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hoho
  • 토성의 고리
  • W. G. 제발트
  • 14,400원 (10%800)
  • 2019-03-22
  • : 2,911

이야기는 병원에 입원한 화자로부터 시작된다. 영국 동부의 써퍽주로 도보여행을 떠난 그는 여행 중 만난 과거의 흔적들에게서 강렬한 충격을 받았고 몸져눕게 된다. 그리고 퇴원 후 브라운을 연구하며 도보여행을 다시 기록한다. 기록의 순서는 기본적으로 여행지를 따르지만 그 안에 감상은 순서가 없다. 마치 주인공도 길을 헤매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본문 안에는 없지만, 맨 앞 목차에 소제목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을 나침반 삼아 읽어내려 갔다. 책의 제목인 토성의 고리처럼 즉, 주인공은 여행을 하며 파괴된 결과 남게 된 파편들을 만난다. 그것은 주로 전쟁이나 침략,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서술을 통해 허망함이 남은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전해지는데, 이래서 주인공이 병을 얻게 됐나 싶을 정도로 참혹하다. 책의 진행에서 특이한 점은 구체적인 날짜와 사진 덕분에 역사서나 르포인가 싶기도 했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서술과 연결고리는 어떻게 보면 환상적인 면도 갖고 있고, 등장인물들의 심리가 가상이지만 상세하게 서술된다는 점에서 소설의 성격도 가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역은 한 곳일지라도 시간이나 사건은 어떤 지층을 갖게 되는데, 인과관계가 있기도 하고 전혀 다르기도 해서 그 부분이 흥미로웠다. 작가는 독일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하기도 했는데,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모순 그리고 흔적들을 발견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었나 싶다. 그 안에서도 공허함에 대한 분위기가 지배적인데 작가가 의견도 그랬으리라 추측해본다. 그리고 풍부한 지식으로 어우러진 글과 통찰력 가득한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생각하니, 식민지나 제국주의, 2차세계대전에 관련된 글들이 와닿았는데, 어떤 흔적이 어떤 공허함을 남겼는지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 우리가 지각하는 것은 무지의 심연 속에서 짙은 그림자 안에 침잠해 있는 세계의 건물 속에서 드문드문 나타나는 빛의 조각들뿐이라는 것이다. 29쪽

- 한 시대 전체가 끝나는 건 한순간의 일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43쪽

- 이 원칙에 따르면 미래는 오로지 우리가 현재 지닌 두려움과 희망의 형태로만 현실성을 지니며, 과거는 기억으로만 존재한다. 182쪽

 

* 이 서평은 서평단 참여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