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30대에 꾸는 꿈
경험이 있는 사람은 삶이 사실은 장거리 경주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 경주에서는 튼튼한 신체와 무딘 정신이라는 자산을 가진 사람이 앞서가게 되어 있지요. 무딘 정신은 끈기를 갖고 경주를 완주하는 데 꼭 필요합니다. 젊은이들을 판단하고 이 사회의 미래를 위해 그들을 선별해야 할 임무를 맡은 우리는 이런 진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무감각, 무관심, 평범한, 무지를 가진 예리하지 않은 학생을 진급시켜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라는 목적에 적합한 인간을 만드는 이런 무능력을 높이 평가해야만 합니다. (p391)

 

학교의 교사들 사이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 선생은 자신의 철학을 이렇게 드러냈다. 무심하고, 무감하고, 무관심하게 사는 사람이 경쟁력 있고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라는 거다. 사실 나의 경험으로 봐도 이건 거의 맞는 말 같다. 특이하고, 자유롭고, 비판적이고, 예민하면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다.

나는 작가가 이런 세상을 얘기하면서 왜 학교문제를 소재로 삼았을까? 궁금했다.
아마 우리 인간의 시간 속에 가장 예민하고 자유로운 정신을 치열하게 앓는 시기가 청소년기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시기의 아이들이 학교라는 제도 속에서 로보트처럼 만들어지는 과정은, 많은 청소년들을 자살로, 낙오자로, 실패자로 만들고 있다. 따라서 학교라는 공간은 우리사회의 부조리를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아이들을 통해 극단적으로 조명해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드레아 선생은 학창시절 지적욕구와 탐험심이 거세된체 위선이라는 것을 느끼면서도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선생이다. 가슴 속에는 고뇌가 가득찬 체, 사회에 부분적으로 적응에 성공한 사람.

자신의 '인간성'과 '진실'을 지키는 것, 세상의 부패와 부조리와는 동화되거나 타협할 수 없는 정신을 갖고 있었기에 안드레아 선생은 학생들에게 지지받지 않았나 생각된다. 학생들은 선생을 보면서 인류의 조그마한 진실과 희망을 발견햇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안드레아 선생이 학생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것은 좀 현실성이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좋은 선생,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학생들이 좋아하지는 않잖아요. 현실에서는 오히려 '바보취급'당하기도 하구요. 너무 비관적인가?)

안드레아 선생은 그나마 양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어른들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그야말로 이 험난한 세상의 '생존자'이다. 위선과 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고뇌하는, 도저히 무감해지지 못하는, 그렇다고 세상을 등지지도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생존자. 그래서 그는 자살보다는 일상의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경계의 삶을 살고 있는 자의 숙명이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