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두근거린다.
신간의 홍수 속에서 쟁쟁한 외국 작가들과 한국 작가들의 묵직한 작품들 속에서
풋풋함이랄까, 패기랄까.
대단하고 훌륭하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더 공감이 가서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소설들이 많은 것 같다.
‘게으른 삶’이라는 조금 달콤한(!) 제목의 이 소설도 괜히 생각나게 하는 몇 가지 구절들이 있다.
이종산 작가의 문체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탁월한 ‘돌려 말하기’ 덕분에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행동을 하는 것인지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주인공 너구리(별명)는 식당이나 애견샵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다. 너구리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 중 참치는(역시 별명이다)
이른바 썸을 타고 있는 관계랄까? ‘좋아한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을 뿐
누구를 만나는지,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무척이나 신경 쓴다.
소설은 계속해서 이 너구리와 참치 사이의 미묘한 감정선의 이동을 보여준다.
젊은이들의 이야기에서 로맨스가 빠질 수는 없는 것 같다.
아무렴- 로맨스가 있기 때문에 음악과 미술이 있고 문학이 있는 것이 아닐까?
청춘의 시기에 다들 한 번씩 겪는 진통이기도 하니까.
예를 들어 이런 구절에서 금방 공감을 하게 된다.
78page
“기다린 적이 있었어?”
참치의 눈이 사나워져 있었다.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기다린 적이 있었냐고? 내가 너를 알게 된 후로 나는 내내 기다리고 있었다. 네가 나에게 말을 걸기를, 내 손을 잡기를, 나를 간절히 원하기를, 사랑한다고 말해주기를, 나에게 영원히 돌아오기를. 그런데 어떻게.
이 소설이 단순하게 두 젊은 남녀의 이야기만 다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요즘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소설 속 인물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갈 수도 있다.
번듯한 직장에 가지지 못해 너구리의 엄마는 ‘이제 그만 놀아’라고 말을 하지만
너구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곤 한다.
아직 꿈을 잃기에는 어린 나이라고들 모두 말을 하지만
너구리는 오히려 ‘나는 꿈이 없는 것 같은데’라고 생각한다.
젊은이라는 인식은 요즘 사회의 시각에서는 미래를 위해 고생도 사서하는,
꿈이라는 이름으로 현재의 행복을 눈감을 줄 아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그렇지만 큰 꿈 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작은 꿈, 작은 행복에 만족하는 삶,
그리고 남들이 집을 떠나 분주하게 사는 동안
가만히 한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기다릴 수도 있는 그런 삶.
제목처럼 ‘게으른 삶’은 바로 이런 부류의 것들이 아닐까한다.
어디선가 들은 말인데, ‘해야만 하는 것’이 바로 일(work)이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놀이라고 한다.
물론 당장에는 일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세상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힘이
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놀이에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게으른 삶’이 일종의 놀이하는 삶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게으른 삶’은 그저 게으른 것, 그러니까 나쁜 것이라는 게 다는 아니다.
소설의 주인공과 문체에서 볼 수 있듯이 조금은 다른 이야기로 돌아가며
핵심을 생각하는 것이 ‘게으른 삶’이고 또 이 소설의 매력인 것 같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게을러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