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황경란의 소설집 『사람들』 중 <사람들>
(이 책을 다 읽지 않고 단편들을 읽어가며 리뷰를 쓸 예정이다. 일종의 읽기 과정의 리뷰.)
첫 문장: 부장은 륜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마지막 문장: 다음 날 신문에는 네 번째 ‘사람들’이 아닌 ‘사고, 연재를 마치며’가 실렸고 그날 부장이 대신해 쓴 마지막 문장은 “륜이 말하고 내가 씀”이었다.
신문사 부장의 내면을 중심으로 하여 ‘륜’이라는 부하 기자를 관찰하는 시선으로 쓰여졌다. 륜은 2년차에 사회면 연재 기사를 쓰게 되었다. 그는 주제를 ‘사람들’로 잡았다. 시련을 극복한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어 그들을 기억해 한다는 기획의도에 부장은 미친놈이라 생각했지만 ‘사람들’ 이라는 점 하나가 맘에 들어 허락한다. “신문은 일기장이 아니야” “그게 문제죠. 신문에는 선과 악,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밖에 없잖아요” 부장은 륜의 ‘은유’와 ‘연민, 환멸을 닮은 흔해 빠진 단어들’을 잘라낸다.
륜이 연재를 쓴 지 얼마 안 되어 갑자기 일본에 ‘시모토리’를 만나기 위해 떠나야 한다고 연락한다. ‘강제전향 장기수’ 시모토리. 그는 죽었는데 륜은 만나야 한다고 한다. 부장은 허락하고 그를 대신해 연재를 쓰려고 준비하면서 륜을 생각한다. 그의 행태, 모양, 그의 글 스타일, 작업 스타일은 생각나는데 정작 륜의 얼굴이 떠올려지지 않는다. 그러다.....
이 글은 ‘륜’과 강제전향 장기수 시모토리, 한 줄로만 설명된 외국인 노동자 칸만 이름이 있다. 다른 이들은 이름이 없다. 이미지도 없다. 부장은 륜의 얼굴을 떠올리지 못한다. 그러니 독자도 이미지를 그릴 수 없다. 부장의 인물도, 주변 인물들도 머릿속에서 이미지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이것은 작가의 의도가 아닌가 싶다. 사건은 있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는, 일은 있는데 그 속에 사람이 없는 느낌이다.
‘륜’은 신문에 인간미를 나타내려 한다. 부장도 젊은 시절 그랬다. 그러나 지금, 부장은 그의 인간미 문장들을 자른다. 신문! 신문과 사람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 난 신문에서 무엇을 읽는가? 사회면에서 무엇을 찾는가? ‘륜’은 어떤 기사를 쓴 것인가? 100자의 생활정보를 어떻게 쓴 것일까? 그의 기사를 읽으면 나에겐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
부장은 륜을 대신 해 글을 쓰기 위해 그의 컴퓨터를 켠다. 륜이 분류한 ‘사람들’의 기준은 ‘사람에 의한 시련’, ‘외부 충격에 의한 시련’. 사람을 이렇게도 분류할 수 있구나. 그가 찾은 ‘사람들’이 궁금하다.
파일 맨 밑의 문장. “과거를 잊어버린 사람들은 ‘사람에 의한 시련’과 함께 ‘외부 충격에 의한 시련’을 모두 가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그래서, 모든 시련은 여기서 출발한다.” 이 말은 충격이었다. 그야말로 나에겐 뉴스였다.
륜은 술을 먹으면 “그게요 선배” 라고 말한다. 뭔가를 설명하려는 륜. 연재 기사를 점검 받을 때 “마지막 문장은 진실이거든요” 라며 부장에게 마지막 문장을 살려 달려고 말한다. 그러나 부장은 륜이 말하는 진실은 찾아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부장은 륜에게 열정을 향한 집중이 있음을 안다. 들썩이지 않고 끓을 때 까지 절대 한 눈 팔지 않는 륜을 마음에 둔다. 그리고 그에게서 신입 때의 지신을 본다. “제 기사는 그냥 기사가 아니에요. 그건, 그건, 사랑이에요.”
진실을 말하려는 륜과 사랑을 말하려는 부장. 륜은 진실을 찾아 떠났고, 부장은 그를 대신 해 글을 쓴다. 어쩜 그것은 부장의 사랑이 아닐까 한다.
이 글은 단편임에도 장편의 서사를 쓰기 위한 발단처럼 보인다. 부장과 륜의 짧은 사연들과 문장은 씨실과 날실의 교차로 소설의 면을 채운다. 멈추어 생각하기에 녹녹치 않은 깊이가 있다. 사연과 문장이 생각과 함께 올올이 살아난다.
p20
“블라인드가 그늘을 만들어 냈다. ‘사람들’이 컴퓨터 화면 위로 도드라졌다”
“빛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빛이 아니라 어둠이었다.”
블라인드.
회전의자.
부장이 젊은 시절 썼다는 ‘오늘의 소사’ 문학과 연결한 연재 기사, 넬슨 만델라가 나딘 고디머와 만나는 상상의 글과 륜의 시모토리 인터뷰를 상상.
‘가난은 추하다’ 라는 글을 작가에 대한 비판과 그 문장에 대한 미처 마무리 되지 않은 륜의 생각.
진실 된 역사를 찾는 고등학생들, “무조건 끼워 넣는 거죠. 맞을 거라 생각하면서요.” “침묵은……, 침묵은 자칫 진실처럼 보이니까요” “그냥… 지금처럼, 찾고 싶어요.”
생각할 것들이 수두룩하다. 넓게, 깊게 생각해 볼 것들이다.
부장이 쓴 “유명 작가의 광고와 경제” 칼럼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나는 황경란 작가를 생각해 보았다. 그의 말을 빌려 이 작품을 말하자면 이 작품은 ‘보편적’이지 않다. 황경란 작가의 <사람들>은 평범하지 않다.
<사람들>은 단편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장편을 여는 문으로 보여진다.
생각해 보니 ‘사람들’ 이야기는 세상 모든 이야기이지 않은가. 끝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사람들은 끝없는 넓이와 깊이의 장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