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구매해 놓고 짱 박아뒀다가 마침내 읽었다.
114쪽이어서 읽는 데는 얼마 안 걸렸는데, 아마 안 울었으면 더 빨리 읽지 않았을까.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밤 하늘을 배경으로 써 있는 '나'의 글이 나온다.
나에게는 이름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뭔가 의미심장하다,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감동이 클 것 같다, 생각했고..
역시나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긴 뒤 다시 이 장을 펼치자 그만 엉엉 울고 말았던 거예요..
줄거리는,
코끼리 보육원에서 자란 코뿔소 '노든'이 가족과 친구를 잃은 뒤,
연인 '윔보'를 잃고 버려진 알을 보호하던 펭귄 '치쿠'를 만나
그 알을 바다로 데려가기 위한 여정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동물들이 나와서 왠지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이야기일까 예상했는데,
너무 큰 상실들이 이어져서 이거는… 너무한 거 아닌가ㅠㅠ 싶을 정도로 슬펐다.
어느 정도였냐면, 깊이 없이 관람자 눈 찔러서 울게 만드는 영화처럼..
그런 독자 학대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물론 둘은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다.
그런 영화는 캐릭터를 타자화하여 동정하게 하는 불행 포르노가 대다수고,
긴긴밤은 내가 캐릭터가 되어 그들의 슬픔에 한없이 가까워지고 마는 작품이다.)
위대한 사랑과 연대의 여정이라는 말이 적확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들의 다정과 호의를 입고 살아왔나,
또 나는 그것들을 갚기 위해 얼마나 애써야 하나 생각했다.
그건 내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것이겠지만,
친절하게 타인을 대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애정을 나누는 것만으로
충분히 이 생 동안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세상이 아름다워 보여..
그러한 연대 속에 나도 있다는 걸 알고 나면, 우리는 좌절할지언정 포기할 수는 없는 거라고..
정말 단순하지만,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
세상엔 좋은 일, 아름다운 일, 행복한 일만 가득하지 않고
오히려 소중한 걸 잃고, 또 잃고, 그리하여 좌절하고 분노했다가 무기력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살다 보면 또 소중한 것들이 생기고, 날 슬퍼하게 만들었던 것까지 추억할 수 있게 된다.
'흙탕물에도 비치는 별'이란 건 그런 의미라고 생각.
이름은 없지만 노든과 윔보, 치쿠 세 아빠 덕분에 자신이 누군지 알게 된 아기 펭귄이
드디어 홀로 바다를 마주했을 때,
가족을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맞섰던 노든의 아내를
한쪽 눈이 안 보이는 연인을 위해 늘 곁을 지켰던 윔보를
아직 죽지 않은 연인을 뒤로해야 했던 치쿠를
인간에게 복수하려던 목표도 놓고 제 옆을 지켰던 노든을
모두 이해하게 된 아기 펭귄은 이제 단단한 마음을 갖게 되었으니
흙탕물에도 빛나는 별빛을 만날 수 있길, 그래서 자신에게 다가올 수많은 긴긴밤을 지내게 해줄 이야기를 덧붙일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