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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훈님의 서재
  • 끝맛
  • 다리아 라벨
  • 17,550원 (10%970)
  • 2025-09-25
  • : 320
인생에 후회없는 선택이나 행동이 있을까.
나는 일말의 후회도 없는 행동은 없다고 생각한다.
상황도 변하고, 나 스스로도 변하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때 이럴걸, 그러지말걸 같은 후회는 어쩔 수 없이 생긴다. 우리 뇌 자체가 같은 것을 자꾸 생각하면 부정적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어져있다고 하지 않는가.
후회하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계속 곱씹지 않게 완전히 까먹는 것인데 그게 어디 쉽나.

#끝맛 (#다리아라벨 씀 #클레이하우스 출판)의 주인공 콘스탄틴도 그런 후회의 순간이 있다.
아버지와의 마지막일지 몰랐던 마지막 대화에서 진심이 아닌 모진 말을 뱉었던 것을 잊지 못하는 콘스탄틴은 어릴 적 부터 말 못할 특별한 능력이 하나 있다.
엄마에게 말했더니 정신과 치료까지 받게했던 그 능력.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끝맛’이다.
끝맛은 이미 죽은 사람이 먹었던 음식의 맛이 콘스탄틴의 입안에서 느껴지는 것으로, 이 끝맛은 맛으로 끝이 아니라 그 맛을 재현해 낸다면 죽은자를 불러낼 수 있다.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던 바에서 손님에게 끝맛이 나는 칵테일을 건냈더니 손님과 죽은 아내의 재회가 이루어졌다. 이토록 콘스탄틴의 후회와 찰떡인 능력이 또 있을까.

우리 문화권에서는 생소한 음식들의 끝맛이 미식가가 소개해 주는 것 처럼 자세하게 적혀져있다. 그 음식들의 맛을 상상하며 맛 표현을 익히는 재미도 쏠쏠하다. ‘비빔인간’ 에드워드 리 셰프가 “마지막 페이지까지 맛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이승과 저승을 잇는 이야기이다 보니 저승세계의 설정도 담겨있고, 이승에 갖힌 영혼들이 악령으로 변해간다는 익숙한 설정도 읽는 맛을 더해주는 흥미로운 요소이다.

이승과 저승, 음식, 끝맛이라는 능력, 두 세계를 잇는 끝맛이라는 능력, 주인공의 후회까지. 읽을거리가 매우 풍성하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비빔밥 한그릇 같달까?
물론 다 읽고나면 잘 먹었다는 포만감 같은 만족감이 밀려오지만 저승과 후회하는 단어가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게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면 온통 후회 뿐이다.
좀 더 잘해줄 걸, 이때 이럴걸 저때 저럴걸 이거 부탁했을 때 해줄걸, 좀 더 찾아갈 걸, 좀 더 같이 시간 보낼 걸 같은 후회들이 슬플 때는 물론 행복한 순간에도 불현듯 찾아온다. 그래서 그 미안함에 최대한 오래 기억하고 잊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끝맛>에서는 이것마저 과연 옳은 것인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안식을 취하는 것이 영혼들이 바라는 유일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을때면 서운함마저 든다. 머무는 세상이 달라져버렸다고 이제 잊지않고 기억하려하고 그렇게 내 곁에 두려는 것이 욕심인가 싶다.
나를 위해야 할지, 그 사람을 위해야 할지 답은 정해져 있지만, 내가 해온 것이 정말로 그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결국 보내주는 것이, 놓아주는 것이, 잊어주는 것이 결국 나에게도, 남은 사람들에게도 바람직한 일임을 아픔을 겪은지 꽤 지난 사람들을 통해서 듣게 된다.
들어도 그것이 맞는 말임을, 알려준 사람만큼의 시간을 들여야 깨닫겠지만 말이다.

모든 기억을 평생 가지고 살아간다면 너무나 괴로울 것이다. 심지어 우리 뇌는 판단을 할 때 사용하는 경험은 평생동안 쌓아올린 경험이 아닌 최근의 경험만 이용한다. 에너지 효율을 위해서이다.

인간의 뇌가 이렇게 설계된 것도, 죽은 이들이 평안만을 바리는 것도 결국은 남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어떤 상황에 있는지에 따라 많이 다르게 읽혀질 책이다.
엄청 슬픈 책이 아님에도 슬프게 읽힐 수 있다.
나 또한 그러했다.

나도, 떠나간 소중한 사람도.
우리 스스로를 위해 끊어낼 용기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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