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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몽님의 서재
  •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박준
  • 12,600원 (10%700)
  • 2017-07-01
  • : 27,838
시인의 산문. 흔히 겪을 수 있는 에피소드에서 의미를 찾고 짤막한 이야기들 속에서 아! 하는 통찰감을 느끼게 해줌. 여느 다른 작가들 처럼 미식에도 관심이 많아 자주 등장함. 작가도 이런 상실에 대해 이런 일들에 대해 그렇게 느껴주다니함께 울어주는 것 같고 동감해주는 것 같음.



남들이 다 하는 일은
나도 다 하고 살겠다며
다짐했던 날들이 있었다.
어느 밝은 시절을 스스로 등지고
걷지않아도 될 걸음을
재촉하던 때가 있었다는 뜻이다.


작은 일들은 작은 일로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않으면 정말 큰일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인상 깊게 남아있는 곳은 유난히 노승들이 많이 계시던 경상도 산골의 한 작은 절이었다. 승복을 입지 않은 스님도 계셨고 새벽 예불에 참석하지 않는 분도 계셨다. 그 절의 주지스님께 노승들의 하루 일과를 묻자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예불,참선,독경 같은 일과로부터 모두 자유롭다는 것이었다.
배가 고플 때 먹고, 고단할 때 몸을 뉘이고, 졸음이 오면 애써 쫓아내지 않고 잠이 드는 것. 어쩌면 이것이 인간으로서 성취할 수 있는 해탈과 가장 가까이 자리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그렇게 참지 않는다면 조금 덜 욕망할 수 있을테니까.

여행을 가면 꼭 자던 숙소에서만 자고 가본적 있는 식당에서만 밥을 먹고 같은 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낯선 곳에서 구태여 익숙함을 찾아내 그 감정을 즐기던 때였다. 하지만 이후 점점 새로운 여행의취향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 새로운 취향은 음식에 관한 것이었다. 섬진강에 봄이 오면 하동의 재첩국과 수박 향이 은은히 번지는 구례의 은어를 접했다. 여름 신안의 민어와 흑산도의 홍어, 가을에는 포항의 과메기와 서천의 박대를 즐겼다. 가을 영월의 곤드레와 수안보의 꿩고기와 서귀포의 방어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러한 미각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 많은 여행을 할 동기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역으로 나는 타인에게 별생각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조금 따뜻하고 예쁘게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오늘만 하더라도 아침 업무회의 시간에 '전략' '전멸' 같이 알고보면 끔찍한 뜻의 전쟁용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썼고 점심에는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지인에게 "언제 밥 먹자"라는 진부한 말을 했으며 저녁부터는 혼자 있느라 누군가에게 말을 할 기회가 없었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살아 남는다. 꼭 나처럼 타인의 말을 습관적으로 기억해두는 버릇이 없다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마음에 꽤나 많은 말을 쌓아두고 지낸다. 어떤 말은 두렵고 어떤 말은 반갑고 어떤 말은 여전히 아플 것이며 또 어떤 말은 설렘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나는 이 사실에서도 다른 사람의 인연을 생각한다. 관계가 원만할 때는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한 사람이 부족하면 남은 한 사람이 채우면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계가 끝나고 나면 그간 서로 나누었던 마음의 크기와 온도 같은 것을 가늠해보게 된다.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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