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와일라잇' 시리즈 덕분이었을까.
뱀파이어, 늑대인간, 좀비, 천사나 악마가 등장하는 영화와 책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컨텐츠들의 장르 구분은 일차적으로 판타지,호러물이겠지만 이차적 분류는 로맨스다.
내용에 따라 삼차, 사차는 액션, 스릴러 등등 내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렇게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컨텐츠들 중에 로맨스적인 성향이 강했던 적이 있었을까?
이전부터 존재는 했겠지만 지금처럼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기야, 인기가 없었던 것이 이상할만도 하다.
위험하지만 않다면 위에 언급했던 뱀파이어, 늑대인간과 같은 캐릭터들은 충분히 신비스럽고
인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가졌으며 대부분은 외모도 출중하다. 위험하지만 않다면 몇 명이고
내 옆에 데리고 싶을 정도로 강한 매력을 가진 종족들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종족도 아닌... 좀비다.
<책 뒷표지 모습. 이 책을 추천한 두 명의 작가들의 작품들, 아주 좋아한다. 그러고보니 둘 다 영화화 되었구나.>
좀비와의 로맨스, 이름만 들어도 경악할만하다.
어떤 목적으로 이미 죽은 사람을 주술로 살아일으키게 되고, 다시 살아는 이들은 자신의 의지없이
주술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의식도 없고 부패하는 육체를 가진 좀비는 언제부턴가 인간의 적으로 그려졌다.
게다가 사람을 먹기도 하니 인간과 로맨스는 커녕 잡아먹히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소설 '웜바디스'는 좀비에 대한 선입견을 하나씩 벗어던지게 만들었다.
종말을 맞은 듯한 세계, 주인공 R은 좀비다. 그는 친구 M을 비롯한 다른 좀비들과 같이 모여살고
배가 고프면 사람들이 사는 곳을 습격해 인육을 먹으며 산다.
약간의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좀비들은 사람들의 뇌를 먹으면 그 사람의 어떤 것을 느끼게 된다.
무어라 콕 단언할 수 없는, 인간적인 어떤 것을 잠깐 보게 된다는 설정인 것 같다.
좀비들은 그것을 좋아하고 결정적으로 R의 인간화를 겪게 되는 것도 어느 인간의 뇌를 먹게 되면서 부터다.
'페리'라는 청년의 뇌를 먹으면서 R은 페리의 기억을 공유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줄리'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자기가 어떻게 좀비가 되었는지도 모르는 R은
줄리와 함께 하고 싶어하고, 인간이 되고 싶어한다.
'사람다움'을 갈구하는 좀비는 어떻게 보면 신선한 소재는 아니다.
아무리 멋있고 능력이 탁월해도 '괴물들'은 왠지 모르게 인간적인 어떤 것들을 동경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대로 머문 상태로 인간인 애인, 혹은 인간적인 것을 수호한다. 인간이 되질 못한다는 핸디탭은 유효하다 이거다.
이번에 읽은 '웜바디스'는 그 핸디캡을 넘어선 작품이었다.
물론 너무 기적적인 일이라 설정이 억지스럽다는 생각도 조금 들긴 했지만.
<작가 소개. '블랙 로맨스 카페'에서 매거진을 신청하면 작가 인터뷰가 있다. 물론 사진도. 작가가 배우같아서 영화에
카메오로 출현해도 될 정도였다. 스테파니 메이어(트와일라잇 작가)도 영화에 카메오 출현했다는데...>
웜바디스는 참 재미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단순한 재미를 떠나서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종말의 시대, 혹은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 인류의 심리가 매우 설득력있었고,
인간이 되고자 하는 R과 좀비들의 심정도 십분 이해되었고 새로운 '인종'의 혁명을 섬세하게 풀어냈다.
내년 쯤에 영화로도 개봉이 된다는데 기대가 많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