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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우 없는 세계
  • 백온유
  • 13,500원 (10%750)
  • 2023-03-30
  • : 4,993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창비 가제본 서평단]

『경우 없는 세계』
백온유 | 장편소설
창비 | 출판

【이 세계에는 나의 안위를 걱정하는 존재가 없다는 것.(p.46 )】

Q. "가출해본 적 있어?"
A. 없다.

3월 20일 『경우 없는 세계』를 읽기 시작한 날, 저녁 먹는 자리에서 가족에게 물었다. 엄마는 "없지."라고 말했고, 남동생은 【"가출은 어차피 집으로 돌아오게 되어있어."】라고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는 것처럼 답했다. 조금 늦게 답한 아빠도 가출한 적이 없다고 했다. 집에 늦게 들어온 적은 있어도 가출해본 적이 없었다. 셋이 동시에 묻는 건 "왜? 집 나가고 싶어?"였다. 맥락 없는 질문을 던진 것은 나였지만 집 나갈 각오는 없었어서 "가출 청소년 소설을 읽고 있어서. 그리고 가출은 돈이 있어야지."라며 말을 흐렸다. 어른인지 오래됐고 집을 나가도 괜찮은 나이였다. 하지만 혼자 살 생각은 아직 없고, 준비가 부족했다. 남동생은 혼자 산다면 직접 요리해서 밥 먹을 거라고 했다. 동생 성격에는 정말 실컷 요리해서 먹을 것 같았다. 오래 집밖에 있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경우 없는 세계』의 주인공들을 보면서 편하게 등을 늬우고 잠에 들 집이 존재한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나도 누군가에게 경우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집에 잘 있고 싶은 소설>
있을 법한 이야기라서 '가출 청소년' 소재의 성장소설이란 게 근심스러웠다. ​그런 느낌을 글로 남긴 적이 있다.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다.'라고. 집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멀쩡하고 편한 집을 버리고 나온다는 가출을 "미쳤어?"라고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안정과 안전하다고 착각했던 집을 버리고 나오면 약해지기 마련이다. 가출을 선택하게 만드는 세상이 미친 것인지, 아니면 사람이 미친 것인지.

가출(家出)의 유의어가 탈가(脫家)인데, 일정한 조건이나 환경, 구속 따위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자기 집에서 나간다는 의미였다.
겨울 한기를 견디고 사는 주인공'인수'는 집을 나갔다. 겨울 추위를 느끼면 입술, 손톱, 발톱이 파래지는 것을 바라보듯. 그가 발견한 가출청소년'이호'를 통해 겹쳐지는 '인수'의 과거 경험을 알게 될수록 마음이 파래져만 갔다. 그는 가진 것이 없을수록 포기하는 것이 늘었다. PC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잠은 출입이 쉬운 화장실 같은 곳에서 잤다. 같은 가출청소년인 '성연'과 '경우'를 만났다. 타인에게 의지하고, 가난, 질투, 절망, 모욕, 공허와 고독도 많이 겪는다. 인수는 경우를 도덕적 기준으로 의식하고 거슬려하지만 도움 받는다.

58쪽에서 '멀미'라는 단어에 눈길이 닿았다. 삶에 있어서 멀미가 안 날 수가 없었다.

가출 생활을 유지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방법을 모색하던 아이들은 점점 어두운 생계형 범죄로 내몰렸다. 절도, 일부러 차에 뛰어들어서 합의금으로 돈을 버는 자해공갈, 조건만남 등. 없는 돈은 인수를 잠깐 다시 집에 몰래 돌아가게 만들었다. 자신의 빈자리를 낯선 고양이가 집에서 차지하고 있었다.

가출 뭔지 아는 어른이라서 아니까 가출청소년에게 당연히 호의 베푼다?! 가출청소년 만났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맞을지 관계 생각,
세상 위험에 노출되고 보호되어야 할 가출청소년들을 생각하며. 가출에 의한 무기력감에 상처입은 주인공들로 불편함 접하고, 왜 제목이 『경우 없는 세계』가 되었어야 했는지 사회현실과 연결해보면서 재인하는 독서를 경험하길 바란다. 집과 사람으로 느끼는 추위보다 따뜻함을 맞이하길 바라며

【p.32 가출이라는 단어에는 투쟁심이나 반항심 같은, 결연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는 것은 회피나 은신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았다.】


+귀신에 대한 표현, 인수의 상상 이야기 묘사가 좋았다.

*백온유 (白溫柔)
1993년 경북 영덕에서 태어났다. 장편소설 『유원』 『페퍼민트』 등이 있다. 이번엔 가족의 울타리를 완전히 벗어난 거리의 아이들에 주목한다. 한층 정교해진 내면 묘사와 생생한 에피소드,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돋보이며 가출청소년이 겪는 처절한 방황과 고독, 성장의 서사를 놀라운 흡인력으로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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