 배우에서 작가로 자라났다. 체중에 집착하며 먹을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에서 음식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했다. 다른 사람이 기대하는 모습을 꾸며내던 사람에서, 이토록 솔직하게 자신이 겪은 일을 고백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이 쓰라린 성장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독자로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비슷한 경험을 한 분들에게도 제넷의 글이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주리라.

 


  마지막으로, 제넷이 솔직하게 내보여준 인생만큼 데브라의 학대가 끔찍하게 다가왔기에 책 뒤편의 추천사에 실린 몇몇 표현이 아쉽게만 느껴졌다.

  바로 데브라를 ‘그저 나약한 존재에 불과했던 한 인간’(김혜진 소설가), ‘딸을 너무 사랑해서 자신의 꿈을 투영’(오지은 작가)한 엄마라고 표현한 부분이다. 제넷의 입장에서 보면 데브라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존재다. 식칼을 들고 아이들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고, 아이의 이상행동을 방치하고, 섭식장애를 부추기고, 아이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전혀 돌보지 않으며, 성인이 된 딸을 통제하려 하고 통제를 벗어나는 순간 욕설을 퍼붓고 히스테리를 부리는 사람에게 ‘나약한 존재’라는 표현은 미화에 가깝다.


  데브라만 따로 떼어놓고 봐도 ‘나약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물론 데브라는 암이 재발하면서 신체적으로 쇠약해지기는 하지만, 한창 제넷을 양육할 때는 암을 한번 이겨낸 사람이었고 이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으며, 고된 스케줄을 소화해내며 딸을 할리우드 스타로 만들어냈다. 데브라의 삶만 놓고 보면 오히려 강인하다는 표현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보인다.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어쩌면 데브라가 “심리적”으로 ‘나약한 존재’였다는 표현을 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데브라는 상당히 불안정한 심리 상태의 소유자였으니까. 하지만 데브라와의 애증의 관계, 데브라의 학대로 인해 삶이 한번 완전히 망가져버렸던 사람의 인생 고백을 듣고 데브라의 입장에 서서 데브라를 ‘나약한 존재’로 표현하는 것 역시 부적절해 보인다. 무엇보다 묘비 앞에서 제넷이 똑바로 바라본 건 데브라의 나약함이 아니라 어린 자신을 향한 학대였으니까.


  ‘딸을 너무 사랑해서 자신의 꿈을 투영’한다는 말도 이해되지 않는다. 딸의 관심사나 꿈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선택지조차 주지 않고 내 꿈을 이뤄달라는 엄마가 정녕 딸을 너무 사랑하는 게 맞는 걸까. 딸을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분신이자 소유물로 대하는 게 정말 사랑이 맞을까. 딸의 건강과 행복과 정체성을 희생해 결국 자신의 꿈을 이룬 엄마가 딸을 너무 사랑해서 그런 것이라 표현되는 건 거부하고 싶다. 데브라의 ‘사랑’을 제넷의 사랑에 견주어 보면 데브라의 것이 얼마나 허울뿐인 ‘사랑’인지, 얼마나 얄팍한 이기심에 불과한지 선명하게 보이기에 더더욱.


  전반적으로 추천사가 제넷의 성장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엄마와의 관계 속에 놓인 제넷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아쉽게 느껴졌다. 어쩌면 추천사는 <엄마가 죽어서 참 다행이야>라는 제목이 주는 패륜의 이미지를 완화하기 위해 ‘사랑’이라는 표현으로 가득해진 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저 내가 추천사에 담긴 심오하고도 깊은, 어떤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걸지도. 어쩌면 우리말로 번역된 데브라의 목소리가 다소 순화되어 이런 평이 나온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추천사와는 별개로 제넷의 솔직함이 빛을 발하는 에세이였다. 아무래도 상업적인 재미를 위해 연출된 부분도 어느 정도는 있겠지만, 이 회고록에서 보여주는 솔직함에는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누군들 엄마는 늘 나를 사랑했다고, 사랑해서 그랬던 거라고 미화하고 싶지 않으랴. 하지만 그럴수록 솔직하고 노골적으로 그것이 학대임을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최대한 빠르게 그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제넷이 오랜 방황 끝에 엄마를 향한 미화를 멈추고 데브라의 명과 암을 있는 그대로 인정했던 것처럼, 제넷의 인생을 통해 많은 분들이 자신만의 복잡하고 어려운 관계를 풀어갈 힌트를 얻게 되길 바란다.

 


  기나긴 짝사랑을 끝내고 스스로를 사랑하기 시작한 제넷을, 또 이제는 성인이 된 수많은 아동학대 생존자들을 응원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모두 파이팅.

나는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놀라 바와 데친 채소로 연명하고 싶지 않았다. 내 인생을 <우먼스 월드>의 다이어트 페이지에 얽매어 보내고 싶지도 않았다. 엄마는 나아지지 않았지만, 나는 반드시 나아질 것이다.- P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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