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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님의 서재
  •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 안바다
  • 13,500원 (10%750)
  • 2020-09-18
  • : 169


게을러지기 전에 눈 뜨자마자 산책 나갈 채비를 했다.

간단한 세수와 양치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었다.

표지가 이뻐서 손에 잡힌 책 한 권을 들고 후다닥 나왔다.

나무와 나무 사이 흙길을 거칠게 지나

시원하고 상쾌한 하루치 공기를 단숨에 먹었다.






아무 페이지나 랜덤으로 펼쳤는데 이건

읽다가 할 일이 있어서 잠시 덮을 그런 책이 아니라는 feel이 왔고,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을 만나기 전

내가 좋아하는 글레이즈드 라떼를 곁들이기 위해

곧장 카페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결과적으로는

한정된 그 공간 속에서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저 밑 깊숙 - 한 대화를

얼굴도 모르는 안바다 작가와

무한정 얘기할 수 있었다.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 에세이

- 저자 소개

안바다 독문학, 국문학, 문예창작학을 전공하고

낮엔 문학을 가르치고, 밤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

문학 외에도 미술, 음악, 사진, 영화 등

다양한 예술 장르, 구애받지 않는 글쓰기 형식으로

문장이 줄 수 있는 즐거움과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시도하는 사람.

제2회 브런치북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사람.

「사랑에 대한 어떤 생각」




공간이 협소하다고

우리의 상상력마저 협소해지는 건 아니다.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안바다 에세이 본문 중에서

하지만 내가 현관에서 더 반했던 문장은 따로 있다.

책 뒷표지에 떡하니 적혀있는 문장. 아주 강렬하다.

사마르칸트의 예배당 입구처럼 신비롭진 않지만

현관은 자신의 언어를 가진 공간이 될 수 있었다.

자아A의 손을 들어준 아내지만 싫지 않은지

퇴근 후 현관에 들어서며 은은한 향기에 대해 물었다.

'오후 노을, 바람을 타고'라는 이름이 붙은 향기라고 설명해 주었다.

조향사의 설명처럼 현관에서

오후 노을, 바람을 탄 향기가 나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아내의 표정만큼은 노을처럼 따뜻했다.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안바다 에세이 본문 중에서

작가는 향기를 맡는 아내의 그때의 표정을 포착해

기억에 담았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지금보다 이해의 깊이와 경험의 넓이가 부족했던 그때,

아내와 심하게 다투었다.

대단한 일로 다툰 건 아니었다.

언제나 그렇듯, 지금은 잘 기억나지도 않는 사소한 일로,

하지만 사소하게 취급하면 안 되는 일로 다투었다.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안바다 에세이 본문 중에서

책속의 남편은 깨우친 자이다.

사소한 일을 결코 사소하게 취급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안바다 작가 최고.

리빙룸 Living room

그러니까 '삶의 공간'은 언제부턴가

죽음의 공간이 되었다.

한 철학자의 말처럼

"정보는 더욱 많고 의미는 더욱 적은 세계" 에서

우리는 잠들어 있었다.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안바다 에세이 본문 중에서

저자는 한 철학자의 말을 빌려

대중의 거실을 단호박처럼 단정지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린 날 언젠가,

잠을 자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밤새도록 누워 있었다.

긴 울음과 슬픔, 그리고

무기력이 고인 베개와 이불.

어떤 분투도 어떤 의지도 가질 수 없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불과 베개에

몸을 맡기는 것뿐.

어두운 시간은 흐르는 것도

완전히 멈춘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찰랑거리듯 방 안 가득 고여 있었다.

나는 어둠의 가장자리에 놓인

허름하고 눅눅한 이부자리에 누워

이 슬픔의 끝에 가닿기를 바랐다.

아무튼, 나는 버텼다.

그런데 만약 내게 얼굴과 온몸을 파묻을 수 있는

베개와 이불이 없었다면

하룻밤이라는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을까.

잠들어 있는 동안

최소한 그만큼의 크기와 시간은

고통받지 않을 수 있었다.

간혹 자고 일어나면

조금 전의 슬픔과 고통이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안바다 에세이 본문 중에서

어린 날에만 국한되는 얘긴 아닌 것 같다.

언젠가 누구나 그럴 수 있기에

그런 나를 받아주는 침실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무엇보다 작가가 겪었던 어린 날을

나는 최근에 겪었기 때문일까.

침실 여행은 먼훗날에도 하고 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너무나 넓은 공간은,

공간이 충분히 있지 않을 때보다

우리들을 훨씬 더 질식시킨다.

남미의 대초원에서 말로 끝없이 질주한 다음에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바로 과도한 질주와 과도한 자유

또 그럼에도 변함없는 그 지평선 때문에

우리들이 절망적으로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넓은 초원은 내게는,

다른 감옥들보다 크기는 해도

감옥의 모습을 띄었다.'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안바다 에세이 본문 중에서

_가스통 바슐라르, 곽광수 옮김, 『공간의 시학』,동문선,2003,3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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