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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bel님의 서재
  • 선의 법칙
  • 편혜영
  • 10,800원 (10%600)
  • 2015-06-15
  • : 1,583


 

편혜영의 새 장편이다. 새 책을 읽기 전, 기억을 조금 더듬고 나니 예전에 읽었던 『재와 빨강』이 떠올랐다. 이미지가 제목과 참 어울리는, 딱 그만큼 ‘지저분하고 부스러졌으며 빨갛고 뜨거운’ 소재와 내용으로 가득했던 소설이었다. 솔직히 첫 작품집인 『아오이가든』은 읽지 못했다. 잔인하고 끔찍하기로 ‘악명’이 높아 지레 겁먹은 탓이었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꼭 읽을 소설집 리스트에 올라 있다. 그로테스크함이 문제되진 않는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인간의 삶을 그린다는 것에서 읽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편혜영이 그려내는 인간의 이야기는 내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안 좋은 감정들을 자꾸 찔러댄다. 불편할 뿐만 아니라 울고 싶을 정도다. 재미있는 건, 겨우 다 읽고 나면 괜히 시원하다는 것이다. 마치 근질거렸던 걸 잊고 있었는데, 누가 부러 그것을 꼬집은 것처럼?






조금 오그라드는 예찬으로 서두를 시작했다. 그만큼 편혜영 소설이 좋다. 물론 새 장편도 좋았다. 최근의 편혜영 소설을 읽은 누군가는, 더 이상 『아오이가든』과 같은 독특한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는 것에 아쉬워했다. 훨씬 담백해진 소재와 내용, 그래서 밋밋해 보인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바닥으로 떨어진 인간의 삶에 대한 ‘새로운 표현’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는 것에서 아쉬움을 쏟아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표현을 버렸다고 했지만. ‘인간의 삶’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에 의미가 더 있지 않을까. 새 이야기들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현실을 똑바로 마주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숨을 이어나간다. 마치 우리가 지금-현재를 아등바등 살아가듯 말이다.

 






편혜영이 그리는 인간은, 외로울 뿐만 아니라 적의에 가득 차 있고 불안에 빠져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윤세오’와 ‘신기정’ 역시 그렇다. 윤세오는 삶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아빠를 잃는다. 사고도 아닌 자살이었다. 부채를 견디지 못해 가스선을 제 손으로 잘라버린 것이다. 모든 것을 알지 못했던 윤세오는 좌절한다. 그리고 그 좌절을 분노로 돌린다.




교사인 신기정은 자기 반 학생인 원도준과의 트러블로 학교를 나서게 된다. 심지어 배다른 동생은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사체로 발견된다. 동생을 없는 사람 취급했던 신기정은 그제야 동생의 삶에 관심을 두게 되고, 동생의 행적을 찾아 나선다.

 


 신기정은 말없이 누워 있는 동생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니. 동생은 꿈쩍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대답을 들은 기분이었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그렇게 대답했으리라. 

(30p.)



 




신기정의 동생, 신하정이 내뱉는 저 대사는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 그리고 글을 읽고 있는 우리들까지. 모두의 입에서 튀어나올 만한 대사다. 무슨 일이 있었든 예측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가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어쩌다보니.’ 신기정과 윤세오의 행보도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과라고 설명하기엔 둘의 움직임의 동기는 헐거운 부분이 있다. 아버지의 죽음이 빚 독촉과 관련 있을 거라 생각했던 윤세오는 종종 집을 방문했던 이수호를 따라다닌다.

 

 


 윤세오는 그간 이수호의 일정과 행동반경, 출근시간과 귀가시간, 만나는 사람들을 곰꼼히 기록해왔다. 우편물을 이용해 집 전화번호나 생년월일 같은 것을 알아뒀고 가족관계를 유추했다. 식성과 사소한 습관도 알아냈다. 현재 담당하는 채무자가 누구인지, 그의 빚이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런 정보들이 이수호의 행동을 예측하게 하리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상황과 감정은 도무지 알아차릴 수 없었다. 이수호는 자주 윤세오가 짐작 못한 식당에 갔다. 

(129-130p.)


 

 

예측은 빗나간다. 선線은 자꾸 예상했던 방향과는 다른 쪽으로 뻗어나간다. 그런데 그것이 좋거나 나쁘거나 한 쪽으로 치우쳐진 것은 아니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부터 치우쳐져 있지 않으니까. 이수호를 감시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슈퍼마켓에서 일하게 된 윤세오는 마켓에서 일하는 신재형과 김우술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두 사람은 윤세오와는 다른 세계에 속해 있었다. 선의를 가진 인간들의 세계. 그러나 인간이 선량한 존재라는 생각에 취해 있을 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사실도 그들이 일러주었다. 시시한 비아냥거림을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뱉고 실없는 웃음을 터뜨리고 기분 나빠 툴툴대다가도 의기투합하는 걸 보면 인간은 선과 악 같은 구분과 상관없는 존재였다. 

(134-135p.)




윤세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지만, 윤세오를 포함해서 신기정, 이수호, 신하정.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다 선의와 악의 사이에 있는 이들이다. 그것의 의도와 상관없이 말이다. ‘어쩌다가 보니’ 그런 삶에 처한 이들은 목숨을 이어나가기 위해 더 나은 쪽으로, 옳다는 쪽으로, 혹은 그 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그 방향도 선악의 갈림길에서 휘청대면서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엇나간다. 그러나 엇나간 길은 이상하다거나 드라마틱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에야 자기 자리를 알게 된다. 삶이란 것이 원래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말이다.

 



그애가 온 뒤로 엄마와 신기정, 동생의 삶은 제각기 뻗어나갔다. 그 당시도 이상하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동생을 통해, 동생은 온기 없는 가족을 통해, 신기정은 엄마를 통해, 삶은 자주 손쓸 수 없는 방식으로 전개된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을 뿐이다. (2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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