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힘에서 구하소서.
- 시편 22장 20절
심오한 성경 구절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미국과 중남미 사이에서 벌어지는 마약전쟁을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거쳐 보여주고 있다.
생각해보니, 황금가지 출판사의 '밀리언셀러 클럽' 소설을 처음 접해보았다.
호기심이 많았지만 왠지 접해볼 기회가 없었고 사실 대부분 두께가 어마어마하게 보였던 터라.
사실 이 소설도 처음에 받아보고 '두께가 뭐 이래!' 란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리뷰를 쓰기 전 미리 이야기하는 건데, 두께가 문제가 아니다. 술술 읽힌다.
가독성과 재미를 보장한다. 그렇다고 한 번 읽고 휙 잊어버릴 만한 가벼운 내용은 아니다.
소설은 철저하게 현실에 기반해 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무섭기도 하다.
중남미 그리고 마약
'중남미'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마약일 것이다. 좌파와 우파라는 이념적 대립으로 그 영토 내에서 게릴라전과
무자비한 학살이 종종 일어나곤 했던 (그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 곳이지만 그 속 깊은 곳에서는 마약거래가 암암리에 진행되고
있었다. 약 25년 전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유학생활을 하셨다는 어느 교수님의 이야기에서, 당시 40대 남성의 사망 원인 1위가 총살
이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놀랐고 25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 만큼 위험한 곳이 멕시코시티라는 말에 두 번 놀랐다.
그 이유는 '마약' 때문이라고 하니, 중남미 지역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중남미는 왜 이렇게 마약이 많을까?
조그만 지식을 펼쳐보자면, 아즈텍-잉카 제국 때부터 원주민들은 코카인과 같은 마약류들을 재배해서 제의때 고통을 줄이고
(그들은 끔찍힌 인신공희를 통해 신에게 경배를 드렸다.) 삶의 고통을 누르기 위해 마약에 취했다고 한다.
특히 고산지대인 페루지역 (예전의 잉카 제국이 자리잡았던 곳) 에서 관광객들이 고산병으로 힘들어하면 뭔가 약을 준다는게
그것이 코카인이라는 '카더라'도 있다고 하니... 그리고 그 넓디 넓은 영토와 풍부한 인적자원(혹은 착취)이 있으니 마약이 많이
생산될만한 영토라는 건. 충분히 상상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중남미와 인접해 있고, 거대한 자본으로 마약을 취하고도 남을 만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곳인 세계 강대국인 미국이 있다.
미국과 중남미 사이에 오가는 수많은 마약들과 돈들은 아마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정의의 사도는 없었다.
주요 인물은 이렇다.
CIA 출신 마약 수사 전담반 요원인 아트 켈러.
바레라 카르텔이란 이름으로 중남미 내에서 거대한 마약 사업을 벌이는, 보스인 아단 바레라.
아일랜드 계, 뉴욕 출신의 킬러인 칼란.
고급 매춘부 노라 헤이든.
아단과 아트, 노라 등을 하나로 묶는 인물이자 가톨릭 신부인 후안 오캄포 파라다.
이 다섯 명의 사람들이 얽히면서 크게 '악'으로 나타나는 마약 조직과 그에 맞서는 마약 수사팀으로 힘의 구도를 나눌 수 있다.
그렇지만 사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자세한 내용까지는 언급할 수 없겠지만, 이 세계에서 선과 악을 나누고자 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 수 있다. '명분 없는 전쟁은 없다.' 전쟁은 모두가 당연하게 여길만한 명분이 존재한다.
그 명분으로 인해 모든 일들이 용인된다.
간단한 인물 소개로 유추해 보건대 '악'이 아단 바레라고 '선'이 아트 켈러라는 이분법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아트가 무조건 선의 편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킬러인 칼란의 행동이 모두 '악'의 편에 있는 것도 아니다.
소설 속 모든 인물들은 자신의 이해 관계 때문에 움직일 뿐이다.
정부, 경찰, 재력가들, 심지어 교회까지도 이념이라는 이름 하에, 돈과 명예 혹은 권력이라는 이름 때문에 마약의 유통과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비인간적인 행태들을 묵인하고 만다.
수많은 명분들만 있을 뿐, 정의의 사도는 없다.
최소한 이 소설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개의 힘에서 건지소서
니체는 힘에의 의지(will to power)라는 말을 했다. 종래의 형이상학에서 비롯된 이분법적인 구분은 존재하지 않고 단지
스스로 이상이 되려고 하고 강해지고자 하는 의지 작용, 즉 " 힘 "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 것이다.
성경 구절 맥락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하려던 것일 수 있겠지만,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개의 힘'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주인공 아트는 끝까지 자신이 청렴하고 정당하게 행동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상황은 어렵기만 하다.
장애물 앞에서 몇 가지 무모한 일들을 행한다.
사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개인 뿐만 아니라 경찰이며 정부 등, 사회 모든 것들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순전히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행동을 달리한다. 마치 스스로가 '正'이 되려는 것처럼.
그러나 이건 영원히 불가능하다.
소설이 끝났고 아트의 이야기도 끝났다.
그렇지만 사실 끝난 것이 아니다.
소설 속의 이야기도 끝나지 않았고 지금 현재, 우리들의 이야기도 끝나지 않았다.
힘들의 알력은 앞으로도 건재할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힘들은 이상하게 엉켜있다.
우리는 단지 그 가운데서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어떤 것에게, 불온한 '개의 힘'에서 건져달라고 기도할 뿐이다.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소망을 조심스럽게 내뱉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