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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단독주택
- 김동률
- 15,120원 (10%↓
840) - 2024-08-08
: 509
10년 전, 지인 찬스로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한 적이 있다. 남편, 나, 강아지 두 마리까지 네 식구. 겨울이라 옷보따리도 만만찮은 데다 강아지들 짐까지 보태니 이삿짐이 따로 없었다. 가는 동안에는 솔직히 너무 고생스러워서 ‘괜히 강아지들까지 데리고 왔나’, ‘그냥 며칠 여행하고 말 걸 그랬나’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런데, 대문을 열고 들어가 강아지들을 마당에 내려놓은 순간 나는 ‘오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도심에선 대문 밖으로 나가면 무조건 ‘목줄 필수’ 였지만 여기선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이곳저곳을 냄새 맡고 뛰어다니고, 나에게 왔다가 남편에게 갔다가, 또 어디론가 쏜살같이 뛰어다니는 강아지들을 보며 난생 처음으로 단독주택에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렇다고 내가 단독주택에 호의적인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나는 평생을 아파트 혹은 오피스텔에서 살았다. 단독주택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어릴 때 경험이 너무 좋아서 다시 단독주택을 찾는다거나 집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실현을 위해 단독주택을 선택하거나 둘 중 하나던데, 나는 살아 본 경험이 전무하니 향수에 젖을 일도 로망을 지닐 일도 애초부터 없는 것이다. 아파트, 오피스텔. 얼마나 편한가? 관리비만 내면 모든 걸 다 알아서 처리해준다. 귀찮게 화단을 손볼 일도 고장난 무언가를 고칠 일도 없다. 기껏해야 집 안 전구를 갈거나 하는 게 고작이다. 귀농, 귀촌, 혹은 주택살이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항상 말해왔었다. “그러니까, 나이가 들어도 난 아파트에서 살 거야. 단독주택 가면 관리할 게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 텐데 그걸 왜 해?” 이런 염세주의자도 변하게 한, 강아지들의 행복해하는 얼굴이라니.
궁금했다.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들의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 잡지에 나올 것 같은 으리번쩍한 인테리어가 있는 집이 아니라,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집의 이야기. 여러 책 중 고민하다가 《그래도 단독주택》을 먼저 읽어보기 시작했다. 이 책은 김동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교 교수가 강남 요지의 아파트에 살다가 북한산 기슭 단독주택으로 이사하면서 그 집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단독주택에 살아 보지 않고서는 그 맛을 누구도 모른다.”며, 아파트에 살면 절대 알지 못하는 단독살이만의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아파트를 처분하고 단독주택으로 옮긴 것이 인생 최고의 결정이라고 말한다. 도대체 단독주택의 어떤 점이 저자를 매료시킨 것일까?
저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개 섹션으로 나누어 계절별로 겪어내야(?) 하는 단독주택만의 애환과 매력을 담아내고 있다. 봄에는 마당을 가꾸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하고 여름에는 잡초와 전쟁을 치러야 한다. 가을에는 낙엽을 쓸고 겨울에는 눈을 치워야 한다. 게다가 길고양이도 어느 정도 돌봐줘야 한다(!)고. 겨울이 되면 물이 부족해 죽는 경우가 많아서 물을 챙겨주다 보니 사료도 챙겨주게 되고, 사료를 주다 보니 엉성하게라도 박스집을 만들어 주게 되고...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 힘든 주택살이를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이 든다. 무엇을 위해 주택에 살아야 하는가.
그가 단독살이의 고생을 자처하는 이유는 노스탤지어 때문인 것 같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살며 꽃밭에서 다양한 꽃을 키우던 기억, 마당에서 자치기와 땅따먹기, 공기놀이를 하던 기억 등이 그로 하여금 다시 단독주택을 찾게 한 것이 아닐지. 여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사람 냄새가 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단독주택에 살면 자연스레 인사를 하게 되기 때문에. 기구나 장비를 서로 빌릴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봄날에는 꽃씨도 나누고, 가을에는 골목에 쌓인 낙엽을 같이 쓸고 겨울에 눈이 오면 집 앞 눈도 치워야 하니까. 단독주택은 이름만 ‘단독’이지, 더불어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주택이니까. 저자가 하고 있는 이 ‘개고생’을 읽으면서 오히려 마당 있는 집에 대한 호기심이 더 생겼다면 이상하게 들릴까? 나는 뭐든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타입이니, 언젠가 갑자기 마당 있는 작은 집을 월세로라도 얻어 살아보게 될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되면 이 책을 꼭 들고 가야겠다.
🎁 샘터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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