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번의 획에 모든 걸 담아봐, 하고 삼촌은 말했다.
네가 경험한 모든 것이 한 번의 획에 필요하다고 생각해봐. 자연, 너를 키운 사람, 기르다 죽은 개, 네가 먹어온 음식들, 걸어 다닌 길들…… 그 모든 게 네 속에 있다고. 네가 쥔 붓을 통과해 한 획을 긋는 사람은, 바로 그 풍만한 경험과 감정과 힘을 가진 사람이라고.
내가 풍만한 경험과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므로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처음 호흡을 참으며 선 하나를 그었을 때, 내 몸속에 미처 몰랐던 공간이 있었던 것을 알았다. 그 안에 숱한 요철과 구멍들이 울퉁불퉁하게 일그러져 있었던 것을 알았다. 잠자코 선을 그어가는 동안, 생각지 못했던 사소한 일들이 떠올랐다가 이내 침묵에 씻겨 사라졌다. 어머니가 깊은 밤 식탁에서 우는 것을 몰래 지켜보았던 기억. 화장실 문을 잠그고 김 서린 거울에 왼손으로 바보, 병신이라고 쓰던 기억. 마늘을 까다가 매운 손으로 눈을 훔쳤을 때 어머니의 거친 손바닥이 이끄는 대로 대야에 얼굴을 박고, 차가운 물속에서 처음 두 눈을 껌벅이던 기억. pp5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