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소설상을 수상한 소설이다. 자연스럽게 온전히(!) 대학생이던 때를 떠올리게 된다. 처음 입학해서 설렘을 가득 안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강의실을 옮겨 가면서 수업을 들었던 그 때. 틀에 박힌 10대 때의 생활에서 벗어나, 무엇이든 가능할 것만 같았고 자유로움을 만끽하던 그 때를 말이다. 풋풋함과 열정, 대학생이라는 이름에서 상기할 수 있는 단어들이다. 신인 작가라는 이름 자체만으로도 풋풋하고 열정적인데 하물며 대학생이라면! 기대감을 안고 첫 책장을 넘겼다.
1인칭 시점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고아의 도시'라고 명명되는 조용한 도시에서 자취하며 살고 있는 '나'와, 남자친구 '요조', 카우치 서퍼인 '민영'의 이야기다. 대학을 다니기 위해 자취를 하지만 거의 부모님들과 인연을 끊고 사는 '나'와 '요조'는 연인 관계이지만 사랑에 대한 감정은 거의 식어있는 상태다. 이 때 '나'가 외국 여행을 하다가 만난 카우치 서퍼 '민영'이 한국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민영'은 조그마한 '나'의 자취방에 머물게 되면서 '요조'와 셋이 함께 지내게 된다.
소설을 읽는 데 부담감이라던가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 특히 문체 자체가 워낙 쉽게 읽히는 부분이 많고 그 와중에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문장들도 많았다. 이를테면 맨 앞부분에, 대학교 종강 이후 학생들이 그 지역을 떠나 주인공이 사는 곳이 '고아의 도시'가 되는 것을 서술하는 부분이 있다.
수업이 하나둘 종강하기 시작하던 때였어. 시험을 일찍 끝낸 아이들은 벌써 학교를 떠나고 있었지. 고아의 도시에서 나야 할 긴 여름을 상상하며 나는 예습하듯 조금씩 더위를 먹어갔어.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생각들이 자투리천처럼 아무렇게나 머릿속을 굴러다녔고, 배가 고파도 뭘 먹기는 싫었지.
'예습하듯 조금씩 더위를 먹어갔어.'나 '생각들이 자투리천처럼 아무렇게나'와 같은 표현들에서 섬세함을 발견할 수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무척 공들여 만들어졌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분량 자체도 요즘의 트렌드에 맞는 것처럼 경장편이기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다. 문체와 분량도 그렇지만, 일단 소설 속 인물들과 가깝다는 생각에 더 읽기 좋았던 것 같다.
대부분 대학을 나와야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우리 나라 사람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기를 쓰고 대학을 가려고 한다. 그렇지만 정작 대학에 가고 나면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을 때는 몰랐던 인간 관계의 어려움, 무엇이든 하면 될 것이라는 열정과 패기가 실수와 좌절로 이어질 때, 그리고 진정한 사회인으로 거듭나야만 인정받는 분위기 등 어릴 때와는 또다른 진통을 겪는 시기가 대학 시기다.
부유하듯 자유롭게 세상을 떠다니며 살고 싶은 것이 바로 20대가 아닐까. 미성년이라는 제약도 없어졌겠다, 굳이 한 곳에 정착해서 살아야만 할 이유도 없는 세대다. 우리네 부모님들이 생각하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긴 하다. 예전에는 정착을 위해 공부를 하고 돈을 벌고 가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요즘의 20대들의 생각을 들어보면 완전히 반대다. 사회 속 경제적인 문제의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집에 연연하지 않고 가족 구성원에 대한 폭도 한층 넓어졌다. 피로 이어진 관계보다 비슷한 취향, 가치관을 가진 마음의 동료들과의 관계가 20대에겐 더 소중할 수 있는 것이다.
소설 속 '나'와 '요조', '민정'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세 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조그마한 자취방 안에서 셋이 꼭 들어가 앉아 잠을 자기도 하고, 집을 찾아오는 가족들에게는 매정하게 대하는 모습 등, 현재의 젊은이들의 시각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는 행동을 한다. 남의 집 소파 위를 전전하면서 여행을 하는 '민정' 역시도 요즘의 젊은 세대들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 그때그때 필요한 돈을 벌고 여행을 하는 카우치 서퍼의 삶이 어쩌면 젊은 20대들이 겪는 찰나의 방황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을 통해 어쩌면 20대 우리들의 내일의 모습일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에 나오는 주인공과 이름이 (닉네임이) 같은 '요조'는 성격 또한 '인간 실격'의 요조와 비슷하다. 그는 자신의 인생-삶-'인간됨' 자체에 대한 통증을 앓고 있지만 사회에서 요구하는 모습으로 가장한 채 살아간다. 이 소설 속 '요조' 또한 비슷하다. 부유하듯 오랜 대학생활을 보내며 인생의 목표에 의문을 갖고 살다가, 으레 다른 이들이 하는 것처럼 자신의 긴 방황을 끝내고 방송국 PD 공채를 준비하여 사회인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카우치 서퍼였던 '민영'은 한국인이지만 어릴 때 입양된 이유로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자신의 마지막 여행지로 '한국'을 택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돈을 벌기가 수월하다던가 때마침 여행지에서 만났던 '나'가 떠올랐다던가.) 어쨌든 계속되는 카우치 서퍼의 삶의 끝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요조'와 '민영' 모두 부유하듯 살다가 정착을 선택한다. '표류' 이후 맑은 햇빛을 찾아갈 일종의 안정상태를 얻은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나' 또한 내면적 안정을 찾는다. 다른 두 인물에 비해 표면적으로 눈에 띄는 변화는 아닐지 모르지만, 소설 마지막에 '나'가 내뱉는 일종의 내면 고백은 독자의 마음을 찡하게 만드는 것도 있다.
이렇게 소설은 세 젊은이들의 성장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끝으로, 부록이라고 말해야 할지? 이 소설로 당선한 정지향 작가와 심사위원인 김미월 작가와의 깜짝 관계(?)와 인터뷰도 재미를 더해준다. 자세한 것은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