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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entminority님의 서재

나는 추리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읽을 때야 궁금해서 마구 내달리게 되지만 다 읽고서 "흠.. 뭐야 그랬던 거군."하고 김이 팍 새는 느낌이 싫어서이다.

제아무리 멋진 플롯에 현기증 날 것 같은 이야기라도 일단 추리 소설 형식이라는 것이 그런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어찌 되었건 결국 범인은 등장 인물 중의 한 명이지 않느냔 말이다.(혹은 다수)

라는 바보같은 이유까지 스스로 생각해 내었을 정도.

어찌됐건,

여러가지 이유로 전부터 읽고 싶었던 레이먼드 챈들러였지만 역시나 여러가지 이유로 선뜻 손이 가지 않았었는데, 우연히 서평을 보았다가 도박하는 기분으로 읽게 되었다.

결과를 말하자면,

뿌연 잿빛 안개가 책갈피 사이마다 서려 있는 느낌이 은근히 좋다. 건조한 문체와 시점이 그냥 텍스트를 읽기만 하는데도 뭔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꼭꼭 되새김질하게 되며, 60년도 훨씬 전에 태어난 늙은 히어로일 터인 필립 말로도 퇴색된 느낌이 거의 없다.

그리고 읽고 나서의 "뭐야 그랬던 거군"이 없었다. 대신 자꾸 되새김질하고 싶은 잿빛의 뭔가가 있었다.

도박은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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