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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4
- 손보미 외
- 13,500원 (10%↓
750) - 2024-08-23
: 3,739
근 몇 년쯤, 한국 소설을 읽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의도적인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도서관에 가면 한국문학 섹션에 가장 먼저 들르고, 계절마다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사 모으던 나는 온데 간데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언젠가부터 무거운 주제의식이나 삶을 파고드는 집요하고 뾰족한 집념 같은 게 불편했던 것 같기도 하고. 뭐 어쨌든, 그렇게 내가 멀어져 있는 사이 수많은 젊은 작가들이 등장했고 새로운 신이 열렸다. 놀라움.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한국문학은 놀라움이라고밖엔 표현할 수가 없었다.
삶과 문학 사이에서 진자운동 하며 각각의 고유한 파동을 만들어내는 이야기들. 한해 발표된 한국 단편소설 가운데 가장 첨예한 문제의식을 지닌 작품만이 선정된다는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접했을 때의 기분 역시 ‘놀라움’이었다. 만장일치로 대상으로 선정되었다는 손보미 작가의 <끝없는 밤>을 읽을 때는 멀미가 나는 것 같은 아찔함을 느꼈다. 순항하던 10억 원짜리 호화 요트의 전복. 주인공인 그녀는 남편의 지인 소유의 요트에 승선했다가 사고를 당하게 되고, 배 위의 사람들은 배가 요동칠 때마다 눈에 띄게 동요하고 패닉 상태에 빠진다. 그러던 중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통증의 이유를 점차 깨닫는 그녀. 그 과정이 통렬해서, 읽는 도중에 멈출 수가 없는 기분이었다. 실로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몰입의 즐거움이라니. 손보미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어질 만큼 강렬한 끌림을 주는 작품이었다. 더불어 한국문학이 정말 많은 발전을 이뤘구나 싶어 정말 정말 기뻤다.
책에는 총 8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대상 수상자인 손보미 작가의 작품 2편과 우수작품상 수상자인 문지혁, 서장원, 성해나, 안윤, 예소윤 작가의 작품 1편씩 총 5편, 작년 대상 수상작가인 안보윤 작가의 최근작이 실려 있었다. 모든 작품이 저마다의 색채로 반짝거렸지만, 안보윤 작가님의 작품 <그날의 정모>가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ADHD를 겪는 아이 정모를 둘러싼 단톡방 괴롭힘, 고부 갈등 등을 다루고 있는데 지금 가장 주목도가 높은 이야기여서 더 관심을 끌었던 것 같다.
손보미 작가는 소감에서 “현실과 소설 속 세계의 격차를 느끼는 순간, 하나의 소설은 비로소 완성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소설을 읽고 느끼게 될 착각과 오해, 그리고 (알게 될) 현실과의 격차, 그 격차를 통해 새롭게 이해하게 된 소설 속 세계, 그리고 그 세계에 대한 이해를 품은 채 다시 바라보게 될 현실...현실과 소설은 그런 식으로 서로 상호작용하며 서로를 더 넓어지게 하고 깊어지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소설은 더 이상 이상적인 세계만을 그리지 않는다. 소설은 현실 그 자체이고 현실의 세계관을 넓혀주는 도구다. 이 책을 통해 나의 세계도 더 넓어지고 깊어졌다고 믿고 싶다. 아니, 기필코 그럴 것이다.
🎁 북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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