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1231/pimg_7258531302403059.jpg)
<왕자와 드레스메이커>는 파격적인 소재로 풀어낸 성장담이다.이런 소재를 10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에서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드레스를 입는 왕자 이야기라니! 하지만 <왕자와 드레스메이커>는 마냥 낯설지만은 않다. 소재는 파격적이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 속에 두려움과 부담감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이 다뤄지기 때문이다. 비록 아직까지는 낯설고 혼란스럽게 다가올 수 있는 소재가 담긴 이야기일지라도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 내가 좋아하는 일을 추구할 수 없을 때 느껴지는 답답함과 같은 일상적인 감정들과 연결지어 본다면 청소년기 아이들이 충분히 공감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로 읽힐 것이다.
<왕자와 드레스메이커>는 생각해볼 거리를 정말 많이 던져주는 작품이다. 기본적으로는 각자의 목적을 위해 적극적으로 서로를 돕는 소년 소녀의 이야기이지만 크로스드레싱이라는 소재 덕분에 우리가 지닌 통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아이들에게 이 책을 선물할 예정이라면, 부모와 함께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성 고정관념, 의복과 성 정체성등에 대해 이야기해볼 수도 있고,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지점에 질문을 던지게 한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의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에 주목하고 그 의미를 고민하도록 이끌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왕자와 드레스메이커>는 막 백화점이 들어서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데, 왕은 '백화점이 열리는 시대에 왕과 왕자는 더 이상 어디에도 어울리는 자리가 없다'고 말하며 왕자의 모습을 지지하고 긍정한다. 왕자에게 장군이 되길 기대하거나 어린 나이에 정략결혼을 독촉하는 시대가 지나가는 것처럼 시대가 변하는 만큼 사람들의 인식도 함께 변해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현 사회가 점점 성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듯이 이 이야기를 현재 우리의 삶과 연결지어 본다면 아이들이 자기만의 관점에서 벗어나 성숙할 수 있게끔 지도할 수 있을 것이다.)
드레스 입는 왕자가 이상하다면 더 생각해보기, ‘남장’과 ‘여장’
<왕자와 드레스메이커>에는 크로스드레싱이 등장한다.왕자인 세바스찬이 드레스를 입으며 레이디 크리스탈리아로 변신하는 것이다. 남자가 드레스를 입다니,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이상하다는, 그런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장’이 아닌 ‘남장’을 떠올려 보면 글쎄, 크게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다.우리는 여성이 남성의복을 입고 활약하는 이야기와 친숙하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버지를 대신해 전쟁터에 나선 <뮬란>이 있을 테고, 국내 고전으로는 <이춘풍전>이나 <홍계월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들 속에서는 여성이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에게 제한되었던 일들을 하고자 ‘남장’을 선택했다. 즉, ‘남장’은 불합리한 사회의 극복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이에 반해 ‘여장’하는 남자가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찾아보기 어려울뿐더러 일상적으로는 코미디 요소로 쓰여 왔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간간이 등장하는 ‘여장’이나, 간혹 학교 행사에서 남학생들이 ‘여장’을 하는 것 등 대부분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근래에 드라마 <녹두전>에 ‘여장’ 소재가 쓰이긴 했지만 이 역시 상황에 따른 주인공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러니 진지하게 여자 옷이 입고 싶어서 입는 남자의 이야기를 보는 건, 어색하게 느껴지거나 거부감이 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왕자와 드레스메이커>라는 작품이 빛이 나는 건,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여장’이든 ‘남장’이든 여성이 남성의복을 입거나 남성이 여성의복을 입는 이야기들은 주로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 혹은 불가피한 상황에 의한 것이었지 의복 자체가 좋아서, 그것이 나를 나답게 해서 입는 경우는 쉽게 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세바스찬은 드레스를 입는 것이 그를 자기답게 만들어준다고 인식한다. 어떤 날은 남자 옷을 입은 왕자이지만, 어떤 날은 여자 옷을 입은 공주가 된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한다.
세바스찬의 이야기에 조금 더 눈이 가긴 하지만, 그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디자이너의 꿈을 지닌 채 세바스찬을 돕는 프랜시스의 이야기는 묵묵히 자신의 목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조용하면서도 큰 존재감을 드러낸다.특히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리기 위해 자신이 만들고 싶지도 않은 옷을 만드는 장면에 담긴 프랜시스의 표정에서 ‘어느 순간 잃어버리게 되는 나다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며, 이후 프랜시스가 보여주는 성장을 통해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주제를 드러내게 된다.
두 사람의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 나는 나다울 때 가장 아름답고 행복하다는 걸 보여주는 사랑스러운 이야기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왜 여자 옷을 입는 거예요?"(재봉사 프랜시스)
"나도 몰라. 가끔 거울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이게 나지. 세바스찬 왕자! 나는 남자 옷을 입고 아버지처럼 보여야 해. 하지만 어떤 날은 그런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아. 그런 날은 내가 정말로… 공주인 것 같아."(왕자 세바스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