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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훈님의 서재
  • 여름비 이야기
  • 기시 유스케
  • 16,020원 (10%890)
  • 2025-09-26
  • : 2,195


나는 호러물을 애정하는 편은 아니다.
뭐랄까 괜히 내 돈과 시간을 들여 찝찝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맞는가라는 생각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저런 다양한 책들을 올해 읽어나가면서, 마냥 행복한 감정을 남기는 작품이 아니라도 부의 감정에서 부의 감정을 일상 생활에서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삶으로 나아가야겠다는 반면교사反面敎師 의 가르침을 얻을 수도 있다라는 것을 배웠다. 물론 인간이라는 종과 참혹한 현실에 네거티브한 기분이 며칠 갈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로 호러도 제대로 읽어보고 싶었다.
그러다 좋은 기회로 #여름비이야기 (#기시유스케 씀 #비채 출판)를 읽게 되었다. 나는 당연히🙈 잘 몰랐지만 호러계에서 아주 유명한, 말 그대로 호러 장인으로 정평난 기시 유스케라는 대가의 작품으로 선입견없이 첫호러를 마주하게 된 것은 호러입문에 가장 최상의 상태가 아닐까.

<여름비 이야기>는 기시 유스케가 10년에 걸쳐 쓴 ‘비’시리즈의 두번째 작품으로 ‘5월의 어둠‘, ’보쿠토 기담‘, ’버섯‘ 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5월의 어둠‘은 치매를 겪고있는, 아내가 말다툼을 한 이후로 집을 나갔지만 왜 다퉜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퇴직교사 사쿠타에게 장마와 함께 옛제자 나오가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오빠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 비밀이 오빠가 직접 지은 하이쿠에 있을 것이라며 교사시절 하이쿠부 담당교사였던 사쿠타를 찾아온 것이다.
사쿠타는 치매임에도 열 편이 넘는 하이쿠를 전부 기억하며 전문가다운 해석을 보여준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보쿠토 기담>은 193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서양문화를 탐미하고 향락에 빠져사는, 그 시대의 젊은층을 대변하는 요시타케가 주인공이다. 그는 꿈에서 검은 나비가 계속 나타나서 기이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영력이 상당한 스님이 그 나비가 이끄는 곳이 지옥이라며 그 나비를 물리쳐야 한다고 강하게 말한다. 겁을 먹는 요시는 그 대사를 집에 모셔 하라는대로 따른다. 하지만 본성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나비를 절대로 따라가지 마라는 대사의 말을 뒤로하고 나비를 따라 누각에 도착한다. 누각에서 만난 7명의 오이란 중에서 하나를 (잘)선택해야 죽음을 피해갈 수 있다는 대사의 말에 그는 단서를 잡으려 식은땀을 흘리는데…

마지막 이야기 <버섯>은 세 편 중 가장 재밌게(라는 표현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본 작품이다.

할아버지이게 받은 유산으로 아이에게 자연과 함께한 삶을 선물해주겠다는 이유로 고급별장지에 거처를 마련한 스기히라 가정의 이야기이다. 자신은 버섯을 사랑하는 동화작가인 아내는 아이이게 도시에서 최고의 교육을 해주고 싶어하고 스기히라와 말다툼을 하고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간다. 메신저로 연락은 된다는 것이 다행일까.
그런데 놀라운 일이 발생한다. 마당 잔디밭에서 버섯이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점점 버섯이 퍼져가서 온 잔디를, 온 집안을 뒤덮는다. 이것을 기록에 남기기 위해 폰 카메라를 켜는 순간 깜짝 놀란다. 카메라에는 보이지 않는 것. 당연하게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가짜같지 않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 신기하고도 소름돋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도움을 청한 곳은 ‘산악신앙’과 정신과 전문의이자 심리학자, 사촌형 두 곳이다.
그리고 사라진 딸이 걱정되어 사설탐정을 붙인 장모까지 나타나 결국 버섯의 실마리는 풀린다.
아내와 아이의 행방은?

스포일러를 하지않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문장 밑줄을 보여주고 싶어도 보고나서 친 밑줄은 의미심장한 의도가 담겨있을 수 밖에 없어 문장도 공유하지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런 정보 없이 고스란히 느끼는 것이 이 책을 가장 잘!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방법이리라. 호러 문외한인 나에게도 이 책은 확실히 재미있었다. 하이쿠, 나비, 버섯에 대한 방대한 지식이 읽으면서 감탄스럽다. 대체 작가는 100페이지 남짓한 이야기를 준비하느라 얼마나 공부한 것일까. 적당히 알아서는 절대로 풀어낼 수 없는 촘촘한 스토리텔링이 압권이다. 모든 페이지의 내용이 설득력이 있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반전에 그 이상의 충격을 받게 한다. 육성으로 ”?“가 터져나온다. 호러라는 단어로 가두기에는 그 안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촘촘하게 담겨있다.
그 촘촘한 모든 것들이 내 안을 빈틈없이 채워 아쉬움 없는 독서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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