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점’은 세 여자가 등장한다.
남자와 헤어지고 낙태를 한 화자와 아이를 출산한 예슬, 불임을 갖고 있는 여 산부인과 의사이다. 세 여자는 각자의 상처를 갖고 있고 그 상처는 ‘종점’이라는 장소에서 만나고 어울린다. 종점은 도피처이면서 출발의 의미이다. 버스가 도착함과 동시에 곧 떠나야 하는 곳이 종점이다. 화자는 예슬을 위로하고 또 마지막 장면에서 옷을 훔치려는 의사를 감싸준다. 여자들은 상처를 드러내면서 서로 연대를 하고, 화합을 한다.
‘봄비’는 아프고 슬픈 이야기다.
희영은 예전에 갑상선 수술로 인한 목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 스카프를 하고 다녔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드러나지 않은 삶의 상처가 숨겨져 있다가 불거져 나오는 장면을 만나게 된다. 치매 시어머니를 모시는 며느리는 겉으로는 효부여서 가정의 달에 표창을 받고 여기저기 불려다니는 유명인사지만, 복지공무원이 상담차 찾았을 때는 시모에게 심한 욕설로 폭력을 가하는 이중인격적 면모를 보인다. 또한, 상우의 친구 창수는 교통사고로 하반신 불구가 되는데, 그를 보살피고 사랑하던 여자가 어느 날 떠나버리자 결국 자살해버린다.
봄날 내리는 봄비는 따사롭고 평온해 보이지만, 삶의 많은 애환과 슬픔을 애도하는 듯 보인다.
‘비린내’는 항운노조에서 벌어지는 비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비린내는 생선에서 풍기기도 하지만, ‘비리’에도 배어 있다. 비늘을 떨어내고 냄새 좋은 향수를 아무리 뿌려도 그 냄새를 감출 수 없듯이, 명작을 닮은 그림으로 감추어도 비밀창고는 탄로나 부정행위는 적발된다. 화자는 부도덕한 현실에서 도피하듯 화월장으로 가지만, 일시적 위로는 얻을지언정 진정한 마음의 위로를 얻지도 못하고 비린내를 씻지는 못한다.
한경화의 소설들에서는 인물들이 떠나거나 죽는다. 그것은 심리적 억압을 견디지 못한 도피일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인간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따뜻하고 작은 목소리로 얘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